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단계에 맞춘 육아 효과 없어…가족·이웃과 일상생활 경험하는 환경 조성이 중요
우선 아이를 키우는 데 발달 공부가 필수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예전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단계를 전혀 몰랐어도 잘 키웠습니다. 그럼 발달을 공부하면 좀 더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육아전문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책에 있는 발달단계에 맞춰서 아이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더 좋습니다.
아이는 단계별로 자신의 발달에 필요한 요소를 일상생활에서 얻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이가 자신의 발달단계에 따라서 스스로 맞춰간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신경 써야 할 점은 발달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고 이웃과 일상을 충실하게 사는 겁니다. 그럼 발달에 대한 특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이를 키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 스스로 적응하면서 두뇌도 발달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능력도 기릅니다.
물론 육아책에 있는 발달에 대한 내용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발달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지 아이를 거기에 맞춰서 키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언어발달 단계별 목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배우는 데는 이런 이론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가 언어발달에 대한 지식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아이는 일상의 대화를 듣고 말을 저절로 배웁니다. 발달과정을 공부하고 거기에 맞춰서 부모가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간혹 어떻게 하면 아이가 빠르게 발달할 수 있는지 묻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럴 방법도 없고, 그럴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발달은 자기만의 타고난 생물학적 리듬을 따릅니다. 어떤 아이는 빠르게 어떤 아이는 느리게 발달하는데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발달이 빨랐던 아이나 느렸던 아이나 나중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빠른 발달보다 제대로 된 발달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뭘 해줘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일상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됩니다. 아이에게 가족의 일상대화도 많이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보여주고 가족, 이웃, 친구와 매일 놀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이가 가정의 규칙을 지키도록 훈육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아이는 대화를 들으면 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 중추가 발달해서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이 생깁니다. 놀이를 통해서도 단순한 즐거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과 공감 능력을 배웁니다. 어릴 때부터 훈육을 받은 아이는 부모 말 잘 듣는 것을 넘어서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이런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제대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기보다 가족,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일상의 경험은 다른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면도 있습니다. 요즘 부모는 공부도 많이 하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데도 일상의 경험이 부족해 제대로 발달할 기회를 잃는 아이들이 많아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발달은 단계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저절로 다음 발달단계로 넘어갑니다. 부모가 발달단계에 맞춰 가르친다고 변하는 건 별로 없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경험이 부족하면 정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하정훈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교육이사,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모유수유위원회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하정훈소아과의원 원장이다. 베스트셀러 육아지침서이자 육아교과서라 불리는 '삐뽀삐뽀119 소아과'의 저자이기도 하다.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