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평가”지만 ‘유효성’ 언급 없다며 일부 주주 반발…김선영 대표 보유 지분 출연 약속 지켜질지 주목
지난 9월 2일 헬릭스미스는 유전자치료제 신약후보물질 ‘엔젠시스’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에 대한 임상 2a상 결과를 공시했다. 공시에서 헬릭스미스는 미국과 한국에서 루게릭병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임상 2a상을 진행한 결과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 64mg을 2주 간격으로 두 번에 나눠 주사하는 것을 1회로 정하고, 2개월 간격으로 3회 주사했다. 엔젠시스와 위약 비율은 2 대 1이었다. 회사 측은 “투여 후 후보물질로 인한 중대한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시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해당 공시는 임상 2a상 탑라인(Topline, 임상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지표) 결과에 대한 공시였고, 헬릭스미스는 주평가지표인 안전성에 대한 내용만을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임상시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주평가지표에 대해서만 기업이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들이 임상시험에서 주평가지표 충족에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평가지표를 갖고 홍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해당 공시가 나온 이후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카페와 종목토론방을 중심으로 뜻밖의 논란이 빚어졌다. ‘유효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발단이 됐다. 한 주주는 카페 게시판을 통해 “언제까지 안전성에 대한 이야기만 할 거냐. 이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번 임상에서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기능 평가(ALSFRS-R)의 점수 변화, 근력 둘레, 강제 폐활량 등 유효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에 대한 탐색적 유효성 평가가 이뤄졌다. 탐색적 지표는 임상시험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는 아니다. 즉 탐색적 지표에서 유효성이 확인됐다 하더라도 치료 효과가 입증됐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긍정적이었다면 해당 내용을 얘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임상의학과 전문의는 “임상시험 결과에 대해 기업이 모르는 건 없다. 탐색적 지표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발표를 안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긍정적인 결과였다면 ‘유효성 지표에서 통계학적 유의성을 입증하지는 못했으나 모든 지표에서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다’는 식의 표현은 가능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헬릭스미스 측은 유효성에 대한 통계적 수치를 고려하고 설계한 임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헬릭스미스 관계자는 “이번 임상시험의 목적은 고용량 반복투여의 안전성을 조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통계적 검정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임상 2상을 마치면 결과에 따라 유효성에 대한 통계적 검정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규모의 확대 임상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헬릭스미스에 대한 주주들의 신뢰 하락이라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의견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주는 “이번 임상은 임상 디자인대로 잘 수행했고 결과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유효성 등 ‘플러스알파’의 내용을 원한 주주들 입장에선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이다. 무너뜨린 시장의 신뢰를 넘어설 큰 소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주는 카페를 통해 “뭘 해도 단점부터 보이는 건 잃어버린 신뢰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1996년 설립돼 2005년 코스닥 시장에 기술특례 상장한 헬릭스미스는 아직 바이오신약을 내놓지 못했다. 회사의 핵심 파이프라인은 당뇨병성 신경병증, 당뇨병성 허혈성 족부궤양, 루게릭병, 허혈성 심장질환, 샤르코-마리-투스에 대한 치료제로 개발 중인 엔젠시스다.
그러나 엔젠시스를 상용화하지 못했고 개발 과정에서 논란이 빚어졌다. 엔젠시스 임상 중 가장 단계가 앞선 당뇨병성 신경병증에 대한 임상 3-1상은 2019년 주평가지표 달성에 실패하면서 유효성이 입증되지 못했다. 당시 헬릭스미스는 임상시험수행업체(CRO)의 실수로 환자 간 약물이 혼용된 데 따른 영향인 것 같다고 밝혔으나, 2020년 자체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약물 혼용은 없었으며 임상 운영 방법의 문제였다고 말을 바꿨다.
헬릭스미스는 현재 미국에서 두 번째 임상 3상인 3-2상을 진행 중이다. 2020년 6월 개시된 임상 3-2상은 지난 8월 22일 기존에 계획한 임상 대상자 최소 정원인 152명을 모집했다. 헬릭스미스 측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산하 독립 데이터 모니터링위원회(IDMC)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미 임상시험 참여 동의서를 제출한 환자를 포함해 160여 명까지 임상 대상자를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이 160여 명에 대해 추가 중간분석을 실시할지 최종분석으로 대체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8월 IDMC는 임상 3-2상의 중간분석 자료를 검토한 후 “계획대로 (추가) 중간분석을 진행하고, IDMC가 계속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그 데이터를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며 추가 데이터 요청 권고를 냈다. 통상 IDMC가 내는 의견인 △임상 지속 △임상 중단 △임상 디자인 수정과는 다소 다른 권고였다. 일부 주주들 사이에선 유효성에 대한 내용이 속 시원히 나오지 않아 불안함을 표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안전성이나 유효성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임상 중단이라는 권고를 내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김선영 대표가 약속한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김 대표는 올해 10월 31일까지 당뇨병성 신경병증에 대한 임상 3-2상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회사 주가를 10만 원까지 올리지 못하면, 본인이 보유한 주식을 회사에 전부 출연하거나 주주에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30일 기준 김 대표는 헬릭스미스 전체 주식의 5.20%인 196만 3495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목표 중 하나라도 지켜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막 등록이 완료된 환자는 180일간의 치료와 6개월의 추적관찰을 거쳐야 하는데 10월 31일까지는 두 달도 채 안 남았다.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김 대표도 2023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당뇨병성 신경병증 임상 3-2상의 결과를 내놓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주가도 신통치 못하다. 9월 6일 종가는 1만 5600원이었다. 헬릭스미스 주가는 2019년 3월 29일 15만 295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임상 3-1상에서 유효성 입증을 하지 못했고, 네 번의 유상증자로 모은 자금 중 2643억 원을 고위험 사모펀드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헬릭스미스의 재무 상황도 좋지 못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결손금은 3757억 원이다. 회사는 올 상반기 253억 원의 적자를 기록, 지난해 상반기(218억 원)보다 적자 폭이 커졌다. 현재 헬릭스미스 매출에는 건강기능식품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올 상반기 회사는 20억 7981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건강기능식품 판매 매출이 약 11억 원이다. 이외에는 신약 연구용역으로 매출을 올렸다. 최근엔 세포‧유전자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