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원들 휴대폰 보호필름 부착으로 예방…의도적 노출 통해 정치적 메시지 던지기도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이준석 전 대표의 징계안을 두고 나눈 문자가 포착되면서 국민의힘이 다시 내홍에 빠졌다. 7월 26일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체리따봉’ 문자가 당을 위기에 빠트린 지 두 달여 만이다.
당시 권 원내대표는 “경위야 어쨌든 간에 저의 부주의로 내부 문자가 유출된 것은 잘못”이라며 “정치인도 사생활이 있는데 문자메시지를 망원경으로 당겨서 취재하는 것 등은 자제해달라”고 전했다. 이후로 국민의힘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에게 사진 기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휴대전화 경계령을 내리기도 했다.
과거부터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고 받은 휴대전화 문자 화면이 찍혀 곤욕을 치른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이때마다 의원들은 논란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일부 의원들은 휴대폰 사생활 보호 필름을 쓰기도 한다.
때로는 정치인들이 의도적인 노출을 했다는 의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뒤편에 언론사 카메라가 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의도적인 ‘언론플레이’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비서관으로부터 받은 ‘전쟁입니다’라는 문자가 노출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지지층을 겨냥한 메시지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지원 전 비상대책위원장,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등이 휴대전화 문자 노출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2016년 11월 11일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와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주고받은 문자가 언론에 포착되면서 논란이 됐다. 이 전 대표는 박 전 위원장에게 “비서 소리 이제 그만하시죠. 아무리 아래지만 공당의 장수인데 견디기가 힘들어집니다. 장관님 정현이가 죽을 때까지 존경하고 사랑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그러니까 잘 해. 이해하고 알았어요”라고 답했고, 이 대표는 “충성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나에게 충성 말고 대통령 잘 모셔”라고 말했다.
이는 박 전 위원장이 SNS에서 이 전 대표에게 ‘대표 그만두고 청와대에 들어가 비서나 하라’고 공격한 데에 이 전 의원이 서운함을 토로한 문자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여당 대표의 지나친 저자세가 당 내부에서 비판을 받았다. 같은 당 김진태 전 의원은 “망신 주기를 해서 공당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한 술수”라며 “고도로 기획된 작품”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의도적 문자 노출이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던 사건이 있다. 당사자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추-윤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0년 1월 9일 추 전 장관이 법무부 정책보좌관에게 “그냥 둘 수 없다”며 “지휘·감독 권한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 징계 관련 법령을 찾아 놓으라”고 지시하는 문자가 포착됐다. 정치권에서는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추 전 장관이 윤 전 총장의 ‘항명’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노출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회 본의장에서 애틋한 애정 문자가 포착되면서 불륜 논란으로 번졌던 사건도 있다. 2013년 11월 25일 정호준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한 여성에게 “사랑은 어떻게든 안 헤어지려 하고, 자꾸 보고 싶은 거지. 자꾸 자존심 세우고 헤어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여보 사랑해”라는 문자를 남겼다.
정 의원은 “아는 여동생”이라며 “친분 있는 오빠로서, 동생이 자신의 남자친구와 애정관계에 대한 고민을 듣고 충고하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정 의원은 정대철 전 의원 아들로, 서울 중구 지역구를 물려받으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이 논란에 더해 음주운전 이력까지 문제되면서 20대 총선 민주당에서 컷오프됐다.
문자 노출로 ‘포털 장악’ 논란이 일었던 사례도 있다. 2020년 9월 8일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연설이 한 포털사이트 메인에 게재된 것에 반발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좌진과 주고받는 사진이 공개됐다. 당시 보좌진은 “주호영 연설은 바로 메인에 반영되네요”라고 했고, 윤 의원은 곧바로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고 하셍”이라고 적었다. 윤 의원이 언론인 출신이자,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었다.
여야 대표나 대선 주자, 특정 이슈에 연루된 정치인은 본회의장에서 사진기자들의 주된 타깃이다. 국회 3층 본회의장은 의원들을 제외하곤 외부인들의 출입이 금지돼 있어, 기자들은 4층 기자석에서 본회의를 지켜봐야 한다. 기자들은 회의 내내 의원들이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한다. 보통 여야 지도부나 중진 의원들이 본회의장 뒷자리에 앉는다. 기자석과 방청석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의 단골 포착 대상이다.
한 국회 출입 사진 기자는 “4층에서 백사백(100~400mm) 렌즈로 400까지 줌으로 당긴다. 이후 크롭(Crop) 작업(찍은 사진을 가지고 적절히 중심을 살리면서 화면을 재구성하는 것)을 거치면 휴대폰 화면까지 나온다. 거리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른데 보통 원내대표나 대표들은 뒤에 앉기 때문에 거기까진 잘 보이고, 단상 근처에 있는 의원들의 경우는 문자하는 건 보여도 내용까진 안 보인다.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숨기는 느낌으로 휴대폰 보고 있는 의원들도 있어서 그런 분들이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