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없는 정공법, 성병희 작가 갤러리 ‘콜라스트’에서 개인전 열려
성병희 작가의 작가 노트 중 일부다. 하드보일드한 화풍으로 눈길을 끄는 성병희 작가를 두고 ‘타협 없는 정공법’이란 평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아트 컬렉터가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둔다는 가정을 한다고 했을 때 지나치게 강렬한 성 작가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성 작가는 타협 없이 자기 작품 스타일을 고집해왔다.
강렬한 화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성 작가의 개인전이 2022년 8월 12일부터 2022년 9월 8일까지 성수동 콜라스트에서 열렸다. 성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팬데믹’, ‘메멘토 모리’ 등의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성 작가의 2012년 작품부터 2022년 최신작까지 다양하게 전시됐다. 그림은 대부분 판매됐지만 작풍의 변화 흐름도 살펴볼 기회다.
성 작가는 강렬한 감정을 그림 속에 남김없이 표출한다. 개인이 겪는 고통을 우회해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 깊숙한 곳에 절규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언뜻 보기에 꺼려질 정도로 표현한다. 성 작가도 ‘나에게 예술은 우회나 살짝 덮어버리는 포장지가 아니라, 실체를 보고 쓰리지만 직접 바라볼 수밖에 없게하는 정공법’이라고 설명한다.
성 작가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혐오감을 느끼는 소재를 남김없이 사용한다. 비린내가 날 것 같은 생선, 쌓여있는 해골, 괴기스러운 서커스, 내장이 드러난 동물, 징그러운 벌레, 피로 흠뻑 젖은 손, 고통받는 아기 등을 공포스러울 정도로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성 작가의 작가 노트에서 ‘후벼파는 칼날’은 작품을 보는 관객이 실감 나게 느낄만한 표현이다.
성병희 작가는 1966년생으로 중견 작가지만 그림만 보면 최근 NFT나 디지털 아트 세대의 그림에서 엿보이는 소위 ‘힙’한 모습이 있다. 성 작가는 이런 그림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특히 성 작가의 그림은 디테일과 구성에서 강점이 드러난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남동생의 죽음을 주제로 그림 ‘메멘토 모리’에는 구석구석 상징적 의미를 담은 메타포를 그려 넣었다. 관객은 다양한 메타포를 통해 이 그림에서 단지 남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일생이 끝없는 곡예와 같다는 점, 영원히 이어지는 계단에선 삶의 연결성 등을 발견해 나갈 수 있다.
또 다른 시리즈로 성병희 작가의 팬데믹은 불교의 지옥도를 옮겨온 듯한 고통받아 절규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해골이 쌓여 있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절규하고 있다. 성 작가는 ‘팬데믹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아프고 죽고 각자의 장소에 갇혔다. 가까운 가족과도 만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림에 담았면서 ‘팬데믹 기간에 진정 두려운 건 이 상황보다 적응해 가는 마음이다’라고 밝혔다. 성 작가는 자신의 작가 노트처럼 이런 팬데믹 상황을 우회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강렬한 화면으로 옮겨 ‘아프지만 바라보면서 다시 걸어가게 하는 것’이란 의도에 충실하고자 했다.
성 작가의 그림 속 인물은 대부분 눈이 붉게 충혈돼 있고 몸은 타투(문신)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성 작가는 충혈된 눈과 타투에 대해 ‘새빨갛게 충혈된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모습’을, ‘타투는 글자와 내용이 멍든 것처럼 새파랗게 보이고, 지울 수 없는 인생의 흔적이 그 사람의 표면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라고 얘기했다.
성병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성 작가 그림이 개인전 첫날 대부분 팔렸기 때문이다. 장윤호 콜라스트 대표는 “이번 전시는 판매 목적보다는 성병희 작가를 알리기 위한 아카이빙 기획이었는데 거의 모든 작품이 다 판매됐다”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성 작가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작가다. 이제 알아봐 주는 분들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