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 비판글 독단적 삭제로 논란, 국내 최대 커뮤니티 흔들…“커뮤니티 위주 홍보 달라져야”
최근 영화 커뮤니티 ‘익스트림 무비’를 강타한 회원 이탈 사건은 8월 초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 제기된 영화 ‘비상선언’의 역바이럴 의혹에서부터 시작됐다. 8월 3일 개봉한 ‘비상선언’이 비슷한 시기 연달아 개봉한 다른 국산 영화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헌트’에 비해 악평이 심각할 정도로 많다는 점이 지적되며 운영진이 직접 역바이럴 의혹을 제기한 것. 역바이럴이란 긍정적인 입소문으로 홍보하는 바이럴 마케팅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상의 부정적인 면을 반복적으로 지적해 다른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떨어뜨리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역바이럴의 주체로는 ‘비상선언’을 제외한 나머지 국산 영화에 투자한 마케팅 전문회사 A 사가 꼽혔다. A 사가 가요계에서도 음원 사재기 등 바이럴과 역바이럴 문제를 일으켜왔기에 이번에도 그랬을 거라는 추측에 기인한 의혹이었지만 익스트림 무비 운영진과 일부 영화 평론가들의 입을 통해 기정사실이 되기 시작했다. 이 탓에 ‘비상선언’을 실제 관람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관객들까지 A 사의 관계자 또는 역바이럴에 휘둘린 사람들 취급을 받으며 작성한 리뷰 글이 운영진에 의해 독단적으로 삭제되거나 아예 커뮤니티에서 강제 탈퇴되기도 했다.
회원들은 운영진의 이 같은 행태가 국내 영화 관련 주요 이벤트를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커뮤니티의 입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대 초 영화 웹진에서 시작돼 2007년 정식 개설된 뒤 최소 15년 이상 운영돼 온 국내 최대 영화 커뮤니티라는 브랜드는 영화 배급사와 홍보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름값이었다. 가장 많은 회원 수를 보유하고 이들의 활발한 활동까지 보장됐으니 홍보의 무대로 안성맞춤이었고 심지어 운영진은 영화평론가로 업계 내 발이 넓었다.
덕분에 익스트림 무비는 해당 커뮤니티 회원들에게만 주어지는 단독 시사회와 배우 및 감독과 함께하는 GV(Guest Visit·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출연진들과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 상영 이벤트) 등 다양한 이벤트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일부 작품의 경우는 아예 익스트림 무비에만 단독 최초 시사회를 주기도 해 업계 내에서도 이 커뮤니티의 입지가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커뮤니티가 경쟁자 없이 성장하면서 정보 공유라는 기존의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홍보의 판이 됐다는 게 뿔난 회원들의 지적이다. 시사회 등 이벤트를 ‘무조건’ ‘당연히’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이를 제공하는 배급사의 작품에는 호평을, 그렇지 않은 작품에는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해 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상 ‘역바이럴’은 ‘비상선언’에서 나온 게 아니라 애초부터 이 커뮤니티 자체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익스트림 무비의 전 회원은 “외부에서 봤을 때 커뮤니티가 크고 공신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온 평, 특히 운영진의 평이 곧 작품의 대중적인 호불호와 직결된다고 보는 시각이 강했다”라며 “그런데 그동안 커뮤니티 내 시사회 진행 유무와 호불호평의 현황을 살펴보니 시사회를 제공한 작품은 호평, 그렇지 않은 작품은 불호평이 대부분이었기에 오히려 커뮤니티가 나서서 바이럴과 역바이럴을 해온 게 아니냐는 지적과 불만이 쏟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영화계에서 일했다고 소개한 한 회원이 “(커뮤니티 내에서) 돈을 받고 (영화) 광고 받은 게 맞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이 회원은 “단독 시사회를 주면 초반에 호평으로 분위기 형성하고 재미있게 봤다고 리뷰 쓴 회원의 글을 (게시판) 상단으로 올렸다. 혹평을 쓰면 오히려 영화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몰았다)”고 지적했다.
커뮤니티가 성장하면서 한국 영화 단독 시사회, 단독 굿즈 이벤트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광고 홍보비의 명목으로 홍보 패키지에 따른 돈을 받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역바이럴 피해를 주장하면서도 익스트림 무비 역시 역시 광고를 받고 바이럴과 역바이럴을 진행하며 영화 시장을 교란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논란이 이어지자 익스트림 무비 측은 8월 15일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올렸다. 운영자는 "과거 저의 미숙함으로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 점 깊이 반성하고 있다.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익무인들이 오랜 시간 소중하게 가꾸어 온 이 공간의 의미마저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후 운영을 다른 스태프에게 넘긴 뒤 시스템 재정비 작업에 매진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다수의 회원들이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아 떠났고 영화 배급사와 홍보사 측도 익스트림 무비에 제공했던 시사회 등 이벤트를 전면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15년 이상 운영돼 온 국내 최대 영화 커뮤니티가 역바이럴 의혹이 제기된 뒤 보름도 안 돼서 무너진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계 관계자는 “개봉을 앞둔 배급사나 온라인 담당 홍보사 쪽으로 익스트림 무비 측에 시사회 같은 이벤트를 주지 말라는 연락이 많이 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영화 전문 커뮤니티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회원 수를 확보한 대형 커뮤니티에 홍보 목적 이벤트 제공은 늘 있어 왔지만, 회원들의 평을 의도적으로 조정했다는 의혹을 제보 받은 것은 처음이라 저희도 일단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논란으로 인해 커뮤니티 위주로 돌아가던 국내 영화계의 홍보 방식이 다시 공식 사이트와 소셜미디어(SNS)에 집중될 것이란 변화가 예측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막대한 팔로어를 보유한 대형 배급사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홍보력이 부족한 중소형 배급사들에겐 오히려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기존 팔로어나 해시태그에만 의존해야 하는 SNS로는 커뮤니티만큼 큰 파급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작은 배급사들이 광고나 과도한 이벤트 협찬 요구에도 커뮤니티에 홍보를 의존한 것도 그런 이유 탓”이라며 “독점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로도 볼 수 있는 만큼 비슷한 규모로 다수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면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홍보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