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정치권력 종속 내무부 치안본부서 독립…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민주성 제고’ 주장 아이러니
우선 일선 경찰들은 경찰국 신설로 경찰의 중립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다. 과거 정치권력에 종속되었던 경찰조직을 민주적이고 독립적 기관으로 개편해 큰 문제없이 운영되어온 경찰을 또다시 정치권력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라는 주장이다.
반면 정부는 비대해질 경찰 권력 견제 등 민주성 제고를 위해 경찰국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7월 26일 오후 3시 열린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찰 운영을 정상화해 민주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3회 국무회의에서 경찰국 신설 개정령안 통과에 대해 “이제까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관장하던 실질적인 경찰청에 대한 통솔을 내각인 행안부 장관이 좀 더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관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경찰청의 전신인 치안본부가 31년 전에는 '경찰의 민주성 제고'를 명분으로 내무부에서 독립했다는 점이다. 과거 내무부 치안본부 소속이었던 경찰은 민생보다 권력상층부를 맹종했다. 특히 군부정권 유지를 위해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하수인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인 오점을 남겼다. 이런 가운데 1987년 치안본부 경찰간부의 박종철 고문 치사 사인 은폐조작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 중립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88년 1월 28일 동아일보는 ‘경찰 중립화, 자성의 소리’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정권의 바람막이로 국민적 질타를 당해 온 경찰조직 내에서 민주경찰로 돌아가자는 개혁의지가 분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요구는 경찰대학 졸업생들과 대학 재학 중 입대한 전경 등 젊은 엘리트 경찰관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며 “선배들의 움직임과 관련 경찰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신뢰 회복 및 중립화를 염원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당시 치안본부의 한 간부는 “우선 정치로부터라도 독립시켜달라”며 “하수인 노릇만 해서는 민생 치안도 어렵다”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 치안본부는 국정감사에서 ‘경찰기구독립에 대한 답변자료’를 통해 “치안본부를 내무부 직속 외청으로 격상하기 위한 부처간 합의를 마무리했으며 경찰의 독자성을 강화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1991년 7월 12일 경찰청조직개편안이 확정됨에 따라 8월 1일 경찰청이 탄생했다.
독립 과정에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1년 7월 3일 내무부는 경찰청 발족 이후 내무장관과 경찰청장 사이의 새로운 지휘통제 관계를 규정한 내무부령을 만들어 송부했다. 당시 내무부가 치안본부에 보낸 ‘내무부 장관의 소속청장에 대한 지휘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경찰청장이 예산과 인사 등 주요 정책을 행사할 경우 세세한 부분까지 내무장관에게 보고하고 사전 승인을 받도록 돼있었다. 또 경정급 이상 간부의 임용 및 징계 때도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가 경찰과 언론의 반발이 커지자 이틀 만에 ‘승인’을 없애고 ‘보고’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청 발족 이후에도 경찰은 한동안은 내무부에 대한 종속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경찰 수뇌부는 경찰청 독립 이후에도 단순범죄 발생 처리 현황은 물론 경찰청 고유 업무까지 보고하기 위해 내무부 장관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에 참석하거나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91년 9월 16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유상식 정보국장의 경우 과거 치안본부 4차장이 하던 일일상황 정보보고를 월요일과 목요일 매주 2번씩 내무장관에게 했고, 정보국장 외에 교통국장·형사국장 등도 내무장관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내무부가 경찰 반발에 못 이겨 지휘규칙을 수정했지만 사실상 큰 효과는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행안부가 내놓은 ‘행안부 장관의 소속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안’도 과거 내무부가 치안본부에 보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행안부 개정안 내용에 따르면 경찰청장은 국무회의에 상정할 사항 등은 행안부 장관에게 미리 보고해야 하며, 대통령·총리·장관 지시 추진 실적, 대통령·국회·감사원 등에 보고·제출하는 중요 자료, 감사원 감사 결과, 예산에 관한 중요 자료 및 법령 해석에 관한 회신 등에 관한 사항도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경찰·소방에 관한 기본계획의 수립 등 중요 정책사항에 대해서는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이 행안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선 경찰들이 경찰국 신설 후 경찰의 독립성을 우려하는 이유다.
한편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염원은 1991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1991년 7월 30일 한겨레는 경찰청 발족을 계기로 인사 예산권 등에서 독립성이 진전되기는 했으니 수사권 독립을 향한 경찰의 한결같은 염원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서울 청량리경찰서 형사계 한 경찰관은 “외청으로 독립했다 하더라도 치안은 내무부에, 작전은 군에, 경호·경비는 청와대 경호실에, 수사는 검찰에 묶여 지휘·감독을 받아야 하는 처지는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