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피해 원인’ 꽁초 처리에 활용 안 돼…관련법 발의됐지만 논의 없어 “담배산업 컨트롤타워 필요”
지난 8월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인 까닭도 있었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인재라는 비판도 있었다.
침수 원인 중 하나로 담배꽁초, 담뱃갑 등 쓰레기가 쌓인 것에 따른 빗물받이 윗면 막힘 현상이 지목됐다. 실제 강남역 인근에서 빗물받이를 들어 올려 빗물을 빠지게 하는 이른바 ‘강남역 슈퍼맨’이라고 불린 시민의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길거리와 빗물받이에 버려진 담배꽁초에 대한 관리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 빗물받이 청소 및 유지·관리는 각 관할 자치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자치구에는 환경미화 등 명목으로 담뱃세가 배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구청 관계자는 “담배소비세는 보통세로 분류된다. 담배소비세의 경우 시가 납부 받는다”고 전했다. 시청 관계자 역시 “담배소비세는 시에서 받아 예산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빗물받이 청소에 담뱃세가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담배는 제조 원가보다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흡연자가 담배 한 갑을 4500원에 구매하면, 그중 세금이 3323.4원이다. 소비자 판매가의 74%가 세금인 셈이다. 흡연자들이 매년 내는 담뱃세는 1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담뱃세 중 담배소비세가 1007원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국민건강증진부담금 841원, 개별소비세 594원, 지방교육세 443원, 부가가치세 409원, 폐기물부담금 24.4원, 연초생산안정화기금부담금 5원 등이다. 담뱃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보건복지부 담당 예산으로 총 금액의 65%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하고 있다. 또한 금연교육과 광고, 흡연피해 예방 및 흡연 피해자 지원 등에 쓰인다.
담배 한 갑 당 폐기물부담금은 24.4원으로, 연평균 750억 원 규모다. 환경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금 역시 담배꽁초 처리나 수거 효율화 사업 등에 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하천 개량화 사업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폐기물부담금 활용 개선안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흡연자들은 흡연장소와 담배꽁초 전용수거함 등이 턱없이 부족해 길거리에 담배꽁초 쓰레기가 늘어난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에 본인들이 내는 담뱃세를 흡연자들을 위한 시설과 편의를 위해 사용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흡연자 김 아무개 씨는 “담배 연기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담배는 어디까지나 기호품이다. 국가가 흡연을 통제하고 막을 수는 없다. 현재 정책을 보면 흡연자들이 설 자리를 자꾸 줄이고 있는 것 같다”며 “담뱃세를 활용해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을 분리할 수 있는 시설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담배연기로 인한 사회갈등을 줄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당시 공약은 담뱃세 일부를 활용해 흡연부스 등 흡연구역을 확충하고, 국민건강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흡연구역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을 그 골자로 했다.
더 나아가 지난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담배 관련 약속이 담겨있다. 환경부와 식약처 담당 ‘안심 먹거리·건강한 생활환경’ 과제에서 주요내용 중 건강위해요인 통합관리를 위해 ‘담배 유해성분 평가·공개’를 하겠다고 밝혔다.
담배 연기 속에는 여러 가지 발암물질 및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으나, 한국의 경우 담배사업법 제25조의2(담배성분 등의 표시) 등에 따라 니코틴과 타르에 한에서만 분석하고 수치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 밖의 담배 유해성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담배 주요 유해성분들을 분석하고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자국민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국가 차원의 유해성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국도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비준하고는 있으나, 정작 담배 유해성분 분석 및 공개에 대한 규정은 이행하지 못하고 있어 국제적 기준에 맞는 관리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법 제정이 국회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7월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해 11월 보건복지위 소관위에 상정돼 한 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이후 2년 가까이 더 이상 법안 심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최혜영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법안과 관련해 소관 상임위에서 전해들은 내용이 없다”며 “간사 간 협의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10월 18일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는 강기윤 의원이 관련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강기윤 의원 측은 “윤석열 정부가 담배 유해성분 분석 및 공개를 국정과제에 담아 관리 체계 구축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이에 담배의 유해성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국민에게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국제적 담배 규제 기준을 준수하고 국민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강기윤 의원실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도 있으니 우리가 여당으로서 추진을 하려고 한다”며 “법안 발의해 법안 소위 날짜를 잡고 있는데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여야 간사 협의가 돼야 한다. 정해진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담배 관련 법안은 과거부터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제20대 국회에서는 담배사업법 관련 발의 24건 중 2건 만이 통과됐다. 이마저도 담배 규제와는 무관한 법안이었다. 이어 제21대 국회에서도 담배사업법 관련 발의 12건 중 통과된 법안이 없다. 소위에서 논의가 이뤄진 것도 6건에 불과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담배는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 여러 정부부처에 모두 연관이 돼있다. 기획재정부는 담배 수입·제조·판매업 허가 등 권한을 가지고 담배산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광고 등 판촉 규제, 금연정책 등으로 국민건강 증진을 목표로 한다. 그러다 보니 법안이 상정돼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통과되기가 어렵다. 설사 통과한다 해도 누더기 법령이 만들어진다”며 “담배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가 다시 내려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한 정부의 담배산업 컨트롤타워 정비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