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죽는다는 절박함으로 가처분 신청…이준석 전 대표 징계는 계산된 토사구팽”
―8월 16일 비대위가 공식 출범했다.
“능력, 감동, 희망, 기대 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비대위 출범부터가 위법이자 위헌성까지 논의되는 상황이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을 비상상황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 상황을 초래한 당사자가 비대위에 또 들어갔다.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으로 비판을 받았고,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노출돼서 국민께 고개를 두 번이나 숙이고 사과했다. 이거 하나로 비대위는 생명력을 잃었다. 주호영 비대위원장도 당을 상대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 공천과정에서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을 받아놓고선, 이 전 대표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주기환 비대위원은 아들이 대통령실 6급 직원으로 채용돼 ‘아빠 찬스’ 논란이 일었던 인물이다. 신뢰를 잃은 비대위원들 말을 누가 듣겠나.”
―가처분 신청을 낸 이유가 무엇인가.
“당내 민주주의 훼손 문제를 지적하고 투쟁하는 건 명분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첫 2주간 밤잠을 설치며 고민을 했다. 당을 상대로 행동하는 것은 정치 생명을 거는 결단이라 부담이 됐다. 하지만 당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정당으로서 기능을 잃을 것이란 두려움과 걱정이 컸다. 나쁜 선례가 한 번이 어렵지, 룰을 어기고 떼만 쓰면 제도와 절차를 지키는 사람을 밀어내는 일이 앞으로 반복될 것이다. 국민의힘을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국민 신뢰를 완전히 잃을 거다. 당이 죽는다는 그 절박함과 다급함이 컸다.”
“특히 이준석 전 대표의 상황이 내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이나 내부 세력이 없는 이들은 힘 있는 자들의 손에 쉽게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당후사를 생각해 억울해도 참으라고 하는 건 기득권의 논리다. 2030 세대들은 능력도 없으면서 연공서열로 자리 차지하고 이득만 챙기려는 기득권의 모습에 분노한다. 저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막강한 힘을 지닌 집권 초기지만 지금 굴복하면 역사적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
―당헌 제96조 1항 비대위 구성 요건이 쟁점이다. 당 대표가 징계를 당했고, 최고위원들이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힌 비상상황이라는 주장이 있다.
“비상상황일 수가 없다. 이준석 전 대표 징계 이후에 권성동 원내대표를 직무대행으로 선임하는 안에 다 동의했다. 이후 직무대행이 업무를 수행했으면서 비상상황이라는 건 자기모순이다. 비대위 출범 요건이 당대표 궐위를 전제로 한다. 당 대표나 당 대표 권한대행만 임명할 수 있다. 이는 사임할 때 임명하고 가라는 뜻이다. 비대위는 대표가 사망, 실종 등으로 직을 수행하기 어렵거나 당원소환제를 통한 당대표 해임 절차를 밟을 때 출범할 수 있다. 그래서 당헌까지 바꿔가며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이 전 대표 특정인 한 명을 겨냥해서 당헌을 개정하는 건 처분적 법률이다. 이는 위헌이다. 비대위 출범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이유다. 무리하게 당헌 개정해 놓고 사후수습도 못 하고 있다”
―비대위 추진 과정을 놓고도 다툼이 예상된다. 이준석 대표 측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8월 5일 상임전국위원회가 비대위원장 지명권을 ‘직무대행’에게도 준다고 당헌을 개정했고, 현재의 당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해석해 당헌 제96조 1항 비대위 요건을 충족한다고 의결했다. 그런데 상임전국위는 약 100명으로 구성된 당내 기구에 불과하다. 상임전국위가 당 대표를 해임하는 건 권한 밖에 일이다. 과장이 사장을 해고한 꼴이다. 당원소환제를 통해서 당 대표를 끌어내지 못하니까, 우회해서 권력을 찬탈했다. 상임전국위가 열렸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는 치유됐다는 건 국민을 호도하는 행태다. 앞으로 당대표 사고 시에 비대위를 출범할 수 있다면, 쿠데타 합법화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 기각됐을 때 각각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인용, 기각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역사에 남기는 의미다. 인용되면 사필귀정이지만, 얻는 것이 많지 않다. 기각된다면 앞으로 정당이 사고 중인 당 대표를 몰아내도 된다는 걸 합법화하는 거다. 그러면 정당정치가 몰락할 것이다. 중요한 건 당원 민주주의 회복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보수정당에서 이슈를 선점해서 이끌어가고 지역, 세대 등에서 확장성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진보 의제들을 보수정당으로 가져왔다. 1인의 카리스마 정치가 득세했던 보수정당에서, 이 전 대표는 당원 민주주의를 세우며 대표로 당선됐다. 당원과 대중들 덕분에 윤핵관과 싸우고도 있다. 정당 주인은 당원이다. 이는 역사적 흐름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윤핵관이 영원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정당 주권은 영원하다.”
―윤리위 중징계를 받은 이준석 전 대표는 이미 자격을 잃은 것 아닌가.
“악성 유튜버인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제기한 의혹만 갖고 자격을 잃는다면 누가 과연 대표를 할 수 있을까. 시점도 7~8년 전 이야기고. 피해자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윤리위는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사안에서 징계하지 않았어야 한다. 이 전 대표가 이렇게 물러나면 거짓된 말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참인 것처럼 여겨지는 ‘삼인성호’가 일상이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윤리위는 이준석 전 대표의 성범죄 관련해서 징계 절차를 불개시했다. 그런데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의 7억 원 투자각서’를 근거로 징계 절차를 올해 4월 개시한다. 범죄를 없다고 판단해놓고, 증거인멸은 어떻게 인정하나.”
―윤석열 대통령 측과 자진사퇴 조율했다는 것과 관련해 이 전 대표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서 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게 다다”고 일축했다.
“대통령 측에서 대표 사퇴를 조건으로 대가를 협의하거나 중재를 시도했다. 거래 조건을 무엇으로 제시했을지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수사결과나 윤리위 결과로 거래를 시도했다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이 윤리위에 청부해서 이 전 대표를 징계한 셈이다. 정당민주주의 훼손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이 수사기관과 독립기구인 윤리위를 장악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의 7억 원 투자각서’가 이 전 대표 징계 근거라면 수사해야 한다. 해당 각서가 윤석열·안철수 대통령 대선 후보 단일화에 활용됐다는 것도 함께해야 한다. 단일화에 쓰였다는 건 공직선거법을 저촉한 행위다.”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윤핵관과 윤석열 대통령을 분리해서 봤지만, 이들이 하나라는 걸 인식하게 된 트리거가 됐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통령 뜻 받들어서 충성 맹세를 하는 워딩을 보면서 확신했다. 고의든 실수든 이준석 대표는 축출을 당한 거다. 특히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내부총질’로 인식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 부하가 아니다’라며 충돌했다. 국민은 이런 윤 대통령을 ‘내부총질’이 아닌, 용기 있고 소신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바른말·쓴소리조차도 내부총질로 인식하는 걸 보고 희망이 안 보였다. 내부에서는 바른말 하면 동료 등에 ‘칼 꽂는다’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우리는 침묵하고 쓴소리를 못 해서 탄핵을 당했다. 문고리 3인방, 최순실 등 소수 세력의 농단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5년간 암흑의 터널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또다시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는 두려움이 있다. 보수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서 탄핵정국 때처럼 샤이보수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비대위 전환 등에 관여했다고 보나.
“국민 여론이 이미 그렇게 보고 있다. 확실한 도장을 찍은 건 문자 파동이다.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봐야 한다.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은 대선 내내 불만이 쌓였다. 이 전 대표를 탄핵시키려고까지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27일 가세연은 이 전 대표의 성비위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당시 당 윤리위는 이 전 대표의 성 비위 의혹에 대해 징계 절차 불개시 결정을 내렸다. 3·9 대선 승리를 위해서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의 7억 원 투자각서’가 공개됐다. 이후 4월 21일 당 윤리위가 이 대표의 징계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6·1 지방선거가 끝난 후 7월 8일 당 윤리위는 이 대표를 중징계한다. 선거를 앞두고 계산된 징계인 셈이다. 토사구팽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