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 분야에서 또 다른 ‘황소(제2의 2차전지)’ 키우기
▲ 구본무 LG 회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LG화학 LCD 유리기판 공장을 방문,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오른쪽부터 구본무 LG 회장, 나상업 LG화학 LCD 유리기판 사업담당 상무,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
지난해 LG그룹 신임 전무들과의 만찬장에서 구본무 회장이 한 말이다. 1992년 3월 부회장 시절 그가 직접 영국에서 샘플을 가져와 시작된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세계 최고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 구 회장이 올해 부품·소재 사업 현장을 집중적으로 챙기며 강력한 육성 의지를 피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구 회장 현장 행보에 숨은 ‘큰그림’ 속으로 들어가 봤다.
#2001년 11월
지난 2001년 11월 여의도 LG트윈타워 회의실.
“이런 적자를 감수하며 계속 사업을 해야 합니까. 그리고 다른 세계적 기업들은 전자회사들이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는 LG화학이 이 사업을 하는 것이 과연 맞습니까.”
당시로부터 10년 전인 1991년 10월 영국 원자력연구원(AEA, Atomic Energy Authority)과 첨단분야에 대한 공동 R&D 및 기술협력에 대한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된 LG의 2차전지 사업이 계속되는 연구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회의장에 모인 각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우려를 토해냈다. 그럼에도 구본무 회장은 단호했다. 그는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하십시오. 그동안 전지사업을 추진해 오며 쌓은 노하우도 있고, LG화학이 계속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십시오”라고 독려했다.
그렇게 2차전지 사업을 계속해 오던 LG화학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2005년 말, 그해 역시 2차전지 사업이 20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자 “봐라, 안 되는 건 역시 안 되는 거다. 이렇게 어려운 사업을 꼭 해야 하나”라는 회의적인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때 역시 구 회장은 예전과 다름없이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공할 날이 올 겁니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임직원들을 다독였다. 결국 LG는 글로벌 자동차업체들과 전기차용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맺으며 세계 최강자로 부상했다.
#2011년 11월
지난 11월 29일 파주 LG화학 LCD 유리기판 공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양산을 앞두고 시험가동 중인 LG화학 LCD 유리기판 공장을 방문했다. 구 회장은 이날 LCD 유리기판 관련 사업현황을 보고받고 공정별 생산라인을 일일이 살펴보며 본격 생산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LCD 유리기판은 박막회로를 증착하는 정밀하고 얇은 유리판으로 뛰어난 내열성, 내화학성, 표면품질이 요구된다. 이러한 LCD 유리기판 사업은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아 현재 전세계적으로 3개 업체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LG는 대형 TFT-LCD 패널 시장에서 글로벌 1등 기업이지만 LCD를 구성하는 부품소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리기판의 경우 대부분 외국계 공급업체에 의존해 왔다.
구 회장의 이번 방문은 글로벌 LCD 시장에서 주도권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는 핵심 부품소재인 LCD 유리기판 사업을 통한 총체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LG는 이 사업을 통해 ‘유리기판(LG화학)-LCD 패널(LG디스플레이)-LCD TV(LG전자)’로 이어지는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미래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구본무 LG 회장이 지난 4월 구미 LG전자 태양전지 공장을 방문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
2011년 마감을 앞둔 현 시점에서 지난 1년간 구 회장의 ‘현장 동선’을 살펴보면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그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구 회장이 올해 10차례 걸쳐 방문한 부품·소재 사업 현장만 8곳에 이른다.
구 회장은 △2월 오창 LG화학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과 구미 LG전자 태양전지 공장 및 LG디스플레이 태블릿PC용 LCD모듈 공장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4월 오창 LG화학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과 구미 LG전자 태양전지 공장 및 LG실트론 태양전지 웨이퍼 공장, 창원 LG전자 컴프레서&모터 공장 △5월 오창 LG화학 FPR 3D 필름 공장에 이어 △10월 LG화학 2차전지 설비 국산화 협력회사 디에이테크놀로지 △11월에는 파주 LG화학 LCD 유리기판 공장을 방문했다.
특히 구 회장은 오창 LG화학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과 구미 LG전자 태양전지 공장은 두 달(2월과 4월) 사이 연속 방문해 그린(Green) 신사업 분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구 회장은 사업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글로벌 1등 사업의 기반은 부품·소재사업의 경쟁력에서 창출된다”며 “치열하고 끊임없는 혁신으로 부품·소재사업을 LG의 미래 성장을 이끄는 핵심 사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부품·소재 사업에 대한 구 회장의 의지를 바탕으로 LG는 향후 전기차 배터리, 태양전지 및 웨이퍼 등의 태양광 부품, LED칩 및 패키지 등의 LED 부품 등 그린 신사업 분야의 부품, 소재사업을 강화해 2015년 이 분야에서 90조 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LG는 현재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이노텍, LG실트론 등이 전기전자부품, 디스플레이소재, 화학소재 등에서 부품·소재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지난해 이 사업에서 49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100년 이상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듭시다.”
구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당장 눈앞의 성과보다는 미래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높여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념과 끈기로 구 회장은 2차전지 사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 세웠다. 최근 LG의 미래 먹거리 역시 부품·소재 사업 분야에서 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그의 행보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