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내 90%, 전세계 40% 점유율 확보 목표…허은 대표 “특례승인 이후 사업 보증·펀드로 지원해야”
#시끄러운 발전기 깔끔하게 대체 목표
허은 이온어스 대표의 첫 직장은 건설사였다. 서울 여러 지하철 구간 건설이 그의 손을 거쳤다. 1990년대 중반, 여러 종류의 센서를 매설하거나 설치하여 시간별 변위 데이터를 추출해 다루는 토목 계측 분야를 시작으로, 이후 수도권대기환경청이 생기면서 디젤 배출가스 저감 장치사업에 참여하며 기술과 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2011년부터는 약 10여년간 ESS 제품을 개발하고 동남아에 풍력발전소와 태양광발전소 등을 설치하고 개발하는 CDM사업을 해왔다. 그러던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건 2017년이었다.
2017년 말 BMW코리아가 협업 요청을 보냈다. BMW의 전기차인 i3 10대의 폐배터리를 재이용한 ESS로 전기차 충전소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허은 대표는 BMW코리아와 의기투합해 2019년 8월부터 제주에서 ‘e-고팡’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온어스의 이동형 ESS인 ‘인디고’의 프로토타입이었다. 허 대표는 “고정형 ESS는 다루기 까다롭다. 온도와 습도 등 정해진 운용 환경이 바뀌면 제조사가 보증도 안 해줄 정도다. 각종 악천후와 충격을 감안해 제조된 전기차 배터리는 이동형 ESS에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소개했다.
이동형 ESS는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한국전력이 공급하는 전기로 충전한 후 적재적소로 달려가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디젤 발전기를 대체할 수 있다. 디젤 발전기와 달리 소음이 나지 않고 미세먼지는 100%, 이산화탄소는 80%까지 저감된다. 예컨대 10MWh의 전력을 공급할 때 디젤 발전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규모는 17톤(t)에 이르지만, 이동형 ESS는 4.6톤밖에 배출하지 않는다.
연료비 절감도 주목할 만하다. 10MWh의 전력을 공급할 때 디젤 발전기에 필요한 기름은 6400리터(l)로 약 1200만 원 수준의 연료비가 소모된다. 같은 규모의 전력을 제공하기 위해 이동형 ESS 충전에 드는 비용은 60만 원 수준이다. 허은 대표는 “저희의 가장 큰 목표는 발전기를 대체하는 것이다. 디젤 발전기 시장 규모가 상당한 데다 일반 건물이나 전기차 충전소에서도 이동형 ESS를 충전해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용화만 된다면 시장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화 가능성을 엿본 허은 대표는 2020년 2월 이온어스 법인을 설립했다. 허 대표는 “지금은 안전을 위해 새 배터리를 이용 중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전기차의 사용 후 배터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그때를 대비해 글로벌 스타트업 중 최초로 ‘비파괴 검사’ CT 장비를 마련해 배터리의 물리적 불량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장일치로 샌드박스 통과했지만…
기술을 발명했지만 포지티브 규제(법률이나 정책에 명시된 것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금지하는 방식)가 걸림돌이었다. ‘e-고팡’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시기부터 맞는 기준이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허은 대표는 “한전이 관리하는 전선으로 유선 공급받은 대용량 전기를 저장한 후 이동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전기사업법이나 전기안전관리법에 아무런 기준이 없어 심각한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 이동형 ESS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기준이 고정형 ESS에 맞춰진 점도 문제였다. ‘e-고팡’은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기준을 준용해 처리했지만 일회성일 뿐, 제도권에 편입돼 제품을 산업화해 양산하려면 제대로 된 기준이 필요했다.
때마침 국내에서도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생겼다. 돌파구라고 판단했다. 상당 기간 전담기관과 머리를 맞댄 뒤 규제 샌드박스를 접수했다. 접수 후 3개월 만인 2021년 3월, 14명의 전문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이동형 ESS의 실증특례를 승인했다. 2년간 제한된 수량의 이동형 ESS를 지정권역에서 서비스하는 것이 실증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이온어스는 2021년 7월 사업개시신청을 하면서 실증에 돌입했다.
혁신성을 인정받은 셈이었으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매출을 제대로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은 대표는 “저희는 제조업이기 때문에 매출을 내려면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현재 각종 축제에 인디고를 대여해 드리는 서비스를 하고 있긴 하지만 행사 개수 자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엔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판매 제한으로 인해 투자유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매출이 안 나는 데다 임시허가와 달리 시험·검증의 성격을 지닌 실증특례는 언제 불법으로 둔갑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혁신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법령이 개정되면서 시장이 열리기 전에 양산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투자를 받아야 한다. 허은 대표는 “산업부가 투자자들에게 사업 보증을 대신 해주거나, 샌드박스 특례승인 업체를 대상으로 한 펀드를 따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양산 이슈를 잘 풀어낼 경우 해외 시장 수출은 까다롭지 않을 전망이다. 허은 대표는 “미국은 수해나 냉해, 산불 등 재난이 빈번하기 때문에 발전기 수요가 엄청나다.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잘 뜯어보면 환경법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저희한테 유리하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이온어스는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지사를 설립하고 밴쿠버에 별도 연구소를 추진 중이다. 내년엔 태국 진출이 예정돼 있다.
허은 대표는 “디젤 발전기만 놓고 봐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연 4조 원, 전세계는 연 60조 원 규모의 시장이 열려 있다. 앞으로 열어 갈 이동형 ESS 시장의 규모는 무궁무진하다”며 “저희는 2025년에 국내 점유율 90%, 전세계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