“니들 약값 싸울 때 내 아이 죽어간다”
치오테파 주사제는 주로 뇌종양, 신경모세포종 등 소아암 환자들이 ‘조혈모세포이식술’을 받을 때 쓰이는 고용량 항암제로, 미국 제약사가 약값을 8배 가량 올림에 따라 인상협상이 시작됐다.보험공단은 지난 8월부터 치오테파의 국내 약값 인상을 두고 수입 업체 측과 협상을 진행했으나 지난 10월 21일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협상 결렬로 이식술을 앞두고 있는 소아암 환자들은 당장 약을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어 소아암 환자들은 수천만 원대의 약값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소아암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펼쳐지는 약가협상 테이블의 뒷면을 들여다봤다.
신경모세포종은 영·유아기에 발병하는 소아암 중의 하나로 매년 인구 100만 명 중 8.7명의 발생 빈도를 나타내는 희귀병이다. 국내에서는 1년에 100~150명의 아이들이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 병은 소아암 중에서도 가장 치료가 어려운 데다가 생존율이 40~50%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차례의 항암치료와 수술, 두 차례의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거치는데 이러한 이식수술에 쓰이는 주사제가 바로 치오테파 주사제다.
주로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90%가 5세 미만에 이 병이 나타나고, 때로는 출생 시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10세가 넘어가면 드물게 발생한다. 이 때문에 김 아무개 양(13)도 처음 배가 아팠을 때는 그저 단순한 복통쯤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연이은 복통에 2010년 10월 병원을 찾은 김 양은 의료진으로부터 신경모세포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소 생소한 병명에 어리둥절하던 김 양의 아버지는 ‘소아암’이라는 의료진의 말에 그제서야 병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항암치료는 고통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모두 9번의 항암치료와 1번의 수술, 그리고 1차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마쳤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항암치료에 어린 김 양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항암치료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연신 토하기를 반복했다. 독한 약을 쓰는 항암치료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13세 사춘기 여중생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김 양의 아버지는 이렇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하지만 11월 말 김 양의 아버지는 2차 이식술을 앞두고 병원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이식술에 꼭 필요한 항암제의 재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모든 병원에 재고가 없다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었다. 그 이유는 치오테파에 대한 국내 약가협상 결렬로 수입업체에서 더 이상 항암제를 병원에 공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병원 측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회 차원에서도 정부나 보건당국에 계속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지난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A 수입업체의 약가협상은 올해 초 미국 B 제약사가 치오테파의 가격을 8배가량 올리면서 시작됐다. A 사는 미국 B 제약사로부터 약을 수입해와 15㎎ 1병(바이알)당 4만 4000원에 판매해 왔다. 하지만 수입가격이 올라가자 A 사는 국내 판매가격 인상을 공단 측에 요구했다. A 사는 24만 원, 공단은 20만 원을 제시하며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지난 10월 가격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단 몇 만 원을 놓고 업체와 공단이 지루한 협상을 이어 오는 동안 국내 병원들의 치오테파 재고는 점점 소진돼 갔고, 급기야 하반기에는 바닥이 드러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았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결국 국내에서는 약을 구할 수 없게 되자 환자 가족들이 나서 해외에서 직수입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김 양의 아버지도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치오테파를 구매했다. 하지만 직수입을 하면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되자 대략 150 ㎎당 40만~50만 원 하던 약값은 2000만 원대로 치솟았다. 10월 초에 구매신청을 의뢰해 11월에 치료제를 구매한 김 양의 아버지도 약값으로 1917만 원을 지불했다. 이 약값이 한 번의 이식수술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김 양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7000여 만 원의 비용을 치료비로 썼다.
이에 대해 김 양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이 병을 앓고 있다면, 그래서 이 약이 없어 자기 자식이 죽는다면 그렇게 협상을 했겠느냐. 사전에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겠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나는 내 집을 팔아서라도 딸 아이 약값을 마련했지만 우리보다 못 사는 사람들은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 결국 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되면 돈 없는 사람들은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와중에 약가협상 결렬 이유가 수입업체와 공단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수입업체는 미국 제약사의 가격인상으로 국내 약값 인상은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A 사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치오테파 공급 중단의 원인이 약값협상 결렬로만 비춰지는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 제약사가 FDA심사로 약 공급을 자체를 중단해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다.
반면 보건당국 관계자는 “수입업체의 요구를 들어주면 한도 끝도 없다. 사실 수입업체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이 약을 사용하는 환자가 적기 때문에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입업체의 협상 자세를 꼬집었다. 보험당국이 약값 폭등과 수입제약사 핑계를 대면서 ‘어쩔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대처가 늦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중단돼 구할 수 없다는 치료제를 환자 가족들이 직접 구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제약도 없고 제약사의 공급 중단으로 전 세계적으로 재고가 없어 약을 구할 수 없다고 전해지던데 어떻게 치료제를 구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희귀의약품센터 관계자는 “우리는 미국 의약품 도매상을 통해 구입하는데 미국 B 제약사 제품이 아닌 이탈리아 치오테파인 ‘테파디나’를 구입하고 있다. 약의 성분이나 효능은 같다”고 답했다. 이는 수입업체나 보건당국이 환자들의 딱한 사정에 관심을 가졌다면 수입업체는 다른 공급업체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수입이 가능했을 것이고, 보건당국 또한 다른 루트를 생각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 4개월여 동안 4~5차례에 걸쳐 협상테이블이 만들어졌지만 업체나 보건당국, 그 어느 곳도 환자 가족들만큼 절실하지는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