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코리안’ 뒤엔 ‘슈퍼맘’ 있었다
▲ 왼쪽부터 형 허민수와 부친 허옥식 씨 그리고 존 허. |
지난 2월 초, 미국 애리조나 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에서 만난 존 허의 아버지 허옥식 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개인적인 부탁을 건넸다. 아들 존에게 우승보다 더 급한 건 여자친구라면서 한국에서 참한 아가씨 한 명만 소개시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가볍게 웃어 넘겼지만 허 씨는 여러 차례 ‘참한 아가씨’를 거론하면서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제 PGA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신인이고, 나이도 스물두 살밖에 안 된 아들한테 아버지 허 씨는 왜 여자친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을까? 허 씨는 아들의 투어 생활을 단순히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더 멀리, 더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에 고단한 PGA 투어 생활을 잘 버틸 수 있는 요소로 여자친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허 씨의 둘째 아들인 존은 뉴욕 태생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뒤 한국에서 살다가 섬유관계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미국에서 아버지는 노동일을, 어머니는 식당일을 돌보며 존 허의 골프 뒷바라지를 도왔다. 라크센타 밸리의 고교 시절 존 허는 돈이 없어 골프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공짜로 연습할 기회를 만드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톡톡히 경험해야만 했다.
존 허는 5000명이 등록된 미국주니어협회(AJGA) 선수들 중 48위를 기록하면서 여러 대학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학업과 골프를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미국 대학 시스템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그는 한국 KPGA의 프로 테스트에 도전한다. 프로 입문이 허락됐지만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존 허는 여전히 힘든 생활을 지속했다. 아버지 허 씨는 “한국에 연고가 없다 보니 존의 한국 생활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면서 “차가 없어 골프백을 메고 전철을 타고 다니며 연습을 했고, 대회에 나가선 호텔이 아닌 여관에서 기거하며 투어생활을 했다”고 설명했다. 존 허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은 견딜 만했는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게 한국 프로 선배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즉 미국에서 골프를 하던 미국 국적의 한국 선수가 PGA가 아닌 한국에서 투어를 하는 데 대한 오해와 질시의 시선이었던 것.
올 시즌 PGA 투어에 첫 발을 내딛은 존 허. 그는 시즌 두 번째 참가 대회였던 파머스 인슈어런스에서 공동 6위를 차지했고, 피닉스오픈에선 공동 12위, 그리고 다섯 번째 대회였던 멕시코 PGA 투어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PGA 우승 이후 그의 삶은 많은 변화를 이뤘다. 어느새 상금액도 100만 달러가 넘어섰고 메인스폰서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선수가 지금은 어떤 스폰서를 선택해야 할지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할 판이다. 그러나 존 허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앞으로 내가 어떤 골프를 치느냐에 따라 더 올라갈 수도, 아니면 다시 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버지 허 씨는 여전히 “우승보다 더 중요한 건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이라면서 기자에게 ‘참한 아가씨’를 소개시켜달라고 재촉한다.
▲ 벤 헨더슨과 시애틀에서 글로서리를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김성화 씨. |
김 씨는 한국에서 버스 안내양으로 근무할 당시 주한미군에 근무 중인 남편을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김 씨는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서 모든 생활이 엉클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이혼 뒤 혼자서 두 아들을 키운 그는 아이들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고 한국 말과 예절을 가르치며 한국 혼을 심어주는 데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시애틀 지역신문의 김성배 기자는 김 씨를 취재한 뒷얘기를 이렇게 털어 놓는다.
“벤 헨더슨 어머니가 운영하는 글로서리는 한인들이 모여사는 타코마에서도 우범지역을 꼽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한두 차례 도둑과 강도를 당했을 정도로 굉장히 힘든 자리에서 글로서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도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 돈을 벌었다.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고 하더라. 김 씨의 집에도 가봤는데, 생활력도 강하고 성품과 인성이 훌륭해서 벤 헨더슨이 어떻게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김성배 기자에 의하면 김 씨는 이웃해 살고 있던 흑인 남자와 이미 재혼을 해서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즉 벤 헨더슨의 새아버지가 존재하고 있고, 그 아버지는 유조선 기관장으로 일하는 성실한 남자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김 기자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훈훈한 목격담을 들려준다.
“지난해 벤이 챔피언 도전권을 획득하고 시애틀로 휴가를 받아 놀러왔었다. 그런데 시애틀에 있는 동안 아침 일찍 글로서리에 나와 문을 열고 계산대를 담당하며 일을 했다. 다른 날도 아닌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고 와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이 몰려왔는지 모른다. 어머니 김 씨는 벤이 휴가를 받아 시애틀로 오는 날이 휴가 시작이다. 아들이 어머니를 가게에 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벤 헨더슨은 시애틀 지역신문으로부터 ‘자랑스런 한국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한다. 오는 3월에는 시애틀에서 팬 사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남편 없이 혼자 두 아들을 키우며 온갖 평지풍파를 당당히 감내했던 어머니 김 씨로선 아들의 성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행복감을 느낄 것만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