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방부터 ‘호남편’ 승부수 띄웠어야…
▲ 지난달 이명박 정부 규탄 및 국민경선 시행방안 설명회에서 한명숙 대표와 이인영 최고위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민주통합당 내에선 총선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우상호 동정론’이 일고 있다. 지난달 당 총선기획단에서 전략홍보본부장을 맡은 뒤로 연이어 터지는 현안들에 대처하느라 지역구 챙기기를 못해 온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실제로 우 본부장의 최근 모습은 악전고투 그 자체다. 총선을 30여 일 앞둔 현재까지도 그는 잠자는 시간 말고는 지역구가 아닌 서울 영등포동 당사나 국회의사당에 머무르고 있다. 한명숙 대표 체제 초기의 인사 논란과 정책 말 바꾸기 논란, 뒤이은 부실 공천 논란, 호남 지역 국민경선 선거인단 동원 파문 등 바람 잘 날 없었던 민주당에서 어김없이 우 본부장이 ‘소방수’로 나섰다. 하루 수백 통씩 쏟아지는 기자들의 전화에 일일이 대응하면서 그가 입버릇처럼 내놓는 말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다”는 하소연이다.
당 지도부로선 고맙다고 업어주기라도 해야겠지만 이 같은 우 본부장의 모습은 체계도, 전략도 없는 민주당 총선기획단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명숙 대표의 초기 인사 결과는 이미 많은 논란과 비판을 자초했지만 특히 총선기획단 인선은 두고두고 화근이 되고 있다. 우선 이미경 의원을 총선기획단장에 앉힌 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원을 총선기획단장에 기용한 것은 ‘이대(이화여대) 라인 인사’ 논란의 출발점이 됐다. 이 의원은 4선의 중진이지만 인물(공천), 구도(야권연대), 이슈(정책) 등 선거의 3대 요소를 두루 관할하면서 총선 전략을 총지휘해야 하는 자리에 적합한지는 인선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게다가 이 의원이 이런 중책을 맡은 뒤로도 여성 후보자 공천 확대나 지역구 챙기기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은 ‘비판’으로 바뀌어갔다. 당직자들조차 “수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이런 ‘허수아비 총선기획단장’은 처음 봤다”는 부정적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신경민 대변인과 김기식 전략기획위원장, 이재경 홍보위원장 등은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위원장 말고는 정당 생활 경력이 전무한 초보들인지라 총선과 같은 거대한 이벤트에서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 선거 때 당 대변인은 당내 현안과 총선 전략을 꿰뚫고 있으면서 그때그때 논평이나 백브리핑 등으로 여당에 맞서 ‘공중전’을 펼쳐야 하는데 신 대변인의 모습은 평상시의 여당 대변인 모습에 가깝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백브리핑을 시작한 것도 민주당 공천 결과에 대해 연일 비판 기사가 쏟아지자 “새누리당에 비해 뒤떨어질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느냐”는 당 지도부의 채근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 임종석 |
함량 미달의 총선기획단이 진두지휘를 하다 보니 당내에선 총선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선 박지원, 이인영 최고위원이 언론사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박 최고위원은 “민주당 공천에 대해 국민과 언론은 감동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알맹이가 없는데도 쇄신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기왕에 총선기획단이 감동을 주는 총선 전략을 짜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민주당의 공천 실상을 국민 앞에 보고하고 잘못된 것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특히 총선기획단의 적극적인 활동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도 “야권연대가 성사되는 대로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강력한 집행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지적은 당내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당 지도부에 속하는 한 인사는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왜 호남 공천을 먼저 하지 않고 뒤로 미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역의원 교체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호남 공천을 먼저 했다면 공천 초반부터 긴장감이 생기고 ‘현역 탈락도, 감동도 없는 공천’이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 인사는 “호남 공천을 전광석화처럼 했다면 선거인단 동원 과정에서 모집책이 자살하는 사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당직자도 “임종석 사무총장을 비롯해 논란이 있는 전ㆍ현직 의원들 대부분이 단수 후보로 공천을 받았는데, 같은 내용의 공천이라 해도 전략적으로 발표를 미뤘어야 했다”며 전략 부재를 꼬집었다. 이 당직자는 “새누리당과의 쇄신 경쟁에서 기선 제압이 중요한데 초장부터 현역들이 줄줄이 경선도 없이 공천을 받는 바람에 온갖 뭇매를 맞게 됐다”고 말했다.
임종석 총장의 사퇴 표명으로 선대위 체제로의 조기 전환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이지만, 그런다고 민주당이 돌파구를 찾을 거란 보장은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총선 전략을 짜내고 지휘할 만한 책사, 전략가가 없다는 얘기다. 오랫동안 당료로 일했던 한 인사는 “과거 임채정-이해찬-김한길 전 의원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책사 라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가 끊겨 버렸다”며 “486세대에서 김민석 전 의원, 이광재 전 강원지사 정도가 뒤를 이을 재목으로 분류됐었는데 두 사람 다 개인 비리로 퇴출된 상태”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본격적인 총선전에서도 민주당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