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하는 안풍 너머 ‘정’소리 울린다
▲ 안보 정국이 대권잠룡 안철수 원장에게 가장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공동취재단 |
‘안철수 대세론’의 균열 조짐은 22일 발표된 아산정책연구원-리서치앤리서치 공동 여론조사(전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 휴대전화 RDD(임의전화걸기)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에서 단적으로 나타났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안 원장은 28.4%의 지지율을 얻어 28.1%를 얻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근소하게 앞섰다. 문재인 이사장이 6.3%, 손학규 전 대표 3.6%, 김문수 경기지사 3.5%,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2.3%,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2.1%, 정동영 전 최고위원 1.6%,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 1.5% 순으로 뒤를 이었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북한 급변 사태에 가장 잘 대응할 후보’를 물은 질문에서는 박 위원장이 29.9%를 얻어 안 원장(13.2%)을 멀찍이 따돌렸다. 문 이사장(6.3%)과 정 전 대표(5.3%), 손 전 대표(4.4%), 이 전 총재(3.8%), 김 지사(3.4%), 정 전 최고위원(2.9%), 유 대표(2.8%) 등은 지지도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안철수와 외교·안보 이슈는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이는 마치 2006년 10월 9일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위원장을 제치고 대선주자 지지도 1위로 치고나갔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박 위원장 역시 외교·안보 이슈가 부각되는 상황에선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지니고 있지만 뚜렷한 보수, 원칙주의자 이미지로 인해 안 원장에 비해 타격을 덜 받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과 함께 2012년 4월 11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에 비해 대선이 김정일 사망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북한 사정에 정통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김정은(북한 노동당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체제’에 당장 큰 변화가 올 가능성은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면서 “2012년 총선에선 북한 변수보다는 ‘정권 심판론’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이 설정한 강성대국 원년인 2012년 태양절(4월 15일) 이후에야 김정은식 통치가 구체화되고 그에 따라 북한 내부는 물론 한반도 정세에도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차기 대선을 앞두고 야권 지지층의 후보 선택시 외교·안보 이슈 및 한반도 문제 관리 능력이 주요 기준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갈수록 존재감을 잃고 있었던 손학규 전 대표와 문재인 이사장, 정동영 정세균 전 최고위원 등에게 반전의 기회가 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까지 맡았던 정동영 전 최고위원이 새롭게 조명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이명박 대통령과 맞붙었던 정 전 최고위원은 “개성공단을 10개 더 만들겠다”며 이른바 ‘평화경제론’을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한의 상호의존성을 높임으로써 한반도 화해·협력 시대를 열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 이사장도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했다가 남북관계 파탄을 경험한 바 있지만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문 이사장으로선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머리뿐 아니라 몸으로도 배웠을 법하다.
손학규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최고위원은 외교·안보, 한반도 문제와 직결되는 경력은 없다. 하지만 손 전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정 전 최고위원은 산업자원부 장관 시절 남북경협 문제를 다뤄본 당사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국회의원과 당 지도부, 장관 등 풍부한 국정 경험이 장점이다. 외교·안보 이슈와 경제 이슈는 연동돼 있다. 국민들이 위기 상황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안정적 리더십을 원하게 될 경우 두 사람 모두 밀릴 게 없다.
한반도 정세의 유동성이 커지는 게 야권 대선주자들의 경쟁 구도에도 유동성을 키울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자체로 ‘안철수 대세론’이 사그라질 것으로 판단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거론되는 대선주자들 모두 국민들 눈에는 기성 정치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일거에 사라질 리 만무한 만큼 안 원장의 영향력은 유지될 것이라는 얘기다.
민주통합당 내에서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관계자는 “지지율 5%에 불과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단박에 스타로 만들어준 데서 볼 수 있듯 안 원장의 파괴력은 꾸준히 유지될 것”이라며 “자신이 직접 대선에 나서지 않더라도 최소한 ‘킹 메이커’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이 관계자는 “안 원장은 그동안 일반 정치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국민들을 감동시켜왔다”면서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안 원장이 국민의 상식과 부합하는 한반도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