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에 죽기 살기더니…’
▲ 지난해 11월 유진그룹과 경영권을 두고 분쟁을 벌일 당시 하이마트 본사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검찰이 잡은 혐의는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이 회사 돈과 개인재산 등 거액을 국외로 빼돌렸고 이를 자녀들에게 증여하면서 세금을 탈루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압수수색에 이어 선 회장 일가의 계좌추적에도 돌입했다. 선 회장은 국외 재산도피와 탈루 외에도 2005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에 지분을 매각할 때 ‘이면약정’, 2007년 유진그룹에 하이마트 매각 때 영향력 발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5일 하이마트 본사와 선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26일과 27일에도 잇따라 선 회장 자녀들이 주요 역할을 하고 있는 HM투어, 커뮤니케이션윌, IAB홀딩스 등 선 회장 일가의 회사를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공개수사로 전환한 뒤 수사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 선종구 회장. |
선 회장의 비리에 대한 자료는 검찰만 받은 게 아니다. 국세청도 함께 받았고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조사 준비에 착수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 회장에 대한 금융정보분석원 자료를 본 한 인사는 “정확한 날짜, 액수와 함께 자금이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분명히 나와 있다”며 “단순히 혐의만으로 공개수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당초 검찰은 단독 수사를 진행할 요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를 위해 국세청과 공조할 것을 밝혔다. 국세청의 도움 없이는 수사 진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국세청은 그동안 선 회장에 대한 사안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공조 수사에 무리는 없을 것으로 전해진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지난해 말 선 회장이 왜 그토록 하이마트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는지 이해가 간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유진이 경영하게 되면 선 회장 자신의 비리가 전부 탄로 날까 우려해 경영권 방어에 필사적으로 나선 것 아니겠느냐”며 “자신을 믿고 결사항전을 불사한 하이마트 임직원들을 선 회장은 오히려 이용한 꼴이다. 임직원들의 배신감과 상실감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경영권을 놓고 선 회장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지만 유진그룹도 불편하다. 지난 2007년 하이마트를 인수할 당시 GS보다 1500억 원이나 덜 썼으면서도 하이마트 인수에 성공한 데는 선 회장과 뭔가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유진그룹으로 확대되지 말란 법이 없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아는 바 없다”며 “선 회장 관련 일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검찰 조사를 마친 후 지난 26일 임직원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남긴 후 잠적했다는 선 회장은 서울 모 호텔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선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하이마트 매각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매각 의지에는 변함없다”며 “다만 일정은 주간사와 협의해 조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선 회장과 관련된 수사는 대검 중수부와 국세청이 함께 뛰고 있다. 국내 최고 사정기관이 공조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비리 수사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대우전자 판매총괄본부장으로서 국내에 처음으로 모든 전자제품을 한 곳에서 판매하는 ‘양판점’ 개념을 도입, 가전 유통시장의 판도를 뒤바꾼 선종구 회장의 미래가 암울해 보인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