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퀴어’ LGBT 커플 일상 공개…‘남의 연애’ 게이 데이팅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 다루는 소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사랑’ ‘연애’를 다룬 예능의 변화가 거세다. 이혼한 연예인 부부를 다시 연결해 재결합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프로그램부터 ‘돌싱’의 과감한 연애를 다룬 예능도 인기다. 그 흐름 속에 이번엔 LGBT(성 소수자를 뜻하는 약어) 커플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퀴어 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닌 이들의 진짜 이야기에 주목한 시도다.
#‘메리 퀴어’ 자극적 설정 경계 ‘순한 맛’ 예능
웨이브가 7월 8일 시작해 매주 금요일마다 공개하는 ‘메리 퀴어’는 퀴어 콘텐츠의 정점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함께 아침을 맞는 게이 커플, 수영장 데이트에 나선 트랜스젠더 커플, 예식장을 알아보는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을 보여준다. SBS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처럼 연예인 커플의 일상을 관찰하는 방식을 따르지만 ‘국내 첫 커밍아웃 예능’이란 점에서 새롭고 파격적이다.
‘메리 퀴어’에 출연하는 커플들은 연인을 향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함께 사는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하고, 아무도 없을 땐 애정표현에도 적극적이다.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은 이성애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혼인신고의 장벽에 가로막히거나, 남녀로만 구분된 수영장 탈의실 사용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동성애 커플 결혼식 경험이 없는 업체들로 인해 예식 준비마저 녹록지 않다.
방송 전까지만 해도 ‘퀴어 소재를 자극적으로 다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이런 시선은 잦아들고 있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커플이 현실에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를 놓치지 않는 제작진의 시도에 시청자도 공감하고 있다.
7월 15일 웨이브가 공개한 또 다른 퀴어 예능 ‘남의 연애’도 초반 반응이 고무적이다. 남자를 사랑하는 6명의 남자가 같은 집에서 8일 동안 지내면서 서로의 매력을 탐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이성 로맨스에 국한됐던 연애 예능을 동성의 사랑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메리 퀴어’만큼 새롭다. 아이돌 부럽지 않은 외모를 지닌 6명의 게이가 방송을 통해 커밍아웃한 것은 물론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아가는 과정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웨이브는 퀴어 예능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웨이브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메리 퀴어’는 공개 직후 플랫폼 신규 유료 가입 견인 콘텐츠 순위 5위에 진입했다. 프로그램 공개 2주째에 접어들어서는 시청 시간이 전주 대비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의 연애’의 파급력은 더 빠르다. 공개 직후 신규 유료 가입 견인 콘텐츠 1위에 등극했다. OTT 플랫폼에서 드라마나 영화와 비교해 예능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인기다.
#커밍아웃 1호 연예인 홍석천 존재감
퀴어 예능이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데에는 ‘가교’ 역할을 하는 진행자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국내 커밍아웃 1호 연예인 홍석천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메리 퀴어’를 진행하는 그는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제작진과 의견을 나누면서 방향성을 정립했다. 커밍아웃 이후 22년 동안 겪은 자신의 경험담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이를 통해 출연자와 시청자 사이에 생길지 모를 괴리감을 좁히는 역할도 맡는다.
실제로 홍석천은 한 출연자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고민’이라고 고백하자 “나는 부모님보다 전 국민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는 내가 너무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 받아들이기가 힘드셨던 것 같다”며 “대가 끊기는 것을 걱정하셨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어려움을 겪는 것은) 똑같다”라고도 털어놨다.
홍석천이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솔직하게 밝힌다면, 함께 진행하는 신동엽은 이성애자의 눈높이에서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주변에서 친구로, 동료로, 가족으로 만나는 퀴어 커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고 손을 내미는 역할이다. 신동엽은 “권장하거나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며 “그냥 바라보면서 ‘저런 사람도 있구나’, ‘저런 삶도 있구나’ 진정성을 파악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했다.
홍석천과 신동엽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절친한 관계를 유지한 친구 사이다. 과거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곁에서 가장 큰 힘이 돼 준 친구가 바로 신동엽이기도 하다. 둘의 이런 관계는 프로그램에 진정성을 보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출연자 섭외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반인이 방송에 출연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SNS(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된 요즘, 방송에서 얼굴을 공개하는 일은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는 것을 수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리 퀴어’와 ‘남의 연애’ 출연자들에게는 고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온라인에서 혐오와 공격의 대상으로 노출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유튜브에서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출연자 섭외에 들어갔다. 유튜브는 성 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거나, 혐오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창구로 각광받고 있다. ‘메리 퀴어’ 출연자들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커플의 이야기를 소개해왔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유튜브와 리얼 예능은 엄연히 다른 영역인 탓에 출연 섭외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어렵게 출연을 결심한 이들의 멘탈 케어는 홍석천이 돕는다. 출연자들을 만나 악성 댓글 등을 통한 혐오 공격을 받을 수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