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폭로’ 정보 수집중 2차전 예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된 지 사흘 만에 경찰이 검찰의 내사 지휘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아 경찰의 내사지휘 거부 사태는 전국 10여 곳의 경찰서로 확산됐다. 수사권 조정 문제로 촉발된 검찰과 경찰의 파워게임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국민의 권익을 외면한 채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검·경의 얼룩진 현주소를 조명해 봤다.
2012년 1월 1일 새해 벽두가 밝아옴과 동시에 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개정 형사소송법과 시행령이 시행됐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다룬 형사소송법 시행령은 시행 초기부터 삐거덕거리며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월 2일 대구 수성경찰서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전국 처음으로 검찰 내사 지휘를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인천 중부경찰서와 부평경찰서도 인천지검이 내사 지휘한 사건 2건을 모두 거부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번 경찰의 내사지휘 거부 사태가 일부 경찰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월 4일 경찰청의 발표를 보면 수사실무지침이 현장에 전달된 뒤 대구 수성경찰서와 성서서, 인천 중부 및 부평서, 전주 덕진서 등이 지난 2~3일 검찰에서 보낸 진정사건 접수를 거부했다. 또 4일에는 대전 대덕서, 충북 음성서와 서울에서는 금천·동대문·서초서로 확산되면서 전국 10곳의 경찰서가 검찰에서 보내온 진정사건 접수를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경찰청은 “검찰이 경찰에 수사지휘를 할 수 있지만 검찰에 접수된 내사 및 진정사건은 접수 거부할 수 있다”며 “앞으로 수사 개시 전 검찰의 부당한 내사 지휘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자가 경찰서를 찾은 1월 4일에도 경찰서 내부는 하달된 지침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6번 지침은 아직 아니랍니다”라는 등 경찰들 사이에도 혼선이 오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기자가 만난 서울의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지침에 대해 “집단반발이 아니다. 수사 지침이 내려온 만큼 지침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고 밝혔다. 또 그는 “말로는 수사 개시권을 줬다지만 사실상 이전처럼 검찰의 지휘·통제를 받는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경찰 내부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내사도 수사의 일부로 검찰의 지휘는 정당하다”고 말하면서도 “더 이상 진정 건에 대해 내사 지휘하지 않겠다”며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당국 주변에서는 2차 후폭풍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경찰의 내사 지휘 거부 사태가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1차 후폭풍이었다면 2차 후폭풍은 검찰과 경찰 간의 비리에 대한 폭로전일 것이다. 모 검사의 비리에 대해 경찰이 내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 고위 간부 모두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정보수집 중이다”며 후폭풍을 예고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무엇 때문에 검찰과 경찰이 충돌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먼저 검·경수사권에서 충돌 요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경찰의 수사는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최종적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검사의 수사지휘 오남용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건 가로채기’다. 기자가 만나 본 일선 경찰들이 하나같이 지적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서울의 모 경찰서 관계자는 “검찰의 사건 가로채기가 어디 한두 번인가, 경찰이 수사 다 해놓으면 검찰이 당장 송치하라고 해서 공적을 낼름 가로챈다. 수사권 조정안에 경찰이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이상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검찰과 경찰의 충돌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권시민연대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의 목적이 두 거대 수사기관의 견제에도 있지만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근본적인 목적에서 출발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