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작 투자한 바이럴 마케팅사가 악평 유포 의혹…“명확한 실체 확인되면 지적해야” 대중들 반감
최근 개봉한 ‘국산 대작’ 가운데 관객들의 평가 위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작품은 단연 ‘비상선언’이다. 8월 3일 개봉한 ‘비상선언’은 송강호, 이병헌처럼 확실한 티켓 파워를 가진 얼굴들과 함께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 화려한 출연진을 내세운 국내 최초 항공 재난 영화로 개봉 전부터 기대가 모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 2021년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10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점에서 영화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높였으나 개봉 전부터 크고 작은 노이즈가 발생하며 작품 외적으로 더 눈길을 끌고 있다.
먼저 7월 27일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 올라왔던 ‘비상선언’의 가이드 리뷰 영상이 이틀 만에 비공개로 전환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파이아키아 측은 “영화 관계자 측의 요청에 따라 잠시 비공개 전환 후, 영화 개봉일인 8월 3일 재공개할 예정”이라며 “배급사 쇼박스는 ‘영상의 일부분이 결정적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어 관객들이 스포일러 없이 보실 수 있길 바란다’는 이유로 해당 부분이 개봉 전에 노출되는 것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결말에 영향을 끼칠 만한 스포일러라면 배급사나 제작사 입장에서 당연히 취할 수 있는 태도였지만, 이제까지 국내 개봉한 작품 대부분을 다뤄온 이동진 평론가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리 없다는 의혹이 영화 팬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했기 때문에 흥행에 차질을 빚을까봐 영상을 내려 달라고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개봉 직후인 8월 4일 메가박스 복수 지점에서 새벽 2시 30분에 ‘[스페셜] 비상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오픈된 심야 상영관이 등장했는데 수천 석이 매진된 것으로 나오면서 예매율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배급사가 인위적으로 예매율을 높이려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나오자 쇼박스 측에서는 “메가박스에서 심야 상영 이벤트를 앞두고 내부 테스트를 진행한 것으로 실시간 예매율이나 박스 오피스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메가박스는 이전에도 비슷한 이벤트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 사례는 팬데믹 이후 첫 이벤트였기에 실제로 진행하기 전 테스트를 거쳤다가 발생한 해프닝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8월 10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확인 결과 해당 발권 내역이 ‘정상 발권’ 데이터에 포함돼 실제 예매율과 관객 수에 반영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에 메가박스 측은 직접 발권 취소 데이터를 영진위 측에 전송해 누적 관객 수와 예매율을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8월 11일 기준 ‘비상선언’의 누적 관객 수는 168만 6251명, 좌석 판매율은 15.1%로 집계되고 있다.
작품 외 이슈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역바이럴’ 의혹까지 튀어나오며 관객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역바이럴이란 소비자들 사이에 반복적이고 자연스러운 정보 전달을 통해 상품을 홍보하는 바이럴 마케팅의 반대 개념을 가진 신조어로, 같은 방식으로 상품의 부정적인 이미지나 정보를 지속 전달해 소비자들의 구매 의욕을 저하시키는 마케팅을 뜻한다.
이 의혹은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헌트’에 투자한 바이럴 마케팅전문회사 A 사가 올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투자를 거절한 ‘비상선언’을 노린 악평 역바이럴을 이끌어 흥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나왔다.
김도훈 영화평론가가 8월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같은 의혹을 처음으로 폭로하며 A 사 측 관계자들이 대형 영화 커뮤니티를 장악해 악평의 배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글은 ‘비상선언’의 주연인 이병헌의 소속사 대표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사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A 사 측은 ‘스타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바이럴 마케팅을 하면서 잘되라고 마케팅을 했지, 망하라고 역바이럴이란 걸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역바이럴이란 말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비상선언’과 관련한 역바이럴을 우리 회사가 하고 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A 사가 실제 투자했다는 ‘외계+인’도 부침을 겪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바이럴을 해서 흥행에 좋은 결과가 나오고 역바이럴을 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왜 ‘외계+인’은 호불호가 엇갈리면서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A 사는 가요계에서도 음원 사재기 등 바이럴과 역바이럴 문제를 일으켰다는 의혹이 불거진 업체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의혹이 불거졌던 업체가 영화계로 진출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것이 ‘비상선언’의 흥행 부진과 악평을 우려하는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의혹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방적인 주장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실제 작품을 관람하고 부정적인 평을 내놓은 일반 관객들까지 도매금으로 역바이럴에 휘둘렸거나 조직적인 악평에 일조한 이들로 몰리면서 도리어 반감을 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계 관계자는 “음원 사재기나 악성 바이럴 마케팅 논란의 경우도 피해를 입은 업체 증언이나 일부 증거가 갖춰진 상황이었음에도 혐의가 인정되기 쉽지 않았다. 하물며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식으로 끝나는, 아직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피해를 너무 섣부르게 언급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입소문이 중요해진 상황이긴 하지만 그게 바이럴과 역바이럴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건 업계인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한국 관객들은 영화의 재미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기 때문에 업체를 끼고 바이럴을 한다고 해서 유의미하게 휘둘리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로 재미있다고 느껴야 티켓 값과 관계없이 ‘N차 관람’(한 영화를 수차례 반복 관람하는 것)을 하는 게 한국 관객들이기 때문”이라며 “흥행 부진이 정말 역바이럴로 인한 것인지는 앞으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이지만, 성급한 주장으로 도리어 대중들의 반감을 산 것이 흥행에 있어 더 큰 적신호가 될 것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