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최측근 수사선상 오른 후 비명계 중심 원심력 커져…향후 이 대표 직접 조사 두고 계파 충돌 가능성 높아
참사 후 민주당은 신중한 스탠스를 취했다. 자칫 정치적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에게 언행 주의, SNS 자제 등의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경찰 112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태세를 바꿨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물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덕수 총리 경질 등을 요구하며 화력을 퍼부었다.
민주당은 경찰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위기 대처가 미흡했고, 이를 철저히 규명해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정조사도 요구하고 나섰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 7일 “총체적 무능과 부실한 대응이 부른 국가 대참사”라면서 “사법과 정치 도의적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기 위해 국정조사가 추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최근까지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이 대표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정무조정실장이 수사선상에 오르면서다. 이 대표에 대한 직접 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민주당 내엔 위기감이 퍼졌다.
이태원 참사로 ‘이재명 이슈’는 일단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났다. 그렇다고 검찰이 수사를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양상을 보면 검찰 수사는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팀은 김용 부원장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으로부터 받은 돈의 흐름뿐 아니라 대장동 사업 전반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타깃은 이재명 대표다.
친명계로 꼽히는 민주당 초선 의원은 “오히려 더 불안하다. 적극적으로 ‘야당 탄압’ 목소리를 내기가 좀 그렇게 됐다”면서 “‘이재명 사수’를 외쳤던 당력을 ‘이태원 참사 규명’에 쏟아 부어야 한다. 그동안 이재명 대표에 부정적이었던 계파가 이 대표를 향해 ‘개인적으로 수사를 받으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로선 야당 대표를 수사하기에 더 좋은 여건이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 내에선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한 이 대표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유력한 차기주자가 부재할 수도 있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문계 한 전략통 인사는 “어떤 조직이건 단 한 명에게 미래를 건다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금 우리 당에서 차기를 논할 때 이재명 말고 누가 나오느냐”면서 “당을 위해서도, 이 대표를 위해서도 플랜B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패한 이낙연 전 대표가 거론된다. 이 전 대표는 올해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 8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전 대표는 출국길에서 “강물은 직진하진 않지만 먼 방향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휘어지고 굽이쳐도 바다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고 끝내 바다에 이른다”고 했다. 사실상 다음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정가에선 검찰이 이 대표를 옥죌수록 ‘이낙연 역할론’은 더욱 부상할 것으로 본다. 이 전 대표 조기 귀국 가능성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이 전 대표 측은 이를 일축한다. 예정된 1년의 연수를 마친 뒤 내년 6월 귀국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이재명-이낙연’ 관계가 대체재에 가까운 만큼, 이 대표 입지가 좁아지면 당 내에서 이 전 대표 이름은 더욱 오르내릴 전망이다.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지금 들어온다고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아직은 때가 아닌 게 분명하다. 조기 귀국은 현실성이 없다. 이 전 대표 뜻도 확고한 것으로 들었다”면서도 “다만, 당이 절체절명 위기에 빠지면 모른 체하긴 힘들 것이다. 이 대표가 검찰 수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대선, 전당대회 등을 거치며 ‘친이재명계’가 신주류로 올라섰다. 문재인 정부 개국공신이었던 친문계는 구주류가 된 셈이다. 이 대표 체제 후 친명계는 더욱 세를 공고히 했고, 자연스레 친문계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민주당은 겉으론 단일대오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친문 진영 내에선 ‘이재명 비토’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친문계의 가장 큰 고민이자 약점은 ‘이재명 대항마’가 없다는 점이다. 한 친문계 의원은 “포스트 문재인을 찾아내느냐 여부가 친문계라는 정치세력 존폐를 좌우할 것”이라면서 “지난 대선 경선 때 각자도생했던 것도 확실한 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친문계 인사들이 김동연 경기지사와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한 친문계 의원실 관계자는 “김 지사는 대패했던 지방선거에서 요충지인 경기지사 당선으로 이미 차기주자 반열에 올랐다”고 주장하면서 “친문계 의원들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부총리 출신의 김 지사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이재명 대안론’의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연 지사 역시 운신의 폭을 넓히는 듯한 행보로 정가의 주목을 받았다. 10월 국정감사 때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 질문을 이어가자 “왜 자꾸 이재명 얘기를 하느냐. 저는 김동연”이라고 발끈한 게 대표적 장면이다. 10월 25일 개인 SNS엔 윤석열 대통령 시정연설을 비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를 바라보는 친명계 내부에선 불쾌감이 역력하다. 한 친명계 의원은 사석에서 “중앙 정치권을 기웃거리지 말고 도정에나 집중해라. 지금 임기 첫 해 아니냐”라고 쓴소리를 보냈다. 이는 그만큼 김 지사가 향후 이 대표 차기 레이스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친명계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온도차가 감지된다. 친명계에선 ‘야당탄압’이라며 이 대표 조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친문계를 중심으로 한 비명계에선 ‘이 대표 개인 비리니 조사는 받아야 한다’ ‘거대 야당이 민생을 도외시하고 방탄국회를 열어선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향후 이 대표 조사를 두고 계파 간 갈등이 벌어질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