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설설’ 전셋값 ‘훨훨’
▲ 서울 송파구 잠실동 신천역 부근 아파트단지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매매시장 반등 가능할까?
매매시장 침체는 일단 ‘집을 사봐야 오를 리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문제다. 지난해 서울에서 평균 집값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광진구 광장동의 한 중개업자는 “시세보다 5000만 원 떨어진 급매물이 나와 평소 관심을 보였던 고객 10여 명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답변을 해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며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란 생각에 급매물이라고 해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수도권 2000여 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데 따르면 1월 16일 기준 서울 매수우위지수(100이면 매수세와 매도세가 똑같고 100보다 낮으면 매수세가 그만큼 없다는 뜻)는 12.3으로 국민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2000년 1월 이후 가장 낮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거래는 뚝 끊겼다.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25일 기준) 주택거래 신고건수는 904건에 불과하다. 신고 가능한 날이 며칠 남긴 했지만 최근 5년간 1월 평균 거래건수가 4600여 건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폭락 수준이다. 국민은행 나찬휘 부동산조사팀장은 “중개업소가 대부분 한산하며 매수세가 거의 없고 팔려는 사람만 몰려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가 사라지면 급매물은 쌓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를 매수할 사람들의 자금 사정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등으로 가계 부실이 심화하고 있고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져 당분간 집값 반등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총선·대선 효과 없을까?
그런데 올 주택시장엔 변수가 있다. 총선과 대선이다. 매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해의 2~4월 주택시장은 뜨거웠다. 지난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1월(-0.4%)까지 침체됐던 전국 주택시장은 2월(0.2%)부터 상승세로 바뀌었다. 18대 총선 직전인 2008년 3월(0.8%), 4월(0.9%)엔 뉴타운 등 각종 개발 공약이 쏟아지면서 집값이 폭등했다.
그러나 올해는 이렇게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쪽으로 대부분 전문가들은 의견을 모은다. 선거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개발 공약 때문이다. 한데 요즘은 공약만 내놓고 실천하지 않는 정치권의 모습을 수차례 목격한 국민들이 더 이상 구호뿐인 개발 공약에 신뢰하지 않는다. 정치권도 함부로 부동산 개발 공약을 내놓는 게 오히려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자제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여·야에서 하나둘 내놓는 공약을 보면 개발 공약보다는 서민주거 안정 대책이 더 큰 화두다.
◇전세난 본격화할까?
매매시장이 계속 위축될 전망이라면 임대 시장은 활기를 띨 가능성은 많아진다. 집을 살 여력이 없어도 살 집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등 새 집을 구하려는 수요가 늘고 기존 무주택가구도 매매로 전환하지 않고 전세를 계속 지키려 하기 때문에 임대주택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봄 이사를 앞둔 2~3월은 특히 1년 중 전세가 상승폭이 가장 큰 시기다. 게다가 임대시장에 새 주택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올 입주 물량은 작년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예컨대 2월 서울 입주물량의 경우 예년에 비해 70%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벌써부터 서울 전세가는 오르기 시작했다. 1월 중순 이후 고덕시영 아파트 이주수요의 영향으로 강동구를 시작으로 상승했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서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가가 뛰면서 조금씩 수도권 외곽으로 전세 부족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형주택 임대사업 전망은?
전세난이 심화하면 임대사업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 원룸 등 소형 주택을 이용한 임대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질 전망이다. 전세가가 뛰면 일부 가구는 매매로 전환하는 수요가 생겨 소형주택 인기도 꾸준할 전망이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오피스텔 등 소형주택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입지가 좋지 않거나 한꺼번에 공급이 몰린 지역에선 미분양이 발생하는 등 지역별로 분양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늘어날 전망이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퇴직금을 이용하거나 기존 부동산시장을 처분해 소형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역세권 등 선호지역을 중심으로 소형주택,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책 나올까?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면 정부는 추가 규제완화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뭔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발표한 12·7 부동산대책은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올해 건설부동산 관련 규제를 30% 개혁하겠다”면서 “시장 상황만 놓고 보면 강남 3구의 투기지역도 해제하는 것이 맞다”고 말해 추가 규제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재개발 재건축 관련 제도가 올해 바뀔 가능성도 있어 한편으로 기대를 모은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 정책을 새로 다듬어 올 상반기 발표할 계획이다. 사업성이 없는 곳은 지정을 취소하고 가능성이 있는 곳은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여 어떤 새로운 대책이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유럽재정위기 여파는?
부동산 시장은 금융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대부분 개발 계획이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조달을 통해 이뤄지고 있고, 가계도 대출을 통해 주택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 재정위기로 금융권이 자금을 푸는 데 부담이 커진다면 부동산 시장은 침체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은 지난 1월 25일 유럽 경제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려면 2030년까지 가야 할지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의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도 큰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유럽재정위기는 주택시장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며 “아직 불확실성이 많아 보수적인 투자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