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량 80% 담당에도 정규직 60% 수준으로 받아…임금 동결에 노동자들 떠나, 남은 사람들 “참고 견뎌”
하청업체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대우조선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노조인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는 지난 6월 2일부터 지금까지 임금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월 22일부터는 하청노동자 6명이 1도크에서 생산하던 초대형 원유 운반선 안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5년 동안 조선업 침체기에 7만 600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대량해고 됐고, 해고되지 않은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대폭 삭감됐다”며 “조선소에서 20년, 30년 고되고 위험한 일을 해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떠나간 노동자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선하청지회는 조선업이 수주대박에도 불구하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20~30년을 일한 숙련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실질소득이 30%가량 하락했고, 상여금 550%가 없어지면서 조선소에서 받는 임금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전했다. 조선소 생산의 80% 이상을 하청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임금 수준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낮은 임금 구조는 인력 부족 문제를 야기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 활황기인 2014년 조선업 근무자는 20만 3000여 명이었으나 2020년에는 55% 감소한 9만 2000여 명에 그쳤다. 조선업 하청인력은 2015년 말 13만 3346명에서 2022년 2월 기준 5만 1854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조선소들이 불황기에 접어들자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 시기에 떠난 숙련공들이 다시 조선소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선소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고된 업무환경 대비 낮은 임금이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2000년 초반 제조업 평균임금 대비 조선업 임금 수준은 1.5배 정도로 높았지만 2019년에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우조선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3대 조선소에 속하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차장은 “하청노동자들은 한 곳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 때문에 조선소마다 임금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며 “한 곳에서 임금을 많이 주면 그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사무차장은 “조선소마다 임금체계 같은 것들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사실상 총액은 비슷하다”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처럼 상대적으로 조직이 크지 않아서 파업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쪽 하청노동자들도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노동시간이 길고 단가가 높은 물량팀 노동자들만 보고 조선소 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들은 전체 하청노동자들의 10%도 안 된다”며 “가장 열악한 사람들이 족장 노동자들인데 이 분들은 거의 6~7년 임금이 동결됐다”고 말했다.
족장공은 용접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작업자의 높이에 맞춰 발판을 설치하고 해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이들이 없으면 실제로 건조 자체를 시작하지 못한다. 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노동자조차 저임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요구도 주저하게 된다고 했다. 윤용진 사무차장은 “회사가 사정이 어렵다고 하고, 하청업체들 폐업하고 날아가는데 어떻게 요구를 하냐”며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으니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업체지회에 대우조선뿐 아니라 삼성중공업과 성동·중앙조선소의 하청노동자도 다 가입하지만 대우조선만큼 조합원들이 많지 않아서 파업이나 교섭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수준도 대우조선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도 “다른 조선소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과 다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대우조선은 법적으로 교섭에 개입할 수 없어 임금 인상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또 지난해 1조 7000억 원의 영업손실과 1분기 영업손실만 4702억 원이 났다며 하청노동자들이 애초에 제시한 임금인상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협력사별로 올해 약 3%씩 임금을 올렸고 그 이상 올려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원청 직원들도 4년 동안은 임금 동결에 3년은 매년 0.9%씩 올라 기본급 3%가 인상이 안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에 대해 “사내 협력사들과 임금 부분에 대해서 계속 대화하고 있다”며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측은 “협력사와 단가 계약을 맺기 때문에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직접 얘기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이김춘택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연봉 7000만 원이랑 연봉 3500만 원이랑 같냐”며 “우리도 연봉 6500만 원 주면 임금 동결해도 상관없다”고 분통을 떠뜨렸다. 대우조선의 2021년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조선 직원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6700만 원이다. 이김춘택 사무장은 하청노동자들은 평균 3000만~35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말했다. 원청 직원들이 받는 평균 임금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이김 사무장은 “원청은 상여금 800%를 매년 받고 있지만 하청노동자들은 상여금이 아예 없다”며 “지금 하청노동자들이 받는 시급이 최저시급보다 조금 높은데 주 50시간 일하고, 시간당 9500원 받는다고 치면 연봉 2500만~3000만 원”이라고 덧붙였다.
임금뿐 아니라 불황기 구조조정에에도 하청노동자들이 더 불리하다. 장석원 언론부장은 “하청업체 같은 경우는 원청에서 계약을 해지하면 되니까 인위적 구조조정이 되게 쉽다”며 “원청은 강제 구조조정은 못하고 법에 따른 명예퇴직이나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인원을 감축했다”고 말했다. 장 언론부장은 결과적으로 구조조정 당시 원청 노동자에 비해 하청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 원인은 원청과 하청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0일 열린 대우조선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대한 학계·노동법률가들의 긴급 기자간담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원청-하청의 구조와 정부의 사태 방치를 지적했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는 “사내하청이라는 고용 시스템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봉건적인 형태로 일반적인 자유시장경제 구조가 아니다”라며 “독립된 사업자가 아니라 원청에만 의존하는 사내하청업체는 페이퍼컴퍼니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소속 윤애림 박사는 “국제노동기구(ILO)는 사내하청이라는 불법적·악질적 간접 고용 형태와 관련해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에 시정을 권고했다”며 “하지만 정부는 원청의 단체교섭을 촉진하기는커녕 부당노동행위를 조사·감독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대우조선 원청에서 도급비를 줄이면 하청업체는 사람을 자르거나 월급을 깎을 수밖에 없다”며 “원청회사에서 하청업체에 인원을 줄이라고 통보하거나 누군가를 해고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지만 현실은 하청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라 하청업체는 원청회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하청업체가 1차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2차, 3차, 4차로 이어져 하청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저임금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청업체 밑에 또 2차, 3차로 하청업체들이 있으니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을 적게 받게 된다”면서도 “최근 수주가 늘어나긴 했어도 원자재 값이 많이 오른 탓에 조선소 입장에서도 당장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한 번에 크게 인상하기는 난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사 양쪽 모두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정부나 산업은행이 일정 부분 관여를 해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산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용구조를 바꾸는 방법들을 찾아가는 것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