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이상민 박희영 등 부적절 발언 논란 휩싸여, 국민의힘 언행 주의보 내리며 집안 단속 나서
11월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선 한덕수 국무총리 외신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한 총리는 한 방송 기자와 문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웃음을 지으며 농담조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한 총리 뒤로 걸린 현수막엔 이태원 참사를 영어로 ‘incident(사고)’라고 적었는데, 일부 외신 기자들 사이에선 ‘disaster’(재난)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태원 대참사 후 정부 여당 고위 인사의 발언이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월 30일 “그 전과 비교할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얘기가 있는데 통상과 달리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놓고 야당은 거세게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0월 31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낮은 자세로, 오로지 국민만을 위하고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자세로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면서 “나는 책임이 없다. 할 만큼 했다는 태도를 보여서 국민을 분노하게 할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장관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당에서조차 쓴소리가 쏟아졌다.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국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또 국민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모습이 아닌 형태의 언행은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도 11월 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상민 장관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 너무 법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보인다”고 질타했다.
이상민 장관은 11월 1일 국회에 나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부적절한 발언으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박 구청장은 10월 31일 “이번 핼러윈 축제는 명확한 주최 측이 없는 만큼 축제가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봐야 한다”며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책임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고, 결국 박 구청장은 11월 1일 사과의 내용이 담긴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후 술자리에 참석해 뭇매를 맞았다. 김 위원장은 10월 31일 경기도 수원의 한 음식점에서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전·현직 의장단과 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 소주와 맥주 등도 놓여 있었던 장면이 공개됐다.
이수진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책임을 통감해야 할 장관급 고위 공직자가 음주 행사를 한 것에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며 “국가애도기간 중 음주 행위를 자제하고 일탈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대통령의 강조사항을 몰랐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대통령실은 이번 참사로 상처 입은 유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안다면 김 위원장에 대해 책임있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 측은 “식사를 함께 했지만 술을 마시진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국민의힘이 집안 단속에 나섰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당 의원들과 관계자들에게 언행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모든 정치활동과 체육활동 참가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석기 사무총장은 시·도위원장, 당협위원장, 지자체장, 광역 및 기초의원들에게 ‘이태원 사고 추모와 국가애도기간 긴급 후속대책’을 전달했다. 여기엔 △각별한 언행 주의 △불필요한 공개활동이나 사적모임 자제 △음주행위, SNS 글 자제 등이 포함됐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통화해서 “참사에 무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정부 여당 고위 인사들이 농담을 하고, 면피성 발언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말 한 번 잘 못 했다가 날라간 사람이 어디 한 둘이냐. 좀 억울하고 그런 부분이 있더라도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국민들의 슬픈 심경을 헤아려야 한다”면서 “정치 일정은 모두 접고, 묵묵히 애도할 때”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