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형 ‘복붙’ 5만~9만 원, 양형 자료 패키지 상품도…“맡기는 것도 노력” 일각, 대필 취지 공감하기도
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이 과거 불법촬영 및 스토킹 혐의로 재판을 받을 당시 재판부에 수십 장의 반성문을 제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성문 양형’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전 씨는 한 번에 수십 장씩, 수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 제53조에 따르면 참작할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는데, 여기엔 피고인 및 피의자들의 반성 여부도 포함된다. 대법원 양형기준에도 ‘진지한 반성’을 통한 형량 감형이 있다(관련기사 “헌혈증부터 초음파사진까지 일단 제출” n번방 그들 ‘감형 꿀팁’의 비밀).
문제는 진지한 반성 여부를 재판부가 살피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재판 과정에서 43차례 반성문을 제출했고, 법원은 이영학에게 무기징역을 최종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반성문 말고는 교화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마땅치 않다”며 제출한 반성문을 양형에 참작했다. 하지만 형이 확정된 이영학은 반성은커녕 딸에게 “책을 쓰고 있다. 1년 정도 기다려. 우리가 복수하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기준 전체 성범죄자 피고인 중 70.9%가 ‘진지한 반성’, 30.3%가 ‘형사처벌 전력 없음’의 이유로 감형 받았다. 2016~2019년 신고된 성범죄 사건 중 집행유예가 나온 사례의 63.8%가 ‘진지한 반성’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 반성문을 대신 써주는 일들이 빈번하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재판부 양형에 반영되는 반성문이 상품으로 전락한 셈이다. 가해자가 직접 쓰지 않은 꾸며낸 반성문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뒤를 잇는다.
일요신문은 대필 반성문을 직접 의뢰해보기로 했다. 이름은 김성민(가명), 40대 초반 남성, 자녀 있음, 음주 후 전 여자친구 스토킹 상황을 설정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반성문 대필’을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일반 사업체, 행정사, 중형 로펌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업체의 광고가 나왔다. 시가는 보통 5만~9만 원선이었다. 대필을 의뢰하면 12시간 안에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법조 기자 출신들이 설립했다는 한 업체는 “판사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녹여내는 작업이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며 “피고인의 진심어린 반성은 중요한 양형사유”라고 홍보했다. 몇 업체는 ‘양형 자료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반성문, 탄원서, 서약서, 교육수료증 등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가격은 2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로 책정됐다.
한 대필 업체에 “오늘 내로 반성문 대필이 가능하느냐”고 문자로 묻자, 업체로부터 5분 만에 “급행으로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필 비용은 5만 5000원, 급행일 경우 3만 3000원이 추가된다 했다. “반성문이 양형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형법상으로 양형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고 했다. 비용을 입금하자 생년월일, 주소, 직장, 사건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음주 여부, 사건 발생 이후 생활, 과거 범죄 처벌 이력 등을 묻는 질문란을 받을 수 있었다.
하루 만에 도착한 반성문 서두는 “위 본인은 거짓 없이 반성문을 작성하였으며 존경하는 검사님께 고개 숙여 선처를 부탁드린다”로 적혀있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노루잠을 자는 일이 대수였고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근주자적하며 살겠다….”
“사건 당시에 여자친구와 이별 때문에 힘들어하던 시기였고 속상한 마음에 술을 한잔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에 한잔, 두잔 마시다보니 제 주량을 넘기게 되었고 술에 취한 채로 판단력이 흐려져 피해자인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가게 되었고 여자친구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저는 도어락을 계속 눌렀고 그럼에도 열리지 않자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 의하여 현재의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상황이 계속 생각나면서 하늘이 노랗게 질리며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고 예민해지고 집중이 되지 않았으며 이후 아무래도 가족의 울타리라는 방패로서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곳인 집에서 반성만을 할 뿐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가 되고 백발노인이 되어 늙어갈 때까지도 피해자분을 마음 한 곳에 두고 사죄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도록 하겠다….”
분량은 총 2000자가량으로 A4 용지 3장을 채웠다. 반성문 곳곳에선 ‘복붙(복사 붙여넣기)’ 짜깁기 흔적도 보였다. 김성민으로 의뢰한 반성문임에도 중간 단락에서는 ‘반성인 김대만’이라고 본인 소개를 하거나, ‘존경하는 검사님’과 ‘존경하는 재판장님’이 혼동해서 쓰여 있었다. 공장형 반성문 대필 업체의 일명 ‘복붙(복사 붙어넣기)’ 반성문으로 보였다.
어색한 표현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날의 잘못은 평생 잊지 않고 마음 중앙에 자리 잡고 살도록 하겠다”,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되는 것처럼 주위환경이 중요한 사회인 만큼 먼저 솔선수범하여…” 등이다.
현재 국회에선 ‘반성문 감형 꼼수 근절법’이 발의된 상태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따르면 법관이 양형을 참작할 때 피해자 관점의 의견 진술을 듣도록 했다.
송 의원은 “재판 편의적, 가해자 중심적인 양형 조건으로 피해자는 두 번 울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 보호 관점의 양형기준 마련을 통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제안 취지를 설명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진지한 반성’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등을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반성문 대필의 취지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긴 한다. 형사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대필을 맡기는 것 역시 피고인, 피의자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며 “괜찮은 반성문은 피고인이 어떤 경위로 잘못을 했고 이후에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기는데, 피고인이 대필을 의뢰할 때 이를 업체에 전달할 거다. 피해자가 이를 본다고 생각하면, 돈 써서 표현을 다듬고 더 수려한 글이면 좋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