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사 먼저”, 변호사 단체 줄소송 예고…일각선 기준 없는 세금 지원 반대 목소리도
#정부, 일단 진상규명에 무게
11월 13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기자들과 만나 “출국할 때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해 드린 바 있다. 거기에 보면 국가의 무한 책임과 무한 책임 속에서 법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더욱 신속한 수사와 확실한 진상 확인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다”며 “유가족들에 대해 여러 책임을 지겠지만, 당연히 국가가 할 수 있는 법적 책임들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밝힌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11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간담회에서 “과학에 기반한 강제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이태원 참사의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과 원인 규명, 확실한 사법적 책임을 통해 유가족 분들에게 보상받을 권리를 확보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국가 배상을 위한 검토에 착수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11월 14일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배상과 관련된 정부 대응지침은 논의된 바가 없다”고 했다. 11월 15일 한덕수 국무총리도 기자간담회에서 “우선 배상이 이뤄지려면 현재 진행되는 수사가 조금 더 확실하게 결과를 내야 할 것”이라며 “그런(수사) 결과가 나오고 거기에 기초해 배상이 필요하다면 정부는 최대한 희생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할 것이다. (배상을 위한)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몇몇 변호사 단체들은 이태원 참사 유족의 국가 배상 소송을 돕기 위해 법률 지원에 나섰다. 11월 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10·29 이태원 참사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며 소송을 예고했다. 11월 14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도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함께 100명 안팎의 규모로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부실 대응, 직무유기 관련 국가 배상 책임 상담, 소송제기 등 법률 지원에 집중할 예정이다.
변협 측은 “이태원 참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제2조 제1호 등이 규정하는 ‘국가 또는 지자체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인명 또는 재산의 피해’에 해당한다”며 “국가와 지자체는 지휘 책임을 넘어 법률적으로도 책임을 져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변호사 단체인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도 11월 8일부터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인단을 모집 중이다. 전수미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대표 변호사는 10월 17일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으로 임명됐다. 다른 담당인 양태정 변호사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부단장으로 일했었다. 이에 대해 11월 11일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자당 출신 변호사들을 내세워 유족에게 접근해 소송하자고 부추기고 있다”고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세금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고개를 들었다. 10월 30일 ‘이태원 사고와 관련 상황의 세금 사용에 관한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등록됐다. 청원인은 “대규모 인원의 사상자 발생이 이슈화될 때마다 전·현 정부의 독단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으로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엄격하고 신중하게 세금이 사용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해당 청원은 10월 31일 동의를 받기 시작해 11월 6일 오전 11시 13분 5만 명으로부터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난 10월 31일 정부는 이태원 참사 사망자에게 위로금 2000만 원, 장례비 최대 15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관련 지원금은 재난안전법 제60조(특별재난지역의 선포)와 제66조(재난지역에 대한 국고보조 등의 지원)에 근거해 지급됐다.
#국가 배상 가늠할 핵심 법리
재난안전관리 책임자들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10월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며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장관은 5월 취임 이후 ‘장관에게 경찰 지휘·감독 권한이 있다’며 경찰국 신설을 추진했지만, 이태원 참사 이후엔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고 입장까지 바꿨다.
10월 31일 오승진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유례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에 대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입장을 냈다. 10월 31일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며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 대응에 있어서 현행법 위반 소지가 다수 발견됐다며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 배상 판단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법리는 △재난안전법 제20조와 제25조 2 위반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위반 △국가배상법 제2조 등이다.
오민애 민변 변호사는 “재난안전법 제25조에는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주최자가 있는 경우에만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안전 관련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제한한 규정으로 볼 수는 없다”며 “특히 용산구는 이미 3년 전부터 핼러윈 시기에 이태원 거리에 밀집되는 인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10월 26일 ‘핼러윈 데이 대비 유관기관 간담회’에서 지역상인들의 대책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뉴얼이 없었다는 경찰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2014년 경찰은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마련했었다. 특히 용산경찰서는 10월 초부터 수차례에 걸쳐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이를 전달받은 서울경찰청장이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이 보고서들이 10월 29일 참사 발생 직후 삭제된 것을 두고 감찰을 진행 중이다.
이창민 민변 변호사는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는 조직되지 않은 다수 군중이 모이는 행사 즉, 주최자가 없는 행사도 위험 발생을 방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구체적인 예방책까지 나와 있음에도 경찰은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며 “참사 발생하기 약 4시간 전부터 ‘압사’와 관련된 112신고가 10차례 이상 접수됐지만,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참사 피해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이러한 직무집행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나 부적절·불충분한 이행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위법행위에 해당해 국가배상 책임의 근거가 되는 과실로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상민 지키기'로 뒤숭숭한 여권
행안부 장관 책임론도 거세다. 11월 14일 소방공무원 노동조합은 재난안전관리 총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을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여당에서도 이 장관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11월 11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행안부는)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로 모든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장관은 정치적으로 또 결과적으로 책임지는 자리다. 그래서 저라면 자진 사퇴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이태원 참사의 경우 지자체와 경찰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과실책임과 함께 이러한 정책 책임은 행안부 장관에게 집중된다. 특히 이상민 장관이 경찰국의 형태로 스스로 자신의 직무영역으로 끌어들인 경찰행정에 대한 책임이 수렴된다”며 “정책결정권을 갖는 고위공직자의 책임귀속은 행위 책임이 아니라 그러한 정책선택이나 정책판단의 결과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신뢰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을 유임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1월 8일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후진적으로 본다”며 이 장관 등에 대한 경질 주장에 대해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도 일부 친윤계 의원한테 전화해 “당은 도대체 뭐하는 것인가. 장관 한 명 방어도 못하나”라며 야당 공세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 여당을 질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재난안전법상 재난 및 사고로 공식 인정해놓고, 재난안전관리 총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을 보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태원 참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공식 인정했고, 국가배상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그럼 주무부처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친윤계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장관 하나 방어도 못 하느냐’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며 “대통령의 갈지자 행보에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이 장관 지키려고 한덕수 총리를 사퇴시킬 것이라는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