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유적 발굴부터” 문체부 “문화예술 핫플 조성” 엇박자…청사진 마련 늦어지면 위락시설 변질
청와대가 위락시설화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다. 5월 개방 이후 100일 동안 약 158만 명이 청와대를 방문하면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청와대를 무대로 한 상업광고와 화보 촬영 등이 이뤄지기도 해 역사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 까닭이다.
8월 22일 패션잡지 ‘보그 코리아’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청와대 그리고 패션!'이라는 제목의 화보를 공개했다. 32장의 화보에는 청와대 본관, 영빈관, 상춘재, 녹지원 등이 배경으로 담겼다. 촬영에는 모델 한혜진을 비롯해 김원경, 김성희, 오송화, 이애리 등이 참여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도외시하고 지나치게 상품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23일 “적절성과 효과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우려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향후 촬영 및 장소 사용 허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활용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월 5일에는 iHQ가 청와대에서 소파 광고를 찍은 뒤 방송에 내보내 논란이 된 바 있다. 문제의 소파는 ‘대한민국 최초 청와대를 방문한 소파’라는 자막과 함께 방송에 노출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9일 입장문을 통해 “iHQ 측에서 특정 브랜드의 소파 제품이나 기업체에 대한 언급, 기업 홍보용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이 일절 없어 해당 사실을 사전에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동안 문화재청과 문체부 사이에서 청와대 활용 방안을 두고 엇박자를 내면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문화재청은 5월 4일 청와대개방추진단을 발족하고 청와대 개방 및 방문객 관람 관련 업무 등 임시 관리를 맡아 왔다. 문화재청의 당초 계획은 훼손된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을 회복해 청와대를 세계적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청와대 일대의 핵심 유적 발굴과 복원 정비 기간을 2023년부터 2026년까지 4년으로 설정하겠다는 말도 나왔다.
청와대 활용 방안에 부처 손발이 어긋나기 시작한 건 7월 상부기관인 문체부에서 이와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서부터다. 문체부는 7월 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와대를 ‘문화예술역사복합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이날 업무보고 책자에도 청와대 리모델링이 핵심 추진과제 1순위로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앞서 문화재청이 건의한 유적 발굴과 복원 정비 4년 계획은 없어지고 대신 청와대의 보존·관리 및 활용의 기초 자료 확보 등을 위한 기초조사 4개월로 바뀌었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날인 22일 발표된 120대 국정과제에도 반영됐다. 이에 문화재청과 문체부가 청와대 활용 방안을 두고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7월 28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회의에서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직접 ‘청와대의 랜드마크화’ 방안을 설명했다. 이날 회의록에 따르면 박 장관은 “청와대 개방은 권위주의 정치문화와 결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님의 위대한 역사적 결단의 상징”이라며 “거대한 청와대를 콘텐츠로 분류하면 600여 점의 빼어난 예술품이 저장된 문화예술공간, 대통령의 역사‧문화, 5만여 그루의 나무와 숲, 전통 문화재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가득하다. 이런 콘텐츠들과 본관, 관저, 영빈관 등 건축물을 매력적이고 짜임새 있게 조합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브랜드화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영빈관을 미술품 전시장, 녹지원 등 야외공원 일부는 조각공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춘추관은 시민 소통관과 특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8월 중에는 장애예술인 미술 특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구 본관을 미니어처(소형 모형물)로 제작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우려를 제기했다. 민주당은 문체부가 정부 공식 업무 보고자료에 일제 총독 관사였던 구 본관 ‘모형 복원’ 계획을 적시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17일 제출한 대통령실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에는 문체부의 청와대 개방 및 활용 계획 수립 관련 의혹이 포함됐다. 앞서 7월 25일엔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 노동조합이 문체부의 청와대 활용 방침 전반을 비판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문체부는 최소 5월부터 청와대의 활용 방안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는 박 장관 취임 직후라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박 장관은 5월 16일 취임사 첫 인사로 “청와대가 국민 품속으로 돌아갔다”며 “청와대 개방의 의미는 거대하고 그 상징성은 탁월하다”고 청와대를 언급했다. 이어 같은 달 21일 언론 인터뷰에서는 “청와대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핫플레이스가 됐다”며 “좋은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도록 문화재청과 의논하며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여기에는 윤 대통령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문체위 회의에서 ‘무엇을 근거로 청와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느냐는 질의에 “기본 바탕은 대통령님의 철학”이라며 “그런 철학과 비전을 바탕으로 (사업을) 한다”고 답했다. 청와대 활용 방안 추진이 졸속으로 처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복합문화공간 개발 방안에 대해서는 방향성과 구체성도 있다”고 자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8월 30일에는 문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직접 청와대를 찾아 현장을 확인할 계획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