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압도적 승리 예상 깨고 이용호 42표로 선전…총선 공천 위기감 속 친윤계 분화 움직임과 연결 짓기도
9월 19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경선이 열렸다. 이날 선거는 주호영 의원과 이용호 의원 간 양자대결로 치러졌다.
당초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친윤계(친윤석열계)’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주호영 합의추대설’이 제기됐다. 당 내홍이 심각한 상황에서 원내대표직을 두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준석 전 대표가 법원에 제출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정진석 비대위’가 좌초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당을 이끌 원톱으로 주 의원이 적합하다는 점도 설득력을 더했다. 주 의원은 지난 1차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당시 의총의 총의를 받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바 있다.
하지만 ‘합의추대’는 이용호 의원 출마 선언으로 불발됐다. 이 의원은 9월 15일 출사표를 던지면서 ‘주호영 추대론’에 대해 “지금 비상상황이어서 추대를 하자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대한민국 역사를 뒤집어보면 6·25 전쟁 중에도 선거를 치렀다. 비상상황일수록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 경선을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경선을 치러도 사실상 주호영 의원 추대에 가까운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용호 의원은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고, 지난해 12월 대선 때 국민의힘에 입당해 아무래도 원내대표에 오르기엔 의원들과 관계나 입지가 약했다”며 “이 의원이 한 자릿수나 10여 표 득표에 그칠 것이라는 말이 당 안팎에서 돌았다”고 평가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변’이 벌어졌다. ‘윤심’을 앞세운 주호영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선출되긴 했지만, 이용호 의원이 예상 밖 선전을 펼쳤다. 득표수를 보면 주 의원이 과반인 61표, 이용호 의원은 42표였다. 지난 4월 경선에서 ‘윤핵관’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102표 중 81표를 쓸어 담았다.
이 결과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친윤’ 그룹에 대해 당내 의원들이 견제구를 날렸다는 해석이 가장 많이 나온다.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당무 불개입’ 원칙하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윤핵관’ 권성동 전 원내대표나 ‘친윤계’ 초·재선 의원 등을 중심으로 ‘윤심’이 주호영 의원을 향해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전했다. 자천타천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4선의 김학용, 3선 박대출 윤재옥 조해진 의원 등이 고심 끝에 출마 의사를 접은 것도 윤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당내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친윤그룹의 국정운영이 차기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과 이준석 전 대표 사이의 극한 갈등을 두고는 ‘윤석열 대통령 책임론’까지 고개를 들었다. 영빈관 신축 예산, 영국 여왕 조문 취소, 빈손·굴욕 외교, 윤 대통령 비속어 막말 논란 등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이러한 기류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28%로 나타났다. 소폭 반등해 30%에 진입한 지 한 주 만에 다시 20%대로 주저앉았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대통령과 ‘친윤계’ 의원들에 대한 반발심이 이용호 의원에 대한 표로 표출됐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용호 의원에게 투표한 의원들이 이 의원 리더십만을 보고 표를 줬겠느냐. 더 이상 친윤그룹의 일방적 당 운영을 지켜볼 수 없다는 마음에 반대투표를 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지난 4월 ‘윤핵관’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게 몰렸던 표가 5개월 만에 ‘대통령과 친윤계의 국정운영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는 내후년 총선에서 내가 낙선하겠구나’라며 불안해하는 의원들로 인해 이탈한 것”이라며 “윤심이 흔들리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 의구심을 갖는 국민의힘 내부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물론 원내대표 경선은 무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어느 의원이 누구에게 표를 줬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대거 주호영 원내대표 체제에 비토하며 이 의원에게 표를 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진 조경태 김태호 의원 등은 실제 주호영 원내대표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왔다.
‘친윤계’ 분화가 원내대표 선거를 통해 가속화됐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초·재선 의원들이 ‘윤심’ 주호영 원내대표가 아닌 이용호 의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용호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선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를 지내는 등 윤 대통령과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 이 의원은 또 다른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주도해 조직했던 ‘친윤계’ 의원 공부모임 ‘민들레’에서 이철규 의원과 함께 공동간사를 맡기도 했다.
이에 ‘민들레’에 속했던 초·재선 의원 중 일부가 이용호 의원에 힘을 실어줬을 것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민들레에 이름을 올렸던 한 초선 의원은 “현재 국민의힘 내에 친윤·비윤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일부 의원들이 주호영 의원에 ‘윤심’의 향방이 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며 “이런 식으로 대통령을 팔아 개인의 목적을 이루려는 의원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초·재선 의원들도 차기 총선 공천을 위해서는 마냥 윤석열 대통령 의중에만 따를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 초·재선 의원 중 상당수가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민의힘 소속으로 당선이 편한 곳”이라며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 출신의 ‘윤석열 라인’을 차기 총선에서 대거 국회 입성시킬 계획이 있다. 그러려면 영남 지역구에 공천을 줘야 한다. 현재 초·재선들이 안심할 수만은 없다. 훗날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견제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이용호 의원을 선택한 42표가 당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당이 변화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은 봤다. 하지만 아직은 무기명에 기댄 반란표다. 손을 들고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한번 불만을 분출하고 끝나는 데 그친다”고 꼬집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