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전진 배치 훈련이냐 선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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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관 기획실장이 G20 행사에 참석한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지난 12월 16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그룹회장실 차장이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옮겨갔다. 김 실장은 앞으로 태양광사업에 대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한화의 본격적인 3세경영 시동과 김 회장의 강한 경영수업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룹회장실에 있던 김 실장을 현장에, 그것도 그룹이 사활을 걸고 있는 태양광사업 보직을 맡김으로써 경영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하는 동시에 혹독하게 훈련시키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한화솔라원은 지난 2010년 8월 중국의 솔라펀파워홀딩스 지분 절반을 4300억 원에 인수해 한화케미칼 자회사로 편입한 곳. 태양전지·모듈 생산업체인 솔라펀파워홀딩스는 한화가 인수할 당시 세계 4위 규모를 자랑하던 회사다. 한화가 태양광사업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평가도 여기에 기인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한화솔라원의 실적은 크게 악화했다. 지난 2분기에는 88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더니 3분기에는 557억 원으로 적자폭이 확 늘었다. 1분기 만에 무려 469억 원이나 손실이 늘어난 것이다. 한화솔라원의 부진은 잘나가던 한화케미칼의 실적과 주가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화솔라원은 한화의 태양광사업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미운오리새끼’로 추락한 셈이다.
태양광사업에 대한 김승연 회장의 열의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한화는 이미 그룹 내에서 폴리실리콘 생산부터 발전까지 태양광산업의 모든 과정을 수직계열화할 정도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태양광 분야 핵심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 ‘1366테크놀로지’, ‘크리스탈솔라’의 지분을 인수한 것도 태양광사업에 대한 김승연 회장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화그룹이 차세대 먹을거리이자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네 가지, 즉 태양광·2차전지·바이오·탄소나노튜브 중 한화는 태양광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다른 세 사업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규모에서 태양광 분야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태양광산업이 침체하면서 한화는 직격탄을 맞았다. 물론 태양광에 투자했던 다른 기업들도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이나 LG화학 같은 경우 태양광사업에 대한 투자를 보류하거나 철회하기도 했다.
한화 역시 태양광사업에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가 되는 곳은 역시 한화솔라원. 한화솔라원은 부족한 유동성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9월 은행권에서 1억 달러(약 1153억 원)를 차입했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한화케미칼 소유의 장교동 사옥을 대한생명에 매각하려 한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한화는 다른 기업들처럼 태양광사업 투자를 보류하거나 철수할 수 없는 형편이다. 태양광에 워낙 집중 투자한 터다. 다만 투자 수위는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미래 주력사업이니만큼 투자 수위를 조절해가며 사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2013년부터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시 말해 2012년도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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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치둥의 한화솔라원 태양광 모듈 생산라인. | ||
이를 알고서도 굳이 그룹 후계자를 어려움에 빠진 계열사에 배치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재계 관계자는 “태양광사업이 점차 침체기에서 벗어날 것은 분명하고 지금이 바닥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며 “이렇게 되면 한화솔라원의 실적이 앞으로 개선될 것은 뻔하며 그 공은 김 실장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시 말해 바닥을 치는 시기에 장남을 배치함으로써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받겠다는 김 회장의 복안이라는 얘기다.
한편 김승연 회장은 오래 전부터 금융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김 회장 스스로 여러 차례 ‘금융에 강한 그룹’을 역설해왔다. 2002년 대한생명 인수를 계기로 한화는 보험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삼성에 이어 두 번째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려는 김 회장의 의지는 동양생명 인수에 닿아 있다.
동양생명이 M&A(인수·합병)시장의 매물로 나오자마자 여러 군데서 큰 관심을 기울였다. 국내에서는 대한생명과 우리금융 등이 군침을 흘리고 있고 외국기업으로는 푸르덴셜과 메뉴라이프 등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또 글로벌 ‘빅3’ 중 하나인 제너럴리도 동양생명 인수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난 연말 핫이슈로 등장했다. 제너럴리는 특히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소유하고 있는 까닭에 ‘버핏이 동양생명을 노린다’는 얘기로 떠들썩했다.
한화 측은 “대한생명을 통한 동양생명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생명이 인수할 경우 삼성생명에 이어 2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던 교보생명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다. 그러나 국내외 유명 보험사들이 동양생명을 노리고 있어 한화가 원하는 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노리는 쪽이 많으면 인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태양광사업 침체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한화가 동양생명 인수자금까지 마련해야 한다면 버거울 것이 자명하다. 몸집을 키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2012년 임진년은 60년 만에 오는 ‘흑룡의 해’라고 한다. 김승연 회장은 1952년 임진년 흑룡해에 출생했다. 공교롭게도 한화 역시 2012년에 설립 60주년을 맞는다. 김 회장과 한화가 동시에 흑룡해에 환갑을 맞는 것이다. 경사가 겹치는 새해에 김 회장과 한화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의주’를 품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