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살롱 운영하며 ‘가문의 부활’ 노려
▲ 조직폭력배 영화 <가문의 부활>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1월 3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양은이파 우두머리 급이 포함된 40여 명 규모의 양은이파 재건 조직을 적발해 그중 4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 일당은 성매매 알선을 위한 불법 유흥타운을 조성해 1년 6개월간 3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 중에는 80년대 유명 그룹사운드 출신 가수도 끼어 있었다. 구속된 이들은 성매매 업소 운영 외에도 폭행, 공갈, 감금 등의 혐의로 기소돼 마치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검찰은 1990년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결과 폭력조직 175개를 와해시키고 2만 4000여 명을 구속하는 등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처해 왔다. 이러한 검·경의 집중적 검거 활동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폭력조직 소식이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과거 조직의 거물급들이 하나둘 출소하자 수사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조직을 주도한 인물 역시 2000년 중반에 출소한 인물이다. 70년대 양은이파의 영광을 재건하려다 붙잡힌 후계자 김 씨의 흥망성쇠를 따라가 봤다.
김아무개 씨(50)는 조양은이 자신의 뒤를 이어 양은이파를 이끌 후계자로 지목했던 인물이다. 조양은과 같은 광주 출신인 그는 1978년 양은이파가 결성된 때부터 조직원으로서 활약했다. 특히 김 씨는 양은이파로부터 분리된 순천시민파 조직원들의 하극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조 씨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의 충정은 조양은이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1981년 입대를 앞둔 김 씨는 당시 김해교도소에 수감 중인 조양은을 만나기 위해 경비교도대로 자원했다. 교도소 안에서 조양은과 재회한 김 씨는 이후 조직의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89년 순천시민파 부두목을 난자한 혐의로 붙잡혀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조양은의 뒤를 이어 수감됐다.
▲ 조양은 |
이들이 차린 업소는 현재 강남 일대에서 흔하게 이뤄지는 접대 방식인 풀살롱이었다. 풀살롱은 룸살롱의 진화된 개념으로 건물에 모텔 시설을 갖추고 2차까지 한 건물 내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역삼동 L 호텔 인근 풀살롱 영업상무인 A 씨는 “풀살롱은 주로 가볍게 노는 소프트풀과 하드풀로 나뉘는데 하드풀보다 소프트풀이 비싸다”고 설명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언니들의 물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젊은 층은 하드풀을 선호하는 반면 나이 든 기업 임원들은 점잖게 놀다 가는 소프트풀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바지사장을 내세워 업소를 운영했던 김 씨는 종업원들 사이에서 회장님으로 불렸다. 건물 6층 구석 집무실을 따로 마련해 둘 정도였다. 21세기 기업화된 조폭 세력을 본뜬 모양새지만 정작 70년대 양아치 습성은 쉽게 버리지 못했던 듯싶다.
2011년 9월 김 씨는 한 영업사장에게 영업부진을 이유로 손실금 8억 원을 변제하겠다는 억지 각서를 강요했다. 또 유흥업소를 때려치겠다거나 업소를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을 내는 사람들에게도 가차없이 몽둥이질을 가했다. 한 영업사장에게는 선불금을 제때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BMW 스포츠카를 빼앗기도 했다.
이들의 폭력 행위는 건물 리모델링 과정에서도 벌어졌다.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업자를 불러 주먹과 발로 타박상을 가하는가 하면 한 조경업자에게는 조경석을 던지기도 했다. 또 공사비를 부풀렸다며 음향기기업자로부터 공사비 1500만 원을 포기시켜 갈취했다. 김 씨와 함께 음향기기업자를 겁박한 이는 다름 아닌 80년대 그룹사운드 ‘강병철과 삼태기’ 출신 가수 박 아무개 씨(51)였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김 씨 일당이 2010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풀살롱 4곳에서 올린 총 매출이 331억 원이며 이 중 순수익은 78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 돈으로 사채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채무자가 돈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룸살롱 옥상에 마련된 창고로 끌고 가 흠씬 두들겨 팼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보름 동안 감금시켜 놓으며 괴롭혔다.
김 씨 일당이 업소를 늘리기 위해 저축은행에서 대출한 돈도 문제가 되고 있다. 김 씨는 유흥업소 종업원들에게 선불 계약금 형식으로 빌려주는 돈인 ‘마이킹’의 액수를 부풀린 뒤 이 차용증을 담보로 제일저축은행에서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대출받았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불법 대출의 정황을 확인하고 후속 수사를 통해 자금줄을 죄고 있다.
하지만 이번 수사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도 강남 일대 유흥가에는 바지사장을 내세운 김 씨의 업소들이 버젓이 영업 중이기 때문이다. 김 씨가 운영하는 C 업소의 영업상무 B 씨는 “지금 다른 업소로 가야할 판”이라며 울상을 지으면서도 “업소가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폐쇄 조치를 내린다 해도 시간이 지나 장소를 옮기거나 업종을 변경하는 형태로 영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두고 “양은이파 재건이라니 언제적 양은이파냐”고 비웃으며 “뉴스대로라면 나도 양은이파 조직원이란 얘긴데 김 회장이 그쪽(양은이파)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우리에게 조직을 재건하겠다는 식의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조양은과 연락한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검찰이 자신들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양은이파’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것이다.
B 씨는 “뉴스를 보고 좀 놀라긴 했다. 회장님(김 씨)은 이 일대에서도 자상하다고 소문난 사람이다. 이쪽 업계에서 폭행과 공갈, 협박 등은 비일비재한 일인데 너무 조폭으로 몰아가는 것 아닌가”라며 김 씨를 옹호했다. 또 추종세력으로 알려진 가수 박 씨에 관해서는 “그 사람 역시 우리가 회장으로 부르는 사람”이라며 김 씨 일당과 깊이 개입돼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다르다. 이번 사건을 지휘했던 강력부 관계자는 “과거 조폭들은 열이면 열, 자신이 손을 씻고 그 세계를 빠져나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바지사장을 내세워 성매매 업소를 운영한 점, 사채를 빌려주고 채무자를 협박한 점, 영업사장을 폭행하고 공사대금을 부풀려 갈취한 점 등이 과거 조폭들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서민을 괴롭히는 폭력조직은 끝까지 추적해 일망타진한다는 것이 강력부의 입장”이라고 전해 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김 씨 자서전 속 충격 증언 화제
“89년 조양은이 살해 지시”
양은이파 재건 조직이 적발됨에 따라 두목인 조양은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씨는 2010년 출소한 뒤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며 생활하고 있다. 조 씨는 2010년 7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며 억울한 심경을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조 씨의 바람은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이번 양은이파 재건조직의 수사 과정에서 과거 비화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후계자 김 씨가 수감생활 중에 썼다는 자서전 초본 ‘보스의 전설은 없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양은의 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자서전에는 1989년 9월 ‘골든벨 스탠드바 살인미수 사건’의 새로운 증언이 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골든벨 스탠드바 사장인 박 아무개 씨는 1980년 조직을 이탈한 이후 조양은을 비롯한 조직원들을 경찰에 밀고해 배신자로 낙인 찍힌 인물이었다. 1989년 9월 양은이파 조직원들은 일본도와 회칼을 들고 나타나 박 씨를 수 십 차례 난도질하고 달아났다. 박 씨는 전치 11주의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검찰은 이 사건이 순천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조양은의 지시 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남기춘 검사는 교도소 복역 중 살해를 지시한 조양은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조양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에서 김 씨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폭력을 행사하였을 뿐 형님(조양은)과는 무관하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기나긴 수감 생활에 충정이 식은 탓일까. 이번에 공개된 자서전에는 당시 증언과 정반대되는 주장이 담겼다. 실상은 조양은이 순천교도소 면회 당시 자신에게 박 사장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이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자 김 씨는 “심심풀이용으로 쓴 것일 뿐”이라며 둘러댔다고 한다. 검찰 역시 1989년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났을 뿐만 아니라 이미 무죄판결이 난 사항이므로 재심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
“89년 조양은이 살해 지시”
하지만 조 씨의 바람은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이번 양은이파 재건조직의 수사 과정에서 과거 비화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후계자 김 씨가 수감생활 중에 썼다는 자서전 초본 ‘보스의 전설은 없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양은의 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자서전에는 1989년 9월 ‘골든벨 스탠드바 살인미수 사건’의 새로운 증언이 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골든벨 스탠드바 사장인 박 아무개 씨는 1980년 조직을 이탈한 이후 조양은을 비롯한 조직원들을 경찰에 밀고해 배신자로 낙인 찍힌 인물이었다. 1989년 9월 양은이파 조직원들은 일본도와 회칼을 들고 나타나 박 씨를 수 십 차례 난도질하고 달아났다. 박 씨는 전치 11주의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검찰은 이 사건이 순천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조양은의 지시 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남기춘 검사는 교도소 복역 중 살해를 지시한 조양은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조양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에서 김 씨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폭력을 행사하였을 뿐 형님(조양은)과는 무관하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기나긴 수감 생활에 충정이 식은 탓일까. 이번에 공개된 자서전에는 당시 증언과 정반대되는 주장이 담겼다. 실상은 조양은이 순천교도소 면회 당시 자신에게 박 사장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이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자 김 씨는 “심심풀이용으로 쓴 것일 뿐”이라며 둘러댔다고 한다. 검찰 역시 1989년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났을 뿐만 아니라 이미 무죄판결이 난 사항이므로 재심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