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전 감독이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얘기해주셔서 새삼 감동”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 씨(32)는 백스톱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 솟구치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최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영상 속 시구자로 등장한 아버지가 생전의 모습과 정말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이 자리에 직접 오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최동원은 '레전드 40인'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올스타전 초대장은 직접 받지 못했다. 하늘로 떠난 아버지 대신, 일본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아들 최 씨가 짧은 휴가를 내고 잠시 귀국해 올스타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최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1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야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아직도 아버지를 기억해주시고, 추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뭉클했다"며 "항상 감사했지만 더 큰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최동원의 '분신'인 최 씨가 야구선수 아버지의 위용을 새삼 실감한 건, 2011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영구결번식 때였다. 최동원이 은퇴하던 해 세상의 빛을 봤던 어린 아들은 그 전까지 "아버지가 야구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모든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검색만 하면 고화질 영상이 줄줄이 쏟아지는 요즘과 달리, 최동원이 활약하던 1980년대 프로야구의 영상과 사진 자료는 쉽게 찾아볼 수 없으니 더 그랬다.
최 씨도 학창 시절 3년 정도 야구 선수로 뛴 적이 있지만, 아버지는 "학교 감독님과 코치님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 내가 괜히 혼선을 주면 안 된다"며 야구 기술이나 자신의 선수 생활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최 씨는 "내게는 그냥 다정하고, 때로는 엄격하기도 한 평범한 아버지셨다. 그런데 야구장에서 만난 유명한 야구선수 분들께 전해 듣는 아버지는 또 다른 분 같았다.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또 자랑스러웠다"고 떠올렸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라이벌전을 다룬 영화 '퍼펙트 게임'도 최 씨에게는 감회가 남달랐다. 최 씨는 "야구를 직접 해보면, 공을 100개만 전력 투구해도 팔이 빠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이 힘들다. 그런데 두 분 다 (세 번째 승부에서) 200개를 넘기면서 연장 15회까지 버티셨다"며 "양 팀 에이스로서 긴장감과 압박감을 모두 이겨내고 끝까지 책임감을 보여줬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다시 한번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선동열 감독님이 존경스럽더라"고 감탄했다.
최 씨는 올스타전에서 선동열 전 감독과 같은 차를 타고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 안에서 아버지 얘기를 주고 받다 또 한 번 눈물을 참아냈다. "선동열 전 감독님이 예전에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또 아버지의 연투 능력, 자기 관리, 야구를 대하는 마음가짐 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세히 얘기해주셨다. 새삼 감동을 받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했다.
많은 야구인은 최동원을 자존심 강한 천재 투수이자 냉철한 승부사로 떠올린다.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조금 다르다. 집 근처 공원에서 함께 캐치볼을 하며 즐거워하던, 고교 시절 어느 날의 함박웃음이 머릿속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최 씨는 "그날 집에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하러 나가실래요?' 하니까 흔쾌히 '그러자' 하셨다. 우리 둘이 캐치볼을 하니 어느새 (아버지를 알아본) 주변 분들이 곁에 모여 응원을 해주시더라"며 웃었다.
당시 최동원은 캐치볼조차 힘들 만큼, 어깨에 만성 통증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도 아들의 공을 받고 아들을 향해 공을 던지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최 씨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또 "평소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가 무척 크다. 여전히 투수 최동원을 그리워해주시는 많은 분들처럼, 나도 실은 아버지가 정말 보고 싶다"며 마음에 오래 담아뒀던 그리움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