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 이 교수가 수원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린 비난글(왼쪽)과 폭행 피해학생 김 군 어머니의 반박글.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지난해 12월 19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H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50대 남성이 찾아왔다. 월요일 아침조회가 막 끝날 무렵이었다. 이 남성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김 아무개 군(10)을 발로 차고 머리를 잡아당겨 복도로 끌고 갔다. 복도에서 수차례 따귀를 때린 후 더 맞기 싫으면 딸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종용했다. 이 남성의 딸인 이 아무개 양(10)은 김 군과 같은 학급 친구 사이였다. 1시간 후 아들의 폭행 사실을 알게 된 김 군의 부모는 수원중앙경찰서에 남성을 상해죄로 고소했다. 불구속 입건된 이 남성은 놀랍게도 포항공대 겸임교수 이 아무개 씨(51)였다.
명문대 교수가 초등학생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명망 있는 대학의 학자가 사람을, 그것도 초등학생을 때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이 씨는 곧바로 블로그를 개설하고 항변에 나섰다. 폭행 전날 김 군이 이 양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한 것이다.
김 군은 12월 18일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거의 2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휴대폰을 확인한 이 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잡년아 문자 씹냐” “니네 집 전화번호 031-XXX-XXXX이지” “자꾸 씹으면 낼 아침에 죽여 버린다”는 식의 내용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욕뿐 아니라 이 양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장난도 일삼았다. 같은 학교 남학생과 사귄다는 소문을 낸 후 이 양의 친한 친구들에게 퍼트리겠다고 거듭 협박한 것이다. 문자 내용 중에는 “키를 위해 빨리 자라”는 다정한 안부도 섞여 있었다.
이 씨는 블로그를 통해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기 앞서 수원교육청 홈페이지에도 ‘초등학교 교내 성폭행 심각’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 씨는 자신이 아이를 때렸다고 시인하면서도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야 합니까. 학교에서 잘 처리하겠다고 해서 믿었는데 스토커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한 것에 그친 학교의 처사는 너무나 비겁하다. 인성교육은 아예 잊고 사는 집단이라고 판단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11월에도 해당 문제를 학교에 알렸는데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아이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미래의 훌륭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학교의 기능이라 생각한다”며 “아이를 때린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지겠지만 다시 한 번 제 딸에게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저의 행동은 일관될 것이다”라며 폭행을 뉘우치지 않았다. 끝으로 그는 “믿고 자식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란다”며 해당 학교의 교장과 교감 그리고 담당교사의 징계를 요구했다.
비난의 화살은 하루 만에 피해자인 김 군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김 군의 어머니인 심 아무개 씨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이 씨가 글을 올린 다음날(12월 20일) 김 군의 어머니인 심 씨는 ‘제가 그 아들의 엄마입니다’라며 같은 곳에 반박 글을 게시했다. 심 씨는 “저희가 분을 참지 못해 그 학부형을 고소하고, 후에 (때린 이 씨) 얼굴을 보았지만 너무 멀쩡하게 생긴 차림이라 황당하고 할 말을 잃었다. 파출소 안이라 대화 한번 섞지 않고 그냥 돌아 왔다”며 분을 숨기지 않았다.
심 씨는 자신 역시 11월부터 아이들의 심상찮은 관계를 전해들은 이후 담임선생님과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상담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손뼉이 혼자 쳐질까요. 우리 아이가 문자로 욕을 써서 보낸 것은 잘못이지만 교수란 사람이 교실로 들어와 어린 학생을 폭행하고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 교육청에 글을 올렸다는 게 참 무섭다”고 항변했다.
한 차례 공방이 오간 후 수원교육청 홈페이지는 관련 사건에 관한 의견들로 개싸움 형국을 이루고 있다. “김 군이 맞을 만했다. 이 교수는 영웅이다”고 치켜세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폭행이 정당화될 수 있냐”며 피해자 측을 대변하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둘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을 펴며 꾸짖는 어른들도 있었다.
아동가족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주은 씨(29)는 “어른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도움이 되기는커녕 아이들의 상처를 들쑤시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이 양은 급성스트레스 반응으로 상당기간 심리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 중이고, 김 군은 가벼운 뇌진탕 증세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또 친구를 스토킹한 사실이 알려져 학급 친구들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다. 해결은 고사하고 어른들이 사태를 악화시킨 꼴이다.
현재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들은 언론 인터뷰 요청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불똥이 튄 포항공대 역시 곤혹스러운 눈치다.
포항공대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이 씨는 학교 측에 사임 의사를 밝혀 12월 26일부로 사임됐다. 실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라기보다 공동 프로젝트 연구를 위해 위촉된 분이신데 굳이 포항공대 교수라는 점을 부각시킨 면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재 이 씨는 경기도 소재 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