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국장 부인 불구 ‘밀정 의혹’ 일파만파…졸속·위법 논란 속 국가경찰위 후속 조치 예고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행정안전부(행안부)와 일선 경찰의 대치가 지난 2일 경찰국 출범을 계기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은 모양새다. 경찰국이 출범한 이후에도 연이어 터지는 각종 논란 때문인데,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지난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경찰국은 뜨거운 감자였다. 이날 청문회는 경찰청장 청문회가 아닌 ‘경찰국 청문회’로 봐도 무방했다. 경찰청장으로서 윤 후보자의 전문성이나 개인적 도덕성보다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청문회가 진행됐다.
주요 쟁점은 경찰국 신설의 정당성과 김순호 경찰국장 밀정 의혹이었다. 특히 경찰국 신설과 관련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찰국 설립 자체가 경찰법 위배’라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경찰국 신설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윤희근 후보자는 여당과 함께 경찰국 신설 및 경찰대 중심의 간부 인사 개혁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경찰국 신설이 정부조직법에 위반된다는 지적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찰국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지 않고 지난 7월 26일 하위규정인 시행령(대통령령) ‘행안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를 일부 개정해 마련됐는데 이를 두고 위법한 신설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게다가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위법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입법조사처에서 받은 ‘경찰국 위법 결론’ 의견서에 따르면 입법조사처 자문위원들은 “정부조직법상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 사이에는 일반적인 지휘·감독 관계가 성립될 여지가 없다”며 “행안부 내에 경찰국 설치를 한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자문위원들은 “정부조직법 7조 1항에는 ‘각 행정기관의 장은 소관 사무를 통할하고 소속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행안부 장관은 치안 사무를 관장하지 않아 경찰청을 통할하지 않는 위치이므로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할 수 없다”며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직접적으로 지휘할 권한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시행령 개정을 통한 경찰국 신설은) 위법하다”고 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과 윤희근 후보자 측은 경찰국 신설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과거 정부에서는 청와대에서 경찰의 인사 및 관리·통제를 밀실에서 해왔다”며 “이제는 경찰국을 신설해 제대로 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윤 후보자도 경찰국과 관련해 “경찰에 대한 민주적 관리·운영, 민주적 통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의 30여 년 전 경찰 입문 과정도 논란이 됐다. 김 국장은 1989년 대공특채로 경찰계에 발을 들였는데 이 시기는 당시 김 국장이 학생운동을 했던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돌연 잠적한 시기와 불과 반 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를 두고 과거 인노회 회원들은 그가 동료를 밀고하고 그 대가로 특채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취재를 종합하면 성균관대에 재학 중이던 김순호 국장은 운동권 서클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1983년 4월 군에 강제 징집됐다. 그 후 보안사령부(현 국군안보지원사령부)의 ‘녹화사업(사상전향 공작)’ 대상자로 지목됐다. 녹화사업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던 대학생을 강제 징집해 끄나풀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군 전역 이후 김순호 국장은 인노회에서 지구위원장으로 활동해왔는데 회원들 주장에 따르면 김 국장은 인노회 노동운동을 이끌던 핵심 회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89년 봄 갑자기 모습을 감췄고 공교롭게도 그 시기 경찰의 인노회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수사로 인노회 회원 15명이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됐는데 이 무렵 연락이 끊긴 김 국장은 몇 달 뒤 대공공작요원으로 경찰에 경장 특채됐다. 이후 치안본부 대공수사3과에서 경찰청 보안5과, 보안4과 등을 거쳐 1990년대 말까지 대공수사 및 보안업무를 담당했다.
김순호 국장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관련 의혹에 대해 “소설 같은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1989년 2월부터 인노회 회원들에 대한 체포가 시작됐고 몸을 피해 고향집으로 내려갔다가 7월쯤 경찰에 출두해 자백했으며 이 과정에서 동료를 밀고한 사실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인노회 회원들의 구속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김 국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은 특채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특채 후) 대공분야 증거물 분석 담당을 주로 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녹화사업 대상자로 끄나풀 활동을 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인선을 발표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김 국장의 과거 행적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김 국장을 추천한 윤 후보자 역시 “그런 과거까지 살펴보지 않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경찰 관계자는 “사실 여부를 떠나 밀정 의혹이 있는 분이 초대 경찰국 수장으로 온다는 것은 31년 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사라진 치안본부의 모습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법정 공방도 예상된다. 경찰국 신설 등을 두고 절차·방법 등 문제를 제기해 온 국가경찰위원회에서는 관련 법적 대응 등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경찰장악대책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고 경찰국 신설 강행에 대한 법률 검토 등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 참석한 총경들의 징계 절차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일선 경찰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징계를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윤희근 후보자는 “사실관계 확인 후 사안의 경중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