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커머스업체와 달리 상품 직매입 과정서 제조업체와 마진율 등 갈등 빚어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11월 말 CJ제일제당과 내년도 상품 마진율 협상을 진행하면서 의견 차이로 갈등이 발생하자 발주 중단 조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쿠팡이 요구한 마진율을 당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일방적으로 발주 중단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양사의 올해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계약 종료 기한을 남겨두고 쿠팡이 일방적으로 발주를 중단한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오히려 CJ제일제당 측이 기존에 제품 공급 과정에서 계약상 약속한 공급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쿠팡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이 연초부터 수차례 가격 인상을 요구한 한편, 발주 약속 물량을 터무니없이 지키지 않았다. (CJ제일제당의) 납품율이 50~60%밖에 안 된다”며 “이 때문에 계약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 측이 얘기한 CJ제일제당의 가격 인상은 지난 2월 비비고 만두 가격을 4년 만에 인상한 것과 지난 4월 햇반 가격을 평균 7.6% 인상한 것을 얘기한다. 햇반(210G) 개별 상품 편의점 판매가격은 1950원에서 2100원으로 150원 올랐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쿠팡에서만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라 온·오프라인에서 일괄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고 전했다.
계약한 공급물량을 CJ제일제당이 지키지 않았다 쿠팡의 주장에 대해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풀케파(최대 생산능력)로 공장을 돌리고 있지만 공급이 계속 모자란 상황이다. 다른 유통채널에서 들으면 섭섭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쿠팡에는 물량을 더 배정하는 등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유통채널들이 발주량을 늘리면서 올해 공급량이 전체적으로 달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발주량 대비 공급량이 부족한 것이지 소비자들이 물건을 살 수 없게 품절이 되거나 품귀현상을 빚은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쿠팡은 앞서 타 공급업체와도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2019년 LG생활건강은 쿠팡이 공정거래법 및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쿠팡을 제소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경쟁 이커머스 제품에 판매가 인상을 요구하는 등 쿠팡이 불공정 거래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쿠팡이 LG생활건강 제품을 로켓배송 목록에서 제외해 논란이 됐다. 공정위는 2년간의 조사 끝에 지난해 8월 쿠팡이 납품업체에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사실을 받아들여 과징금 33억 원을 부과했다. 쿠팡은 현재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쿠팡이 공급업체와 갈등을 빚는 원인으로 타 이커머스 업체들과 달리 쿠팡이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구조가 꼽힌다. 쿠팡의 직매입 비중은 96.8%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즉 쿠팡에서 판매하는 거의 대부분 제품은 쿠팡이 업체를 통해 직접 매입해 판매하는 셈이다. 쿠팡은 거래하는 업체들과 매년 상품 마진율 협상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공급 업체와 쿠팡이 이견을 보이며 갈등을 빚는다는 얘기다.
식품포장용품기업 크린랲은 2019년 7월 쿠팡이 자사의 대리점과 수년간 지속한 공급 거래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 이듬해 9월에는 쿠팡의 거래 중단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2억 원의 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크린랲은 “자사는 두 차례 회의를 거쳐 직거래로 전환이 어렵다는 설명을 했지만, 쿠팡은 이메일을 통해 직거래를 강권하고 이에 응하지 않자 더는 발주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쿠팡의 직거래 요구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후 상품의 판매가격을 직접 통제하려는 것”이라며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시장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저해하려는 의도를 가진 위법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쿠팡은 “해당 대리점과 협의를 거쳐 결정했으며 수년간 크린랲에 직거래 의사를 타진했으나 합리적 이유 없이 거절당했다”고 반박했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쿠팡의 손을 들어줬지만, 크린랲과 분쟁 또한 직매입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 사례로 기록된다.
이커머스 업계 한 관계자는 “오픈마켓은 판매자가 직접 판매할 상품이나 가격을 정하고 관리·판매하는 구조기 때문에 유통채널과 공급업체가 갈등을 빚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른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쿠팡과 같은 대형 유통업체는 직매입 방식으로 입점 업체와 거래를 하는데 이 때문에 유통채널이 제조사에 가지는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협상도 유통채널에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고 전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힘의 논리에 의해 갑과 을이 알아서 설정되는 게 유통업계와 제조업계인데 이번 논란은 강 대 강이 붙었기 때문에 밖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라며 “다만 쿠팡이란 빅바이어가 빠졌을 때 제조업체가 결국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쿠팡 입장에선 타 업체 제품을 입점시키면 되지만 제조업체는 공장 가동률이나 물량 등을 고려했을 때 다른 입점처를 찾아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CJ제일제당과 쿠팡 모두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인다. 앞의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앞으로 쿠팡이랑 아예 거래를 끊는다는 것은 아니다. 부부싸움 한 것으로 봐달라”고 밝혔다. 쿠팡 관계자 역시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 대기업들과 협상을 진행해 오고 있다”며 “소통 이견은 협상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이며 제조사·유통사 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도 양측 모두 득 될게 없는 싸움이라 보고 이달 안에 가격·마진율 협상을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발주가 재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