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대 맞을 것’ 동그라미 집안 분쟁 해결법 “엄청난 전략”…‘대형로펌 묘사’ ‘어쏘 변호사 활약’ 등은 “비현실적”
법조계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맹활약한다는 내용을 놓고 “장애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을 담아 인상적”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폐쇄적인 법조계에 일침을 놓는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사건의 경우 극 중 우영우 변호사(박은빈 분)의 대응 전략을 놓고 ‘실제 있을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진짜 현실에서는 ‘신입, 로스쿨 출신,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가 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사례들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요신문이 현직 변호사들에게 드라마 속 묘사와 현실의 ‘갭’에 대해 물어봤다.
#가족 간 다툼 유도? 비윤리적이지만 ‘현실적 조언’
우영우 변호사의 친구 동그라미(주현영 분)의 아버지는 두 형들과 강화도 땅 토지보상금 100억 원을 놓고 계약서에 서명한다. 보상금을 장남 50%, 차남 30%, 막내 20%로 나누는데, 모든 비용과 세금을 막내가 부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무효로 만들기 위해 우영우 변호사 측은 ‘형들 가족에게 몇 대 맞을 것’을 조언한다. 드라마에서는 동그라미와 아버지는 형들 가족에게 폭행을 당하고 이를 토대로 계약서를 무효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변호사들이 ‘엄청난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대목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상속 과정에서 가족 간 갈등 사건이 많지만 이처럼 폭행을 유도해서 무효로 만들어내는 케이스는 본 적이 없다”며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의뢰인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다소 비윤리적인 부분도 있지만, 민법에 명시된 가족 관련 조항들을 잘 찾아내 활용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드라마 작가가 실제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각색해 활용한 덕분에 다른 법조 드라마보다 더 실감나는 장면들이 등장했다는 평이다.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사건에 여러 변호사들과 함께 투입돼 회의를 하다 보면 사건에 대해 내가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나 측면에서 접근해 의뢰인에게 유리한 법적 다툼 여지를 만들어내곤 하는 변호사들이 있다”며 “그들을 보면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우영우가 부동산 토지보상금 갈등 사건에서 보여주는 민법 활용 지점을 보며 ‘내가 가끔 마주친 천재 변호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감탄했다”고 설명했다.
법적 용어를 적절하게 잘 사용한 것도 호평을 받는다. ‘소를 제기한다’거나 ‘주의적 청구’와 같이 법조인들만 활용하는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평이다. 드라마 관련 자문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도 “보통 법정 드라마에서 ‘주의적 청구’나 ‘소장 변경’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못 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법정 중심으로만 풀어가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설정도
하지만 드라마에서 ‘법정 변호’로 이야기를 풀어가려다 보니 다소 무리하게 넘어간 부분들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언급한 동그라미 아버지 케이스도 이에 해당한다. 동그라미의 가족들은 우영우 변호사와 상담한 이후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수에 가까운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실제로 동그라미 씨 같은 사건을 상담하게 된다면 일단 소송을 시작하기 전에 전화로 ‘과거 폐기된 법을 토대로 장남과 차남이 막내를 속였다’는 내용을 그들 입으로 인정하게끔 하는 녹취를 확보하는 게 먼저였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억지로 폭행당할 필요 없이 깔끔하게 승소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증거를 확보하고 재판을 시작하는 게 기본인데 드라마에서는 재판정에서 극적으로 보여주려다 보니 재판정이 아닌 곳에서 이뤄지는 변호사의 조언과 전략들은 과감히 배제된 느낌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드라마와 현실의 간극을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 더 있다. △학생들을 약취 유인한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방구뽕(구교환 분)의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 검찰이나 경찰이 재판정에 참석하지 않은 점 △형사 사건 중 거의 대부분이 ‘피고인에게 불리하다’고 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하는 점 △재판장이 우영우 변호사의 동료 최수연 변호사(하윤경 분) 아버지와의 친분을 대놓고 언급한 점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드라마에 사용된 방구뽕 사건 같은 경우 경찰과 검찰 수사 기간만 해도 최소 20일 이상은 진행되는데, 이런 사건의 경우 법원에 앞서 경찰과 검찰에 잘 호소하면 혐의를 낮추거나 구속이 아닌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며 “법원이 아닌 곳에서도 변호사들의 변론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로펌에서 공익 사건을 처리한다?
특히 법조계는 ‘대형 로펌에 대한 묘사’가 너무 현실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서울 강남구 역삼역 한복판에 위치한 1, 2위를 다투는 대형 로펌에, 갓 출근한 새내기 변호사가 형사·민사·공익 사건에 전담으로 모두 투입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극 중에서처럼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최고의 법률 인재를 공익 사건에 투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보통의 어쏘 변호사(소속 변호사)는 6개월가량 재판에 직접 투입되지 않고 극히 제한적인 일을 도맡는다. 시니어 파트너 변호사들의 지시를 받아 의견서를 작성하서나 관련 자료 검토 등 기초적인 경험을 쌓는다. 법정에 직접 나가 판사를 상대하려면 최소 6개월은 있어야 하고, 그 후에도 민사나 형사 중 전문성이 쌓인 영역에 집중하게 된다.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처럼 입사하자마자 법정을 드나들며 존재감을 과시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또 '서브 아빠'로 떠오른 정명석 변호사(강기영 분)처럼 시니어나 파트너급 변호사가 공익사건에서부터 형사, 민사 사건까지 일일이 어쏘 변호사를 따라 다니며 챙겨주는 것이나, 이준호(강태오 분)처럼 변호사가 아닌 송무팀 직원들이 법정을 따라다니는 일 역시 없다는 게 변호사들 다수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를 대형 로펌이 뽑는 일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앞선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부를 떠나, 변호사의 시선에서만 보면 흥미로운 점도 있고 현실과 괴리가 있는 지점도 많다”면서도 “장애를 가졌지만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에 대해 법조계도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하는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드라마 같다”고 평가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