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검수완박·시행령 개정 거치며 검·경 관계 꼬여…협력보다 견제로 갈등 심화 우려도
검찰과 경찰의 마약 수사의 기본 틀은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검찰은 ‘500만 원 이상 마약 밀수’ 사건만 직접 수사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되면 검찰은 마약 사건을 더 이상 직접 수사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지난 4월 22일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과는 “마약수사청 신설 등 대안 없이 검찰의 마약수사 기능이 폐지되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마약 단속에 대한 전문 수사 능력과 국제 공조 시스템이 사장될 것이며, 이는 결국 국가의 마약 통제 역량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5월 초 국회를 통과한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었던 범위가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 등)에서 부패와 경제 등 2대 범죄로 축소된다. 이 법안은 9월 10일부터 시행되는데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수완박법을 무력화하는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와 관련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마약류 유통 관련 범죄는 폭력 조직·기업형 조폭·보이스피싱 등 경제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범죄와 함께 ‘경제범죄 유형’으로 분류되고, 이에 따라 검찰의 마약류 범죄 직접 수사가 가능해진다.
한동훈 장관의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5일 뒤인 8월 16일 대검찰청은 마약·조직범죄 엄정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주재로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6대 지검 마약·조직범죄 전담 부장검사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마약·조직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유관기관과 협의체를 구축하는 등 수사 역량을 결집한다는 내용이 논의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조직폭력배·마약밀수 조직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전국 조직폭력배 173개 계파(2021년 기준)의 범죄 정보를 수시로 파악해 이를 유관기관과 공유하는 등 특별관리한다. 또한 2023년까지 전 세계 주요 마약 유입국에 대한 DB 구축도 완료한다.
두 번째로 경찰청·관세청·해양경찰청·국정원 등 유관기관과 수사협의체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우선 8월 말까지 전국 권역 별로 지역 경찰청과 수사협의체를 만들어 조직범죄 합동 대응에 돌입한다. 또한 마약 밀수·판매·투약 등에 대한 엄정 대응을 위해 경찰청·관세청·해양경찰청·국정원 등과의 수사협의체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국제 공조 체제를 강화하고 처벌 강화 및 범죄 수익 박탈 등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등 30여 개국과 공조 체계를 구축해 수사관 파견, 수사 정보 교환, 현지 검거·송환 등의 공조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10대와 20대 상대 마약 유통 조직에 대한 구속 수사 및 가중처벌을 원칙으로 하며, 불법 범죄 수익은 부동산뿐 아니라 암호화폐(가상화폐) 등까지 철저히 추적해 환수한다는 계획이다.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 직후 마약·조직범죄 엄정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한 이유에 대해 검찰은 마약범죄 급증을 언급했다. 2021년 마약 압수량은 1296kg로 2017년(155kg) 대비 8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 전체 마약 사범도 8575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3.4%가 증가했다. 특히 밀수·유통 사범은 2437명으로 32.7%나 증가했다. 대검은 적발되지 않은 범죄까지 고려하면 올해 상반기 마약 사범 8만 명, 마약 시장 신규 수요는 5만 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텔레그램과 다크웹 등 온라인 거래와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 접근이 쉬워지면서 10대 사범이 급증했다. 이는 10년 동안 무려 11배가 늘어난 수치다.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브리핑에서 “강력부와 전담검사가 있을 때에는 서로 협력하고 효율적으로 일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협력 기능도 많이 상실돼 이를 복원하자는 취지로 유관기관과의 마약 수사 실무협의체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범죄 대응 공백 발생’이라는 검찰 언급과 달리 경찰이 마약 관련 수사를 충분히 잘해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만큼 경찰의 마약 수사 성과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이 다크웹에서 가상자산을 활용해 마약류를 판매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국내로 마약류를 유통한 판매책과 투약자 등 53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8명을 구속했다. 또한 경남경찰청은 병원에서 마약류 식욕억제제(디에타민)를 불법 취득한 뒤 소셜미디어(SNS)에 광고를 게시해 판매하고 투약한 중고생 등 59명을 검거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경기남부경찰청이 ‘동남아 마약왕’ 김 아무개 씨를 베트남 공안과의 공조 수사로 현지에서 검거해 국내로 송환한 것이다. 닉네임 ‘사라 김’으로 유명한 ‘동남아 마약왕’ 김 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청은 꾸준히 베트남 공안과 공조해왔다. 경찰은 7월 16일 경찰청 인터폴 계장과 베트남 담당, 인천경찰청 국제공조팀원,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거지원팀을 베트남으로 파견해 17일 오후 2시쯤 베트남 공안과 함께 베트남 호찌민 소재 김 씨 주거지를 기습해 검거에 성공했다.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2020년 10월 필리핀에서 붙잡혔고, 지난 4월 ‘탈북 마약왕’ 최 아무개 씨가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된 상황에서 경찰은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동남아 마약왕’ 사라 김 검거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결국 검거 및 국내 송환에 성공했다. 최근 몇 년 새 급증한 텔레그램과 다크웹 등 온라인 거래와 던지기 수법 유통은 국내로 밀반입되는 마약류가 급증했기 때문인데 주요 공급책인 ‘동남아 3대 마약왕’이 비로소 모두 검거됐다. 특히 ‘사라 김’은 다른 두 마약왕에게 마약류를 공급한 마약 불법 거래의 핵심 인물이다.
게다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미 8월 1일부터 전국 단위 ‘마약류 유통 및 투약사범 집중단속’에 돌입했다. 이번 집중단속은 10월 31일까지 3개월 동안 이뤄진다.
중점 단속대상은 △범죄단체 등 조직적인 마약류 밀반입·유통 행위 △인터넷(다크웹)·가상자산을 이용한 유통 행위 △국내 체류 외국인에 의한 유통·투약 행위 △클럽과 유흥주점 내 마약류 투약 행위 등이다. 이를 위해 체류 외국인 마약류 투약 행위의 구체적인 수법과 조직적 유통 여부를 자세히 분석하고, 여름 휴가철을 맞아 클럽과 유흥주점 등 밀집 장소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인다.
또한 조직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범죄단체조직죄를 적극 적용해 여죄와 추가 혐의까지 종합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크웹과 텔레그램 등을 통한 마약 광고로 인해 10대와 20대에서 마약류 유통이 급증하고 있는 데 대해 상시 모니터링 체제를 통해 첩보 수집을 강화하고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협조해 마약류 불법 광고를 신속히 삭제하고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현재 국내 마약 범죄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상황 인식은 검찰과 경찰이 동일하다. 수사력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고 범죄 수익을 박탈하는 등의 방안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검찰의 경우 경찰청·관세청·해양경찰청·국정원 등 유관기관과의 수사 협의체 구축에 더 방점이 실려 있다. 결국 검찰이 기존처럼 마약 수사를 주도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검찰과 경찰이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해 경쟁적으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수사 협의가 잘 이뤄진다면 마약 범죄가 급감할 수 있다. 이는 분명 순작용이다. 다만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부터 시작된 마약 범죄 수사를 둘러싼 검·경 갈등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검찰은 최근 마약 범죄가 급증한 배경으로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언급하고 있다.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1년 8개월 동안 시행했는데 그 결과 범죄 대응 공백이 많이 발생했다”며 “마약범죄의 경우 마약 밀수·유통·투약까지 전 과정을 수사해야 하는데, (검찰은) 500만 원 이상 수출입 범죄에 대해 밀수 부분만 수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잃어버린 ‘마약 청정국’ 지위를 되찾기 위해 검찰의 축적된 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결집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과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마약범죄 수사 업무 분장이 이뤄진 뒤 계속 엇갈린 입장을 유지해왔다. 검찰은 꾸준히 ‘500만 원 이상 마약 밀수’ 사건만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되면서 수사 연속성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입장이었다. 마약 수사는 하나의 인지 사건에서 시작돼 거듭된 추적으로 밀수·유통·투약자 등을 일망타진해야 하는데, 인지수사 범위가 줄어 수사가 중간에 끊기곤 했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이 지난 2월 발표한 ‘개정 형사 제도 시행 1년 검찰 업무 분석’ 자료에 따르면 검찰 인지 마약류 범죄는 2021년 236건으로 2020년(880건) 대비 73.2%나 줄었다.
반면 경찰은 전국 3만 명의 수사 인력과 1만 1000명의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마약범죄 상시 대응 역량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마약 범죄 조직 전체를 적발해내는 노하우도 검찰보다 경찰이 앞선다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자료를 두고도 서로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대검의 ‘마약류 범죄백서’를 두고 검찰은 2020년 마약류 밀수 사범 검거 인원 837명 가운데 검찰 검거 인원이 720명(86%)인데 반해 경찰 검거 비중은 14%(117명)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경찰은 ‘마약류 범죄백서’의 전체 마약류 사범 검거 인원을 강조했는데 2020년 마약류 사범이 총 1만 8050명으로 경찰이 1만 2076명(66.9%)을 검거한 데 반해 검찰은 5974명(33.1%)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공급 사범은 4793명으로 경찰이 2738명(57.1%)을 검거해 검찰의 2055명(42.9%)보다 많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