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데이터 이중화 법안 법사위서 막혀…채이배 전 의원 “IT 기업 로비 때문” 주장
#카카오 먹통 사태에 여야 한목소리
10월 19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당정 협의회를 열고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당정 협의회는 카카오, 네이버 등 부가통신서비스사업자도 데이터 이중화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행법 대상인 △기간통신사업자 △지상파방송사업자 △종편방송사업자뿐만 아니라 부가통신사업자한테도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도록 할 방침이다. 사업체가 통신재난 예방 및 수습·복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정부는 해당 업체 매출액의 3% 이하를 과징금 또는 과태료로 부과할 수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정 협의회를 마친 후 “기간통신사업자와 달리 부가통신사업자는 (데이터) 이중화가 안 돼 있어 조치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의견들이었다”며 “국민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가통신사업자들에 대해 이중화를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입법이 되기 전에 현장을 점검하고 이중화 조치가 안 된 곳은 행정권고로 이중화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선 후보 당시부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한 민간 중심 경제와 규제 완화를 내세웠던 윤석열 대통령도 카카오에 책임을 물었다. 10월 17일 윤 대통령은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더구나 이것이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며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망이지만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국가 기반 통신망과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카카오 먹통 사태 관련해서 비판하고 나섰다. 10월 19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카카오 먹통 사태로 주말 매출에 차질을 빚은 소상공인의 한숨이 계속되고 있다. 택시대리기사, 온라인쇼핑몰 등 서비스 유형이 광범위하지만,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오죽하면 소상공인이 직접 나서서 센터를 설치하고 피해 규모를 파악했는데 어제 하루 만에 (피해 접수가) 500건에 육박했겠나. 정부는 피해 규모 파악과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법안 개정에도 착수했다. 박성중·최승재 국민의힘 의원 등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데이터센터를 국가 재난관리 체계에 포함시켜 네이버, 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도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조승래 의원이 같은 취지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카카오처럼 데이터센터를 임차해서 사용하는 사업자도 데이터센터 보호조치 의무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치권은 국정감사에도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를 다룬다는 방침이다. 관련 책임자들이 대거 국감장에 불려 나올 예정이다. 10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와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 업비트의 이석우 두나무 대표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같은 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GIO(글로벌투자책임자), 박성하 SK C&C 대표, 홍은택 카카오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 6명을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 올렸다. 10월 24일 열리는 종합감사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장애 사태의 원인, 방지대책, 보상방안 등 관련해 집중 질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IT 업계 반발로 막힌 법안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에서 사실 상당히 논의를 많이 해서 준비가 된 법안이다. 그래서 졸속은 아니라는 생각한다. 데이터센터가 사실 재난의 경우 대비를 하지 않으면 굉장히 큰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데이터센터가 (국가 재난관리 체계에) 포함돼야 되는 건 맞다.”
최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20년 5월 20일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이날 최 전 장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 대부분이 IT 기업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해당 법안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18명의 법사위 소속 의원 중 법안 통과 찬성 의사를 주장한 의원은 채이배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뿐이었다. 이 법안은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사건으로 통신 시설에 대한 관리 의무 필요성이 커지면서 추진됐었지만, 당시 IT 기업들이 ‘과도한 이중규제’라고 거세게 반발에 나섰었다.
특히 2020년 5월 20일 법사위 회의록에 따르면, 법사위원장인 여상규 국민의힘 의원은 회의가 끝나갈 무렵 법안을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여 의원은 “지금 최기영 장관님께서 ‘시행이 아주 긴요하고 필요하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러면 이게 두 가지 법률에서 데이터센터에 대한 규제를 한다 하더라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중복되지 않게 그렇게 시행령에 잘 반영을 하고, 위원님들 의견을 또 시행을 장관님께서 잘 해 주시면 우선 통과시키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급하다고 하니까. 그래서 위원님들께서 양해하시고, 대부분 또 21대 국회에 진출하시니까 그때 가서 법안을 좀 손질해서…”라고 말했다.
그런데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법사위원장 말을 자르며 막아섰다. 장 의원은 “아무리 지금 저희가 20대 국회를 마치지만 위원님들 몇 분이 체계가 안 맞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뭐가 급해서 이렇게 땡처리하는 식으로 합니까. 21대에서 또 논의하면 되는 거지”라고 말했다. 곧바로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장관께서 급하다고 호소하니까 법을 통과시켜서 시행하게 하고 21대 국회에 가서 개정안을 발의하자고 재차 제안했고, 채이배 백혜련 의원이 동의했다. 그러자 장 의원은 “이것은 2소위에 가서 다시 한 번 의논해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 지금 중복해서 규제를 하고 그래요?”라고 다시 막아섰다.
채이배 전 의원은 당시 법안 폐기 배경으로 IT 기업들의 로비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은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은 국민의힘에 적극적으로 로비했다. 법안이 통과돼서 데이터 이중화를 하면 상당한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며 “당시 법사위 위원들이 한 말은 모두 로비를 담당했던 로펌에서 설명한 주장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는 법안 폐기됐더라도 정부 권고대로 데이터센터 이원화를 해서 이번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관련 피해를 최소화했다. 반면 권고를 무시한 카카오는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켰다. 법안이 통과됐다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는 해당 법안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측은 “국회에서 재추진 중인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으나, 아직 공식 입장을 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2020년 5월 12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체감규제포럼 등 4개 단체는 20대 국회의 임기 말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 등 쟁점법안 졸속 처리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밝힌 바 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