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선 ‘기름칠’ 밖에선 ‘봄바람’
▲ 지난 15일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
지난해 8월 19일 삼성전자 주가는 68만 원, 시가총액은 100조 1635억 원이었다. 올 2월 15일 삼성전자가 기록한 사상최고가는 113만 5000원, 시가총액은 167조 1847억 원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1744.88, 시가총액 985조 5077억 원에서 2025.32, 시가총액 1156조 7374억 원으로 불어났다.
삼성전자 시총 증가분은 67조 212억 원, 코스피 시총 증가분은 171조 2297억 원이다. 삼성전자가 시장전체 시총 증가분의 39.14%를 차지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코스피 내 비중이 15~17%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의 기여도다.
삼성전자 가치급증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가장 먼저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애플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 점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제품의 콘셉트를 잡는 데는 잡스가 삼성전자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애플이 콘셉트를 지속적으로 선점하지 못한다면, 막강한 기획력과 제조능력을 가진 삼성전자가 결코 뒤지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본격적인 주가상승이 잡스가 사망한 지난해 10월 이후 본격화된 점과 이때를 즈음해 갤럭시 시리즈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두 번째 효과는 사업구조조정이다. 최근 결정된 삼성전자의 구조조정 방향은 적자투성이 LCD를 떼어내고, 유망한 LED를 장착하는 방법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 가전, 휴대폰까지 사업 분야가 다른 글로벌 IT업체와 비교해도 가장 많다. 그래서 지금까지 펼쳐온 전략이 다른 계열사를 통해 사업성을 시험한 후 괜찮다 싶으면 삼성전자가 가져왔다.
사실 이번에 떼어낼 LCD도 애초에 삼성SDI가 영위하던 사업이었다. 새로 장착하는 LED 역시 삼성전기의 사업 분야였고 지난해 가져온 카메라사업도 삼성테크윈의 사업부문이었다. 이 같은 사업구조조정은 최근 세계 3위 반도체업체인 일본 엘피다가 경영위기를 겪는 것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한다. 엘피다의 부진은 반도체 공급을 줄이는 요소가 되고, 이는 시장 1위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가격 반등의 수혜를 가장 크게 누리게 해준다.
최근 국내 상장기업들의 올 이익전망은 하향 조정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거의 유일하게 가장 큰 폭으로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한 위험경계 심리가 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가장 안전한 주식이라는 이점까지 얻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 주가의 핵심변수는 갤럭시 시리즈 신제품과 애플의 아이폰5, 아이패드3의 대결이다. 반도체의 경우 하반기부터 NAND메모리를 중심으로 업황이 개선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삼성가 3세들이 이끄는 종목들도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특히 호텔신라가 그렇다. 지난 2009~2010년 패션업체에서 IT소재업체로 변신하며 주식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제일모직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숙박업에서 글로벌 유통업체로 변신하고 있는 호텔신라의 활약이 눈부시다. 호텔신라는 삼성전자가 68만 원에서 113만 5000원으로 67% 오를 동안, 3만 800원에서 4만 3300원으로 40.6% 올랐다.
호텔신라는 최근 미국 LA국제공항 면세점 진출을 위한 입찰에 참가했다. 오는 6월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주가는 한 차례 더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은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출입국자 증가에 따라 면세점부문 및 호텔부문의 수혜가 지속될 전망이고, 지난해 면세점 투자에 대한 성과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며, 인천공항 임차료 고정 등 비용증가 제한에 따라 큰 폭의 수익성이 개선된다”고 예상했다. 호텔신라를 이끌고 있는 이부진 사장의 경우 삼성그룹 실질적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어 향후 그룹 내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확률은 낮지만 최근 불거진 이맹희-이건희 회장 간 소송전이 주가 상승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번 소송에서 가장 지분변동이 크게 일어나는 회사가 삼성생명인데,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민감하다. 법원이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손을 들어줄 경우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이 이맹희 전 회장 등 다른 형제가 이끄는 범 삼성가로 분산될 수 있다. CJ는 물론, 신세계도, 한솔도 자금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현재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 20.76%(4151만 9180주)를 가지고 있지만 이맹희 전 회장에게 824만 761주를 양도할 경우 지분율은 16.63%로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삼성에버랜드가 보험지주회사로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되는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삼성그룹으로서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의 지배관계를 해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다. 자칫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이재용 사장의 후계구도가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이맹희 전 회장이 삼성에버랜드에는 과거 실명으로 전환한 차명 주식규모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규모 주식반환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 규모가 확정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차명으로 돼 있다가 에버랜드 명의로 변경된 삼성생명 주식을 3447만 6000주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상속비율을 적용할 경우 이맹희 전 회장이 반환 받아야 할 주식수는 875만 5809주에 달한다. 이건희 회장 측 지분이 10% 가까이 줄어드는 셈이다. 만약 이맹희 전 회장 외에 다른 이건희 회장 형제들까지 분할소송에 참여한다면 이건희 회장 측 지분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현재 삼성생명 주가는 저금리에 따른 자산운용 부담과 불황에 보험계약 부진으로 공모가를 한참 밑돌고 있다. 하지만 지분경쟁이 일어날 경우 주가움직임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시가총액 9위인 삼성생명의 주가가 크게 오른다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결코 작지 않을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