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수족은 비리 문어발?
▲ 지난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생각에 잠겨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정용욱 게이트’는 김학인 이사장의 횡령 혐의가 드러나면서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학원 공금 수백억 원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된 김 이사장이 정관계에 전방위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학점인정기관인 한예진의 돈 240억 원을 빼돌리고 법인세 50억여 원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렇게 빼돌린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방송통신업계 및 정관계 실세들을 상대로 한 로비자금으로 활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구속된 김 이사장은 아직까지 횡령 사실을 부인하면서 비자금의 사용처까지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의 초점을 김 이사장이 조성한 비자금 액수 및 그 사용처에 맞추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김 이사장이 최시중 위원장의 최측근인 정 씨에게 돈을 건넸다”는 한예진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이사장이 EBS 이사 선임 로비를 위해 정 씨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김 이사장이 정 씨와 수백 차례 통화한 내역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른바 ‘정용욱 게이트’의 서막을 알리는 단초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정 씨가 현 정권 핵심 실세이자 ‘왕의 남자’로 통하는 최시중 위원장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에서 권력형 게이트 사건으로 확전될 조짐마저 일고 있다. 실제로 정 씨는 최 위원장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최측근이다. 정 씨가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렸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각별한 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주변에서 정치 관련 홍보회사를 운영하던 정 씨는 10여 년 전부터 최 위원장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최 위원장이 2007년 대선정국 때 이명박 후보의 ‘멘토’ 역할을 하면서 홍보전략을 진두지휘할 당시에도 정 씨는 최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당시 정 씨는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언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정 씨를 최 위원장은 현 정권 출범 후 각별히 챙겼다. 2008년 방통위원장에 취임한 최 위원장은 개방형 직위에 관한 특례 규정을 바꾸면서까지 정 씨를 위해 정책보좌역(4급 계약직 공무원) 자리를 신설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후 정 씨는 주로 청와대와 국회를 상대하는 정무 보좌관 역할을 하면서 정치권 및 방송통신업계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정권에 줄을 대고자 하는 업계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핵심 실세인 최 위원장의 최측근인 정 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업계 주변에서 정 씨가 청탁성 금품을 수수하거나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것도 정 씨의 막강 영향력을 방증하고 있다.
정 씨는 정책보좌역 시절 숱한 구설과 각종 의혹에 시달리는가 하면 사정당국의 내사설도 종종 나돌았다. 실제로 김 이사장으로부터 2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 씨와 관련한 또 다른 비리 의혹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정 씨가 방통위 재직 시 케이블TV 채널 배정과 관련해 기업들로부터 골프 회원권을 포함해 수억 원대 금품을 수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정 씨는 지난 2008년 방통위원장 정책보좌역에 임명된 이후 최근까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대한 채널 배정과 관련, 2~3개 기업체로부터 골프 회원권을 비롯해 수 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채널 배정은 시청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SO들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다. 검찰은 수개월 전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가 SK로부터 3억 원대에 달하는 돈을 수수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이 이동통신용 주파수 할당이 예고돼 있던 지난해 5월에서 6월 사이에 정 씨가 SK 측으로부터 3억여 원을 받은 정황을 포착됐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2~3개월 뒤인 같은 해 8월 차세대 이동통신용 황금 주파수로 불리는 1.8기가헤르츠 주파수가 SK텔레콤에 낙찰된 바 있다.
검찰은 SK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 과정에서 임직원들의 수상한 돈 흐름을 잡고 관련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돈이 정 씨에게 건네진 것인지, 아니면 정 씨가 윗선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인지를 은밀히 조사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 씨는 또 지난 2010년 초 CJ헬로비전 최고위급 인사로부터 5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5억 원은 CJ가 계열사인 CJ오쇼핑의 온미디어 인수를 방통위로부터 승인받기 위해 건넨 돈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이러한 금품수수 의혹 외에도 관련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수시로 술과 골프 등을 접대받았다는 의혹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정 씨는 숱한 뒷말과 논란을 야기했던 제4 이동통신 사업과 종편 사업자 선정 등 방통위가 주관한 대형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대형 게이트로 불길이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정 씨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이 게이트 사건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수사 칼날이 어디까지 향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 씨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 외에 휘발성이 강한 뇌관이 폭발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 씨를 향한 수사 칼날은 자연스럽게 최 위원장을 겨냥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정 씨가 최 위원장의 장자방 역할을 한 핵심 측근이란 점에서 최 위원장이 어떤 식으로든 정 씨의 비리를 인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욱 게이트’가 폭발할 경우 청와대도 후폭풍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해 이미 정 씨와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을 인지하고 은밀히 조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지난해 수차례에 걸쳐 정 씨의 비리 의혹에 대해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정 씨가 통신 대기업과 케이블TV업체 등으로부터 거액의 재혼 축의금과 부친 조의금 등의 명목으로 10억대 자금을 수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조사를 벌였지만 정 씨에게 어떤 조치나 처벌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 씨는 지난해 10월 “해외에서 사업을 하겠다”며 갑자기 사표를 내고 동남아로 유유히 출국한 뒤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사정당국의 타깃이 된 정 씨가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의 비호 아래 해외로 도피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 씨의 각종 비리 혐의를 포착한 검찰은 수사인력을 늘리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검은 범정팀을 총동원해 정 씨는 물론 방통위와 관련된 각종 비리파일을 전방위적으로 취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은 최 위원장의 친아들이 대학교 식당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정 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잡고 특혜 등 비리 혐의를 파헤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장 횡령 사건으로 수면위로 급부상한 ‘정용욱 게이트’가 ‘왕의 남자’인 최 위원장과 권력 핵심부를 강타하는 초대형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될지 검찰 수사 추이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 김학인 한예진 이사장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
총선 출마 로비 의혹 솔솔
이른바 ‘정용욱 게이트’에 불을 지핀 김학인 한예진 이사장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비자금 장부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로비 수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며 김 이사장의 개인비리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한예진 압수수색을 통해 이미 로비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핵심자료를 상당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예진에 숨겨진 김 이사장의 비밀금고를 찾아내 로비 수사에 필요한 각종 비자금 장부 및 증빙자료를 확보하고 자료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각종 자료에는 정치권은 물론 한예진 업무와 연관이 많은 교육과학기술부와 방통위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내역도 기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김 이사장이 현 정권의 핵심 실세와 일부 현역 의원들에게 수억 원대의 금품을 건넨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지난 17대 총선 때 출마했다 낙선한 경험이 있는 김 이사장이 4월에 치러질 19대 총선 출마를 위해 여권 실세들에게 금품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 이사장의 비자금 장부가 공개될 경우 쇄신 및 전당대회 돈 살포 논란 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여권을 뒤흔드는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홍]
‘김학인 사건’ 열쇠 쥔 여성 3인방
그가 한 일 그녀들은 알고 있다
그 다음은 교대역에 위치한 병원 원장 임 아무개 씨다. 검찰에 따르면 임 씨는 김 이사장과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을 연결해주는 고리라고 한다. 김 이사장은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에서 임 씨를 만났고, 그 뒤 정 전 보좌역에게 임 씨를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 씨는 정 전 보좌관과도 단둘이 만났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임 씨를 통해 정 전 보좌관에게 EBS 이사 선임 로비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20만 달러가 오간 정황이 포착됐다는 전언이다. 검찰은 이 돈이 정 전 보좌역을 통해 최시중 방통위원장까지 전해졌는지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은 정 전 보좌역의 부인인 신 아무개 씨다. 검찰은 신 씨를 이 사건의 열쇠를 풀 ‘키맨’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신 씨는 남편인 정 전 보좌역과 함께 태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검찰에선 이미 신병 확보를 끝낸 상태라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야권 일각에선 이들 부부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김학인 게이트는 올해 상반기 검찰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대형 사건이다. SK그룹 수사와 맞먹는 검사 세 개 방에 배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 한상대 총장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모든 의혹을 숨김없이 파헤칠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시중 위원장 비서 출신으로 알려진 신 씨는 현 정권 출범 이후 주택공사(현 LH)를 거쳐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정 전 보좌역과 결혼했다. 결혼 당시 축의금과 관련해 구설이 불거져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들 부부에게 경고를 했다는 후문이다. 신 씨를 잘 알고 있는 한 여권 인사는 “명문가 집안 자제로 서구적인 외모를 가졌다”고 말했다.
검찰이 신 씨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최 위원장을 둘러싼 의혹을 풀 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정용욱에서 최시중으로 이어지는 중간단계에서 신 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는 게 수사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선 정 전 보좌역 부부가 수사 도중 출국했다는 것을 거론하며 곱지 않은 시선도 보내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