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화려하게 이별은 소리없이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재벌가 인사들의 결혼식은 규모와 내용면에서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일부 재벌가 혼사 등은 정략이 얽히고설키며 파경의 아픔을 감내해야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이혼·재결합을 반복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가장 떠들썩했던 재벌가 이혼소식은 정용진-고현정 부부의 파경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여동생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유명 탤런트 고현정씨가 결혼생활 8년6개월 만에 이혼한 것이다. 지난 95년 결혼한 정용진-고현정 커플은 이혼조정신청 접수 2시간 만에 조정을 이뤄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후 정 부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고현정씨는 성공적인 연예계 복귀를 이뤄내 이혼 이후‘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벌가 인사와 유명 연예인의 ‘결혼→파경’ 사례는 의외로 많다.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방송 앵커를 맡아 유명세를 탔던 한성주씨는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셋째아들 채승석씨와 결혼한 뒤 10개월 만에 파경을 맞기도 했다.
이런 당대를 풍미한 연예인과 재벌가 인사의 결합 사례 중 으뜸은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경우다. 그는 수차례에 걸친 결혼과 이혼 상대가 모두 연예·방송인이었다는 진기록을 갖고 있다.
최 전 회장의 첫 번째 부인은 60년대를 주름잡았던 육체파 여배우 김혜정씨였다. 최 전 회장과 김씨 사이엔 남매가 있다. 그러나 이들 남매의 위로 여섯 살 많은 누나가 하나 있다. 최 전 회장이 20대 초반에 사랑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 여배우 이아무개씨와의 사이의 딸인 것이다. 최 전 회장은 이아무개씨와 정식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첫 부인은 김혜정씨가 되는 셈이다. 김혜정씨의 아들도 몇해 전 인기 여배우 C씨와 열애설에 휩싸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최 전 회장은 김혜정씨와 이혼후 지난 76년 가수 배인순씨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인기여성그룹 펄시스터즈의 멤버였던 배인순씨와의 결혼은 세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사건이었다. 최 전 회장은 배씨와의 사이에 3형제를 뒀다.
다른 부인들에 비해 많은 자녀들을 두었지만 이것이 배인순씨와의 파경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지난 98년 배인순씨와 이혼한 최 전 회장은 이듬해인 99년 7월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장은영씨와 결혼하게 된다. 장씨는 70년생으로 43년생인 최 전 회장과는 27년 차가 나며 최 전 회장 맏딸인 장씨보다 여섯 살이 많고 맏아들은 동갑내기다.
얼마 전 배인순씨는 자전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을 내면서 전 남편인 최 전 회장의 연애행각을 털어놔 최 전 회장측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최원석 전 회장과 비슷한 또래의 재벌가 회장 중 이혼 사례를 찾자면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과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형제를 들 수 있다.
▲ 최원석 전 회장과 장은영씨 부부. | ||
LG그룹의 구씨 일가 족보에서도 몇 군데 이혼과 재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 구인회 LG창업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구철회씨(75년 작고) 장남 구자원 넥스원퓨처 회장은 맏딸 때문에 마음고생깨나 했을 것으로 보인다. LG화재 회장을 지냈으며 구본무 LG회장의 숙부뻘 되는 구자원 회장의 맏딸은 지난 89년 2월 최아무개씨와 화촉을 밝혔지만 불과 1년 후인 90년 2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이때 나이 24세였다. 그러나 5년 후인 지난 95년 선아무개씨를 만나 새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이 커플은 돌아온 싱글끼리의 결합이었다. 재혼커플이라는 얘기다. 선아무개씨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맏사위의 친형이다. 대전의 유명 병원 집안이던 선씨 일가는 이들 형제의 결혼으로 현대차 일가, LG 일가와 차례로 사돈이 되는 바람에 일약 재계 혼맥의 허브로 발돋움하게 됐다.
구자원 회장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것은 맏딸뿐만이 아니었다. 구 회장 여동생 구아무개씨는 지난 63년 다섯 살 연상의 정아무개씨와 결혼해 2남1녀를 뒀지만 결혼생활 17년 만인 지난 80년 1월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이혼서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그해 7월 다시 혼인신고를 했다. 5년 후인 85년 7월 두 사람은 다시 이혼신고를 하게 되며 7년 후인 92년 4월 혼인신고를 다시 해 이들 부부는 총 ‘3번의 혼인과 2번의 이혼’ 기록을 호적에 남겼다. 재결합 이후 3년이 지난 95년 4월 구 회장 여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남편 정씨의 아내로서 정씨 호적에 남은 채 눈을 감은 것이다.
구본무 LG 회장이 지난해 말 양자로 들인 광모씨의 친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도 이혼 전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두 번 한 케이스다. 구본무 회장 동생인 구본능 회장은 지난 76년 강아무개씨와 결혼해 광모씨를 낳았다. 그러나 강씨는 지난 96년 43세 나이로 사망했고 구본능 회장은 2년 후인 지난 98년 차아무개씨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78년생인 광모씨와 66년생인 차아무개씨는 불과 12살 차이다. 구본능 회장은 차아무개씨와의 사이에서 지난 99년 딸 하나를 얻었다.
최태원 SK 회장 여동생 최기원씨의 이혼 전력도 재계에 널리 알려진 일이다. 고 최종현 회장 막내딸인 최기원씨는 (주)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던 다섯 살 연상 김아무개씨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난 2000년 5월 파경을 맞았으며 최기원씨는 현재까지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이혼 뒤 김아무개씨 명의로 돼있던 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 C&C의 지분이 기원씨 명의로 이전돼 이혼을 ‘실감’케 하기도 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장남 이맹희씨의 장녀이자 이재현 CJ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의 이혼 스토리도 한때 재계 화제였다. 이 부회장은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이혼하고 나서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를 맡아 성공적인 여성 CEO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이미경 부회장의 경우처럼 이혼 이후 경영인으로 성공한 사례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을 꼽을 수 있다. 신 부사장은 결혼 전부터 수려한 외모로 화제에 올랐던 여성이다. 지난 67년 25세 나이로 장오식 전 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했지만 이혼 이후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신 부사장은 젊은 시절 빼어난 용모와 가정학이라는 전공과목 탓에 경영 참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이혼 이후 부사장직까지 오르며 현재 롯데쇼핑의 실세로 불릴 정도로 성공한 CEO로 자리잡았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셋째딸인 이순희씨도 결혼-이혼-재결합의 인생굴곡을 겪었다. 이순희씨는 지난 63년 23세 나이로 김규 현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장과 화촉을 밝혔지만 결혼생활 23년 만인 지난 86년 파경을 맞았다. 그러나 7년 후 이순희씨는 김규 교수와 재결합하게 된다. 이순희씨와의 재결합 이후 김규 교수는 서강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미디어영상문화원장을 거쳐 영상대학원장직에 올랐다.
코오롱그룹 오너일가에도 이혼에 관한 유명한 사례가 있다.
정·재계 결합으로 떠들썩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대표의 딸 예리씨와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동생 이동보씨의 결혼이 이혼으로 끝났던 것이다. 또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막내딸도 이혼·재혼의 곡절을 겪었다. 지난 2003년 작고한 유명한 법조인의 장남과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은 후 외국계 회사 임원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밖에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의 장녀는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조경철 박사와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아 독신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0년 이종환 삼영그룹 회장은 아내 신아무개씨와 황혼이혼 송사를 벌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