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든 ‘처남’이든 걸리면 친다
▲ ‘벤츠 여검사’ 파문으로 코너에 몰린 검찰이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대검찰청 전경과 이국철 회장(위), 부산저축은행 브로커 박태규 씨.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최근 검찰은 이국철 회장(구속)의 정권실세를 상대로 한 로비의혹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이 건넨 명품시계를 대영로직스 문환철 대표(구속)로부터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이 확인된 이상득 의원의 박 아무개 보좌관을 8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자택에서 체포했다. 이 회장의 구명로비 창구로 지목돼 온 문 씨는 그동안 SLS그룹에 대한 검찰수사 무마 및 워크아웃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힘써 주겠다는 명목으로 이 회장으로부터 7억 8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이 회장이 로비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박 씨가 문 씨를 통해 고급시계를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 씨로부터 시계를 받았다가 돌려준 박 씨는 “기념품인 줄 알았는데 고급시계라는 걸 알고 돌려줬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씨가 문 씨에 대한 수사 직후에 시계를 돌려준 것으로 보고 대가성 여부를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문 씨가 로비자금으로 받은 7억 8000만 원 중 일부가 박 씨에게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회장은 얼마 전 공개된 비망록에서 문 씨를 통해 정권실세 로비 명목으로 60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검찰은 문 씨에게 전달된 로비자금 일부가 이 의원의 측근인 박 씨에게 흘러 들어갔을 경우 이 의원이 인지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장이 문 씨를 통해 박 씨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면 이는 현 정권 최고 실세인 이 의원의 영향력을 염두에 뒀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 이상득 의원(왼쪽)과 박영준 전 차관. |
이와 관련 박 전 차관은 “SLS 관계자가 함께 있었던 것은 맞지만 술값은 지인이 계산했다”며 증빙 자료를 공개하면서 이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권 씨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2009년 5월 도쿄의 한 단란주점에서 박 전 차관 일행을 접대했고 술값 20만 엔을 냈다. 박 전 차관이 이용한 승용차 렌트비 10만 엔도 내가 계산했다”고 박 전 차관의 해명과는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여기에 김형준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박 전 차관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차관 접대 의혹이 불거진 직후 김 전 춘추관장이 권 씨에게 전화를 걸어 “SLS가 비용을 계산한 3차 술자리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요구한 진술도 이미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검찰은 이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박 전 차관을 무고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검찰은 얼마 전 김 전 춘추관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마쳤고, 조만간 박 전 차관도 소환조사 한다는 방침이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보좌관인 박 씨의 신변이 확보된 데 이어 핵심 측근인 박 전 차관마저 소환될 경우 검찰의 수사 칼날이 ‘상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 의원을 겨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핵심측근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됐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브로커로 활동한 박태규 씨가 만난 거물 리스트에 이 의원도 포함돼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한 ‘몸통’ 수사가 재개될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은 대통령 친인척 비리 수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12월 8일 제일저축은행의 구명로비 의혹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이자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세방학원 이사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저축은행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권익환 부장검사)은 지난 10월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구속기소)을 상대로 검찰과 금감원, 국세청 등에 구명 로비를 벌인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 회장이 김 이사에게 “영업정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회장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김 이사와 오랫동안 다져온 친분을 바탕으로 올해 초 김 이사를 직접 만나 구명 로비 청탁과 함께 4억 원 안팎의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유 회장의 진술을 바탕으로 그가 김 이사에게 건넸다는 돈을 김 이사가 개인적으로 모두 사용했는지, 아니면 저축은행 경영실태 조사를 담당했던 관계기관 인사들에게 건넸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김 이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TK(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실세로 자리매김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담배인삼공사 사장을 지내는 등 독자적인 영향력과 탄탄한 인맥을 다져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 이사는 2009년 11월 서일대 재단인 세방학원 이사로 취임한 뒤 올해 초 학원 운영권 분쟁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최근 설립자 이용곤 씨가 아들 문연 씨를 이사장으로 세우려 하자 김 이사가 반대해 갈등을 겪은 바 있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경찰청, 교육과학기술부가 서일대 학내 분쟁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횡을 일삼던 세방학원 이용곤 이사장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이 이사장이 자신에게 홍차를 끼얹자 청와대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이 이사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는 이른바 ‘서일대 홍차 사건’이 그것이다.
또한 김 이사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의 실소유주 논란이 일었던 ㈜다스의 감사 겸 최대주주이자 김윤옥 여사의 남동생인 김재정 씨가 지난해 2월 사망한 이후 김 여사 측을 대표하는 인사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상득 의원의 핵심 측근들과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이 검찰 수사선 상에 오르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이 대통령은 그동안 “임기 중 측근비리는 없다”고 공언해 왔다는 사실에 미뤄 측근과 친인척을 겨냥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일부라도 혐의가 드러날 경우 현 정권의 도덕성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통령의 임기가 1년 2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권력형 비리 내지는 친인척 비리가 터질 경우 현 정권은 극심한 레임덕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경찰과 극심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벤츠 여검사’ 사건이 터지면서 코너에 몰린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정관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