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공룡들 개미 밥그릇도 ‘날름’
▲ 영등포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고급 베이커리 ‘포숑’ 전경. 롯데 장선윤 블리스 사장이 운영 중이다. 임준선 기자 |
‘재벌닷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자산순위 상위 30대 그룹(공기업 제외)의 계열사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2011년 말 기준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1150개에 달했는데 주목할 점은 이들 재벌기업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M&A를 통해 무려 211개의 기업을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신규편입한 전체계열사 442개의 47.7%를 차지하는 규모다.
3년간 M&A를 통해 가장 많은 회사를 사들인 그룹은 CJ로 드러났다. CJ는 2009년 이후 신규편입한 계열사 39개사 중 30개사(76.9%)를 M&A로 인수했으며 자체 설립한 회사는 9개사에 불과했다.
삼성은 의료기기업체인 메디슨 등 바이오헬스와 전자 화학 소프트웨어 경비업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업종의 계열사를 인수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자산규모 10조 원에 달하는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건설업에 진출했다. SK도 하이닉스 인수를 성사시킴으로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이들 재벌의 적극적인 M&A 행보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 기업이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거나 지분 취득을 통해 대주주에 오르면서 경영권을 장악해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재벌그룹들이 인수한 회사들 중에는 자본력만 부족할 뿐 상당한 기술력과 잠재력을 보유한 알짜배기 기업들이 적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재벌그룹들이 이들 기업을 인수합병함으로써 자본과 기술력을 결합시켜 서로 상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재벌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이어져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 등쌀을 이기지 못해 영세상인들이 운영하던 업체들이 속속 문을 닫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수십 년간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오던 상인들은 “대기업들이 동네상권에 손을 뻗치는 바람에 설 곳이 없다. 우린 원료비는 물론이고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도 벅차다. 굳이 서민들이 하는 업종에까지 손대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재벌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벼룩 간까지 뺏어 먹겠다는 심보아닌가”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말 그대로 ‘동네장사’로 불리는 치킨집이나 세탁소, 식당, 분식집까지 재벌들이 장악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업자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재벌가 자제들까지 기업 몸집불리기에 가세한 모습이다.
재벌가 딸들의 빵집전쟁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삼성가 딸인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아티제’라는 브랜드로 고급 커피·베이커리 전문점 사업에 진출했으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달로와요’ ‘베키아에누보’라는 브랜드로 베이커리 사업을 하고 있다. 또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오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손녀 장선윤 블리스 사장은 ‘포숑’ 브랜드로 제빵 및 와인사업에 진출했다.
현대가 3세인 정교선 사장이 운영하는 현대홈쇼핑은 최근 국내 백화점 판매 1위 브랜드인 패션업체 한섬을 인수했다. 패션업계와는 무관해보이는 현대가 한섬을 인수한 것을 두고 재계 패션업계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일감 몰아주기식으로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하거나 이미 구축된 유통망 등 이른바 재벌네트워크를 통해 땅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관련 그룹들은 세간의 질타에 대해 하나같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M&A가 몸집불리기에 혈안이 된 그룹의 부도덕하고 비겁한 행태가 아니라 경쟁력 강화 및 신사업 진출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3년간 M&A를 통해 가장 많은 회사를 사들인 기업으로 꼽힌 CJ는 기업 사냥을 통해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에 나섰다는 일부 매체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사업구조 개편에 나선 기업과 기업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피인수 기업 계열사들이 딸려왔을 뿐, 무분별하게 계열사를 늘린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벌그룹들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인수합병을 통한 재벌들의 계열사 확장 논란은 국민들의 재벌에 대한 불신과 맞물려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도마에 오른 재벌가 딸들의 빵집 전쟁과 관련해 “그룹사의 유통망에 입점하면서 판매수수료나 임대료 등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25일 “재벌 2~3세 본인들은 취미로 할지 모르지만 빵집을 하는 입장에선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재벌가 자녀들이 소상공인 업종에 진출한 실태를 경제수석실에 지시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업윤리를 거론하고 영세상인들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거세지자 급기야 삼성과 LG를 비롯한 일부 재벌기업들은 베이커리 사업 등 일부사업 철수 방침을 밝혔다.
재벌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에 대한 세간의 눈초리가 따가운 가운데 다른 재벌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