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시장 꽁꽁 건설사 부실화하면 금융사도 유탄…달러 품귀 속 은행들 차입 열올려, 다시 금리 상승 압박
실제 최근 금리는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고채 3년 금리는 올해 초 1.8%였지만 현재는 4.2% 수준으로 올랐다. AA- 등급 3년 만기 회사채(무보증) 금리는 2.4%에서 3%포인트(p) 오른 5.4%대다. BBB- 등급의 경우에도 8.3%에서 11.3%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현재의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많지 않다. 내년에도 금리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굳이 지금 이자율로 대출을 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기업들이 돈을 구하지 못하면 대금 결제나 채무 이행을 할 수 없게 된다.
부동산 개발자금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시장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 개발을 해도 분양이 되지 않거나 원가가 상승해 밑지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레고랜드 ABCP에서 채무불이행이 발생해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다. 일종의 담보부 채권인 ABCP까지 부실화될 정도면 건설사는 물론 금융사까지 그 충격파가 미치게 된다.
심지어 금융사들도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고금리 예금이나 고금리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면 결국 대출금리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기업의 유동성 경색은 가계의 이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유동성 경색으로 채권시장 기능이 마비되자 정부는 20조 원 규모의 채권안정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한국은행과 금융사 등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자금사정이 급한 기업들의 회사채를 인수하는 기금이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채권안정기금의 역할이 애매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때도 채권안정기금을 가동한 바 있다. 당시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을 푸는 국면이었으므로 일시적 유동성 공백만 메워주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다. 경기도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 긴급자금 수요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금리를 올리면서 돈을 더 풀면 물가를 잡기 어렵게 된다. 고금리가 계속되면 이자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유동성 경색을 방치하면 기업들의 도산 위험이 커진다. 정부로서는 딜레마에 처한 셈이다.
그나마 원화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이라도 동원할 수 있지만 달러는 그럴 수도 없다. 100% 자급 경제가 아니라면 달러가 있어야 필요한 물품을 해외에서 사올 수 있다. 자국 통화가 많아도 달러를 확보하지 못하면 물품대금 결제나 외화채무 상환을 제대로 하지 못해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사도 해외 거래를 위해 맡겨 놓은 국내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추가담보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자산을 팔아서라도 달러를 만들어야 한다. 달러로 가장 바꾸기 쉬운 자산은 미국 국채다. 실제 중앙은행, 국부펀드, 연기금 등은 보유한 미국 국채를 내다팔고 있다.
자산을 팔아서도 달러를 구하지 못하면 빌려와야 한다. 그러나 금리 상승에 따라 미국 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달러 가치가 오르면서 달러를 구하는 비용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20대 은행의 올해 상반기 외화차입금 평균 잔액은 85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5% 늘었다.
특히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외화콜머니 평균잔액은 3조 6201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34.6% 급증했다. 외화콜머니란 은행 간의 초단기적인 자금대차거래를 뜻한다. 외화콜머니가 증가했다는 것은 급전으로 달러를 빌리는 경우가 늘었다는 뜻이다. 달러 품귀가 계속되면 환율 상승이 지속되고, 이는 수입 물가를 자극해 또 다시 시중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금부족 현상, 부동산 한파는 더 심각
자금 부족 현상은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 거래 절벽과 가격 하락으로 세입자와 새집 입주를 앞둔 사람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꼬마빌딩’도 금리가 오른 만큼 임대수익률이 따라주지 않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 경색은 가격 하락과 관련된 대출 부실로 이어져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5월 마지막 주부터 20주 연속 하락했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마저 시세보다 수억 원 저렴한 급매물이 등장하고 있지만 거래는 끊긴 지 오래다.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38만 539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3만 7317건)의 절반 수준이다.
금리 상승으로 집값이 하락하고 전세 시장도 침체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도 급증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지난 9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보증사고 건수는 523건, 보증사고 금액은 1098억 원으로 2013년 9월 해당 상품 출시 이후 각각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HUG가 보증사고로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은 지난 9월 한 달 동안에만 952억 원에 달했다. 월별 기준 사상 최대였다. HUG의 올해 1~9월 누적 대위변제액은 총 5292억 원(2446가구)이다. 지난해 1년치 변제액 5040억 원(2475가구)을 넘어섰다.
입주 시장에도 한파가 불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입주를 늦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잔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 분양가 인하 등 조건 변경을 요구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하는 수도권 아파트 입주전망지수는 지난 9월 51.6을 나타냈다. 지수가 기준선(100.0)보다 낮을수록 입주 전망을 긍정적으로 본 사업자가 적다는 의미다. 입주에 차질을 빚게 되면 건설사들이 자금난에 봉착하게 되고, 이는 금융사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집주인이 끝내 전세 보증금을 갚지 못하거나 입주자를 구하지 못한 주택들은 경매 시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경매 낙찰률은 시장의 온도를 반영한다. 낙찰가가 낮거나 유찰이 많다면 집값 하락의 전조다.
법원경매정보와 지지옥션 통계 등에 따르면 올해 1~9월 경매로 나온 서울 주택 매물은 총 42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58% 늘었지만 낙찰건수는 오히려 줄었다. 서울의 경우 지난 9월 진행된 67건 중 15건만 낙찰됐다. 통계가 시작된 2001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낙찰률이다. 많은 수요자를 모았던 강남권 매물에서도 유찰이 나올 정도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