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LG전자의 20%→50% 그룹 내 위상 강화…애플 의존도 75%, 테슬라와 1조 계약 체결 여부 관건
LG이노텍의 그룹 내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LG이노텍의 지난해 시가총액은 LG전자의 20%도 채 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50%가 넘는다. 일부 증권사 연구원은 LG이노텍의 목표주가를 60만 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LG이노텍의 주가가 실제로 60만 원까지 오르면 LG전자의 시가총액을 턱밑까지 쫓게 된다. LG그룹 소속 한 직원은 “LG이노텍 노사는 올해 초 가장 먼저 연봉 10% 인상안에 합의했다”며 “예전 같으면 LG전자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 하지 못했을 텐데 그만큼 LG이노텍의 위상이 높아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LG이노텍의 애플 의존도가 너무 높아 매출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LG이노텍의 지난해 전체 매출 중 75%가량이 애플에서 발생했다. 또 LG이노텍과 애플의 갑을관계가 고착화돼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애플보다 테슬라가 중요한 이유
최근 LG이노텍이 테슬라와 1조 원대 카메라 모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최종 성사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이노텍은 공시를 통해 “협의 중에 있으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LG이노텍은 지난해 테슬라에 상당량의 카메라 모듈을 공급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테슬라와 대형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애플 의존도가 더 심해진 상황이다.
LG이노텍은 애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수 기업과 계약을 논의하는 중으로 전해진다. 애플도 LG이노텍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애플에 탑재되는 카메라 모듈 점유율은 2020년 기준 LG이노텍 58%, 일본 샤프 37%, 중국 오필름 5%였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당시 샤프의 베트남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LG이노텍 비중이 치솟았다. 현재는 애플의 LG이노텍 카메라 모듈 채택 비중이 70%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은 일부 부품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매출처를 바꾸곤 한다”며 “배터리, 디스플레이에 대해서도 특정기업 비중이 치솟으면 다른 협력사를 구하는 식의 대응을 해왔으며 최근 샤프 물량을 더 늘리려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LG이노텍 입장에서는 테슬라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LG이노텍은 이번 1조 원대 공급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테슬라 공급 1위 자리를 삼성전기에 내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테슬라로부터 사이버트럭에 들어갈 카메라 모듈 4900억 원어치 공급 계약을 따냈다. 지난 6월에는 테슬라와 5조 원대 공급계약을 맺었다는 소식도 들렸지만 아직 최종 확정은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확정이 된다면 LG이노텍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IT업계에서는 LG이노텍이 테슬라를 놓친다면 애플 덕에 인정받았던 기업 경쟁력이 사그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율주행 전장용 카메라 모듈은 내구성과 품질이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야 한다. 현재의 저사양 전장 카메라 모듈의 가격이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의 4배가 넘는다. 스마트폰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1% 남짓으로 정체 양상인 데 반해 전기차는 20% 이상 고속 성장 중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테슬라는 ‘라이다(LiDAR) 기술’을 적용하지 않는 자율주행을 추진 중이다. 라이다는 주변에 레이저를 쏜 뒤 물체에 맞고 돌아오는 시간차를 측정해 자율주행차가 스스로 위치를 파악하도록 돕는 센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라이다에 대해 “맹장처럼 불필요하다”고 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따라서 테슬라는 그만큼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카메라를 조달해야 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LG이노텍은 글로벌 애플 협력사 중 주가이익비율(PER) 기준 기업가치가 가장 낮다”며 “애플 의존도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반영되고 있는 것인데 만약 테슬라를 잡는다면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LG이노텍 관계자는 “고객사와 관련해서는 확인해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라고 전했다.
#반도체 기판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
LG이노텍이 카메라 모듈 외의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카메라 모듈은 전자기기 업체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였다. LG이노텍이 선제적으로 뛰어든 덕분에 시장 지배력을 갖췄지만 다른 기업들도 하나둘 LG이노텍과 경쟁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 광학전문기업 칼 자이스가 카메라 모듈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이노텍은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는 광학솔루션 사업부 외에 기판소재 사업부, 전장부품 사업부가 있다. 이 중 기판소재 사업부가 애플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될 전망이다. LG이노텍은 무선주파수 패키지 시스템(RF-SiP)용 기판, 5G 밀리미터파 안테나 패키지(AiP)용 기판에서는 세계 1위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다. FC-BGA는 반도체칩을 메인기판과 연결해주는 반도체용 기판으로 반도체가 점점 고성능화되면서 같이 발전하고 있다. LG이노텍은 FC-BGA 후발주자지만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해 올해 초 4130억 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했다. 전문가들은 LG이노텍이 FC-BGA 시장 공략에 성공할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