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쟁 부문 대상 ‘비극이 잠든 땅’, 한국경쟁 대상 ‘씨앗의 시간’ 등 수상
경기도 파주시와 고양시 일대에서 8일 동안 진행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53개국에서 초청된 137편의 작품으로 관객과 만났다.
주요 섹션인 국제경쟁, 아시아경쟁, 한국경쟁 부문은 예년보다 작품의 주제 의식이 명확하고 완성도가 높은 초청작들로 채워져 관객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첨예한 이슈를 포착한 것은 물론 소외된 이들의 현재에 주목하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영화제의 방향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국제경쟁 대상 ‘비극이 잠든 땅’
올해 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국제경쟁 부문 대상은 쿰야나 노바코바, 기예르모 카레라스-칸디 감독이 연출한 ‘비극이 잠든 땅’이 차지했다. 1995년 7월 내전 중이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접경도시 스레브레니차에서 총 837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규모 학살을 다룬 영화다.
영화제 측은 “형식적 독창성과 세련된 아카이브 푸티지 활용, 역사와 기억에 대한 시적인 감각, 말과 이미지의 힘을 합쳐내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대학 졸업반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을 담은 라피키 파리알라 감독의 ‘우리 이름은 학생’, 아시아경쟁 부문 대상은 스노우 흐닌 아이흘라잉 감독의 ‘미얀마의 산파들’이 각각 차지했다. 특히 ‘미얀마의 산파들’은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겪는 억압과 차별, 무슬림과 불교의 갈등, 미얀마의 쿠데타는 물론 성평등 이슈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호평 받았다.
한국경쟁 대상은 느린 삶의 소중함을 표현한 설경숙 감독의 ‘씨앗의 시간’이 받았다. 농부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이 만난 활력 넘치는 리듬을 카메라에 담아낸 역작이란 평가 속에 고된 노동의 숭고함을 시적으로 표현해 인정받았다.
이 밖에도 단편경쟁 부문 대상은 노동자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퍼포먼스 참여자로 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소요헨 감독의 ‘여공들의 기수’, 심사위원 특별상은 차재민 감독의 ‘네임리스 신드롬’가 차지했다.
특별상은 모두 5개의 부문에서 이뤄졌다. 권아람 감독의 ‘홈 그라운드’는 신인 감독상과 관객상 2관왕에 올랐고,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용감한 기러기상, 홍진훤 감독의 ‘멜팅 아이스크림’은 아름다운 기러기상, ‘미얀마의 산파들’은 넥스트상을 각각 받았다.
#강진석 프로그래머 “지정학적, 사회적 이슈 다룬 작품들”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는 핵심 섹션인 국제경쟁, 아시아경쟁, 한국경쟁 등 3개 부문에서 시선과 주제를 확장한 작품들을 채워 호평 받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첨예한 이슈와 현상 그리고 지나간 역사의 이면을 함께 고민하는 특별한 장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국제, 아시아, 한국 및 단편까지 4개의 경쟁부문을 담당한 강진석 프로그래머는 개막 기자회견에서 “여러 영화제 등에서 호평 받은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고 밝혔고, 이는 실제 영화제 라인업으로 증명됐다. 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물론 영화인들의 호기심과 관심까지 충족한 올해 초청작 라인업은 프로그래머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이에 더해 “아시아 경쟁부문 등에선 지정학적, 사회적 이슈가 있는 긴급한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특징”이라고 밝힌 강진석 프로그래머의 설명은 작품들의 면면으로도 확인됐다. ‘미얀마의 산파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사는 불법체류인 2세 미등록 이주 아동들에 관한 이야기인 ‘땅에 닿지 않는 비’ 등 아시아경쟁 초청작은 두루 호평 받았다.
#소수자를 포용하는 영화제의 ‘품’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상영 외에도 다양한 기획을 통해 소수자를 포용하면서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시도도 벌였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에 대한 배려가 대표적이다.
영화제 측은 9월 25일 수도권 지역에 거주 중인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을 초청해 특별 상영회를 가졌다. 이들이 관람한 작품은 아프가니스탄 다큐멘터리 ‘그래도 나는 노래하리’다.
이 작품은 아프가니스탄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출전한 여성 세 명을 다룬 이야기로, 이들의 꿈을 짓밟는 탈레반의 모습까지 포함돼 있다.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 한국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기여자들의 상황과 겹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응원하는 뜻에서 마련된 자리다.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도 진행됐다. 영화제는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비전향 장기수들의 보금자리 ‘만남의 집’에서 지내는 김영식, 박희성, 양원진, 양희철 선생 등 비전향장기수 4명의 사진을 촬영했다. 이는 올해 초청작인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2차 송환’과 연계한 프로젝트로, 사진 촬영은 올해 영화제 포스터 사진을 제공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흥구가 맡았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간 비대면 등으로 축소했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올해 규모를 확대해 대면 행사로 치렀다.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발굴과 제작을 돕는 산업 플랫폼 ‘DMZ 독스 인더스트리’는 40개국에서 240편이 참여했다. 영화제는 이 가운데 피치 경쟁 등을 통해 17개국 70개 프로젝트를 선정해 제작지원금과 현물 지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