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참여자들, 정점 찍고 내려왔다는 분석에 대체로 동의…“컬렉터들도 ‘살아남는 작품’ 보는 안목 길러야”
최근 한 전시회에서 만난 작가 A 씨의 말이다. A 씨는 올해 초 정점을 찍었던 미술시장이 서서히 내려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미술계에서도 2022년 초까지 이어졌던 붐이 이대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니면 제대로 된 작가가 살아남는 일종의 ‘옥석 가리기’ 시즌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술시장은 2020년을 기점으로 아트테크(미술품+재테크) 붐이 불면서 관심이 뜨거워진 바 있다. 아트테크는 미술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두고 감상하다가 작품 가격이 오르면 이를 팔아 부가 수입도 얻을 수 있는 재테크 방식이다. 수억 원 이상 작품은 여러 명이 분산해 일부를 사는 일명 ‘조각투자’ 플랫폼도 여럿 나타났다.
아트테크는 2021년 아트페어(미술품 전시, 판매 행사)마다 수백억 원대 매출액을 올리며 기록 경신을 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인기 작가의 경우 전체 매출액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작품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2022년 상반기에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돼 지방 아트페어에서도 매출액 경신 관련 보도가 계속됐다.
일부에서는 호황을 얘기하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언론 보도가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인사동 갤러리 대표 B 씨는 매출액 경신 보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B 대표는 “지난 5월 조선일보에서 ‘아트페어마다 역대 최고 매출 신뢰할 수 있나’는 보도가 있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다만 아트페어가 전시하는 갤러리들의 매출액을 제대로 집계도 안 하는데 ‘이번 아트페어 매출액 신기록 썼다’는 기사는 계속 나왔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상반기까지 이어졌던 붐에도 불구하고 미술계 참여자들은 당분간 지난해 말, 올 초처럼 호황기가 찾아오긴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물가 폭등, 금리 인상 등 살기 팍팍해지는데 미술품에 손이 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가장 줄이기 쉬운 미술품 구입액부터 동여맬 것이란 반응이었다. 또한 주식이나 가상자산 등에서 수익을 올리면 수익금 일부를 코로나19 영향으로 여행 대신 미술품을 샀는데, 자산가치 하락으로 인해 그런 일도 적어질 것이란 반응도 있었다. 대체로 호황기가 끝나면서 수준이 떨어지는 작가를 골라내는 옥석 가리기 시즌이 되리란 전망이 많았다.
미술 관련 비평을 하는 C 씨는 ‘호황은 끝났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주변에 미술품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도 ‘2022년 4월 이전에 갖고 있던 작품은 웬만하면 다 팔고 겨울을 준비하라’고 말한 바 있다.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이 있더라도 실제 구매까지 이어지기 어렵다고 봤다”면서 “미술품 수집 커뮤니티에서도 과거에는 정가에 사서 웃돈을 주고 거래하던 글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산 가격 그대로 되파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본격적인 불황이 올 징조 중 하나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C 씨는 ‘옥석 가리기 시즌’이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옥석 가리기보다 좀 더 잔혹한 시즌이 될 것이다. 옥석 가리기면 괜찮은 작가는 살아남아야 할 텐데 최상위 작가군을 제외한 대부분 작가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즌이 오리라 본다. 아직 예정된 금리 인상 초입인데 벌써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주변에도 당분간은 죽을 때까지 사서 들고 간다는 작품 아니면 ‘촉수 엄금’(손대지 말 것)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미술계에서 지금 시기를 옥석 가리기인지, 겨울이 온 건지 구분하기 위한 바로미터로 ‘어반브레이크 2022’를 많이 꼽았다. 어반브레이크는 최근 주요 구매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겨냥한 그라피티, 웹툰, 타투, 아트토이 등이 주요 주제인데다 갤러리가 들고나온 작품들도 비교적 신진 작가 위주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미술품 수요가 하락하면 신진 작가부터 타격을 받는 경우가 많아 수요가 계속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아트페어로 꼽힌 것이다.
어반브레이크 2022에 참가한 갤러리 대표 D 씨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었다. 그는 ‘인기 작가는 여전히 구매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너무 많이 몰려 줄을 세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D 대표는 “올 초 정점을 지난 건 맞다. 하지만 아예 겨울이 온다는 말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실제로 최근 몇몇 갤러리는 인기 작가 작품의 오픈런(매장 앞에서 오픈 때까지 기다리다 뛰어가는 것) 등을 막기 위해 추첨을 돌렸고 한 작품에 수백 명이 몰린 바 있다”면서 “한번 미술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된 사람들이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 모두 잊고 살 수는 없을 거 같다. 수요층이 넓어진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어반브레이크 주최 측은 관람객 수가 2021년보다 1만 명 더 늘어난 5만 명으로 막을 내렸다고 밝혔다. SNS(소셜미디어)에는 어반브레이크에 참가한 20대들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젊은 세대에서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저변이 넓어지는 것이 판매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어반브레이크 2022에서 만난 한 미술품 수집가는 “손이 잘 안 가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꽤 많이 산 데다 요즘 자산가치 하락으로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주 맘에 들지 않으면 사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집가는 “나를 포함해 주변 수집가들도 최근 전시에서 작품을 산 빈도가 확실히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C 씨는 관람객이 늘었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반적인 아트페어 분위기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아트페어 판매가 지난해 호황기의 절반 정도 느낌이라는 얘기가 많다. 확실히 요즘은 팔리는 사람만 팔리는 느낌이다. 호황기에는 ‘이것도 팔려?’라면 불황기에는 팔리는 사람만 팔린다”라고 설명했다.
B 대표는 지금 시기를 두고 침체기와 맞물려 호황기를 겪으면서 수집가의 안목도 크게 길러진 상황으로 해석했다. 그는 “지갑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맞는 거 같다. 이와 함께 미술을 모르던 사람들이 실제 구입 경험이 생기면서 안목이 크게 성장했다”면서 “‘깜’이 안되는 작가 상당수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안 팔리는 걸 침체기라는 핑계를 대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 침체기라고 해도 팔릴 작품은 다 팔린다”고 설명했다.
앞서 A 씨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걱정이 많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는 “작가는 대개 죽을 때까지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미술 시장 침체 우려에 가장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를 시작으로 조금씩 분위기가 떨어지면서 아트부산 등 큰 아트페어 때마다 약간씩 반등하는 듯도 했지만, 서서히 내려가고 있는 게 체감이 된다”면서 “호황기에 아트페어 판매율이 70%에 달했던 상황이 비정상이었다고 본다. 아트페어 특성상 갖고 나온 상품 가운데에는 이제 막 시작한 작가,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도 있는 걸 감안해 볼 때 웬만하면 다 팔렸다는 것이다. 그게 오히려 비정상적 상황은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한국 미술 시장은 2008년 호황을 마지막으로 10년 동안의 침체기였다. 2022년 대호황을 마지막으로 10년간 침체 안 되리라는 법도 없다. 최근 작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란 분위기가 많고 ‘어떻게든 살아남자’는 걱정도 팽배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술품 수집가에게는 지금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2000년대부터 갤러리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 E 씨는 “호황기가 끝나도 살아남을 작가를 찾아라”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조언했다.
“작품은 작가가 중간에 그만두면 그 가치를 잃는다. 히트곡도 변변히 없는 가수가 5년 정도 지나 가수를 그만두면 누가 기억하겠나. 똑같은 이치다. 당장 10년 지나도 살아남을 작가가 누군지 찾아야 한다. 작가뿐만 아니라 작품을 사는 사람도 살아남는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할 때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