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사령관, ‘닥공’을 완성하라
▲ 스스로 “난 예선용”이라는 뼈 있는 농담을 했던 김두현이 최강희호에 탑승했다. 수비 실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빼어난 공격력을 지닌 그가 새로운 한국 축구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역대 테크니션은 누구
한국 축구의 역대 플레이메이커 계보를 거론할 때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윤정환이 단연 꼽힌다. 현역 시절, ‘미드필드 플레이의 교본’이란 수식이 붙을 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그는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다. 일본 J리그 사간도스에서 기술 자문(테크니컬 어드바이저)에서 코치와 수석코치를 거쳐 지휘봉까지 잡았다. 윤정환은 ‘만년 약체’로 손꼽히던 사간도스를 작년 시즌 J2리그(2부 리그) 2위로 이끌며 올 시즌부터 J리그에 참가하게 됐다.
침착하고 날카로운 칼날 패스는 그만의 장기였다. 여전히 감각은 녹슬지 않은 듯하다. 사간도스에서 사제 관계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올림픽 홍명보호의 에이스 김민우조차 “현재 팀 내에서 (윤정환) 감독님을 따라잡을 만한 현역 선수들이 전무하다. 여전히 가끔 시범 보이는 볼 터치 능력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밝힐 정도였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식점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으로 전업한 이관우(전 수원 삼성)도 훌륭한 플레이메이커였다. 자그마한 체구로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는 모습은 윤정환 못지않았다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한때 태극전사들을 지휘하기도 했던 포르투갈 출신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은 “화려함도 갖췄지만 근성도 좋다”며 이관우를 크게 칭찬한 바 있다.
수원에서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고종수 또한 대표적인 플레이메이커였다. 특히 프리킥 능력은 어지간한 제자들보다 낫다는 평가다. 간혹 수원 후배들과 ‘내기’ 프리킥 연습을 하면 항상 최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빼어난 감각을 자랑한단다.
2000년대 초중반에도 플레이메이커는 여전히 존재했다. 이천수(무적)도 분명 후보군이었고, 고종수와 윤정환 등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02한일월드컵을 이끌었던 히딩크 전 감독은 결과적으로 플레이메이커에 연연하지 않았다. 공격에 훨씬 중점을 두는 플레이메이커를 활용하지 않은 채 출전 선수들 모두가 유기적으로 공격과 수비를 오가는 사실상 ‘전원 플레이메이커화’를 꾀했던 것이다.
히딩크 전 감독은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굳이 플레이메이커를 둘 필요가 없다. 이제 한 선수가 팀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공표했다.
세계 축구의 변화도 한몫했다. 플레이메이커들은 상대 수비수들의 ‘공공의 적’으로 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피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기술이 좋더라도 쉴 틈 없이 여러 수비수가 몰려들면 지치기 마련. 결국 특정 선수가 차단될 경우에는 팀 공격 자체가 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새로운 플레이메이커의 탄생이 가로막혔고, 자연스레 빛을 잃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시프트’라는 표현이 상당히 익숙하다. 플레이메이커 시대가 끝난 뒤 본격화됐다. 사전적 의미로 위치 변경을 뜻하는 이 용어가 축구에서 정확히 언제, 어디서부터 사용된 것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대충 뜻을 풀어보면 이렇다. 간단히 말해 다양한 포지션과 위치 이동이다.
히딩크 전 감독 시절, 여러 가지 포지션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포지션이 각광 받고, 이후 이러한 특색을 지닌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시프트’라는 용어가 대두됐다. 선수의 위치 변화에 따라 팀 전술이 바뀌는 것이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청용(볼턴), 박주영(아스널) 등이 시프트의 핵심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해당 멤버의 위치 전환과 더불어 교체카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흐름이 완전히 바뀔 수 있어 시프트 활용도는 허정무호, 조광래호의 등장과 함께 주목을 받았다.
플레이메이커와 중앙 미드필더는 중원 한복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얼핏 보면 잘 구분이 안 된다. 하지만 차이는 크다. 플레이메이커는 공격에 보다 무게를 둔다면 중앙 미드필더는 공격과 수비를 50 대 50으로 나눠 양쪽에 고루 비중을 둔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축구에서는 후자가 중용된다.
그런 점에서 김두현이 다시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건 다소 의외였고, 핫이슈였다. 우즈베키스탄 평가전(2월 25일, 전주월드컵경기장)과 쿠웨이트와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을 앞둔 대표팀 최강희 감독은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김두현을 선택했다. 축구계는 그간 김두현에 대해 “공격력은 좋지만 수비 가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해왔다. 본인도 “난 예선용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는 뼈 있는 말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 감독이 시대를 거스른 판단을 내린 게 아니다. 김두현 나름의 활용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엔트리에 승선시켰다. 최 감독은 중거리 슛 능력을 갖췄고, 확실한 공격 메이킹을 해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수원 코치 시절 함께한 김두현을 뽑았다. 어설프게 적당히 모든 위치를 책임지는 것보다 확실히 한 자리를 도맡을 요원의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 무조건 승부를 내야 하는 쿠웨이트전은 분명 변수였다.
더불어 기존 멤버들에게 ‘자극’이란 분명한 메시지도 전달됐다. 대표팀에서 중용되고 있는 기성용(셀틱), 구자철(아우쿠스부르크) 등 미드필드 영건들에게 현재에 안주하지 말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물론 플레이메이커의 전형이라 볼 수 있는 김두현이 등장했다고 해서 최근까지 이어져 온 한국 축구의 기조가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줬음에는 틀림없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