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9일 대구 엑스코 ‘시그래프 아시아 2022’…세계 50개국 전문가 모여
- 르노 '루크 줄리아' 박사 "인공지능 같은 것은 없다"
-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 "실재하는 것 같은 '리얼리티' 관건은 '몰입' 극대화
-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급격한 기술 진보로 예술의 의미 자체가 변하고 있어"
- 이종화 대구시 경제부시장 "컴퓨터 그래픽스·실감기술 분야 결집, 대구시 이미지 한층 강화될 것"
[일요신문] 대구에서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예술이 펼쳐졌다.
'시그래프 아시아 2022(Siggraph Asia, 2022)'가 지난 6~9일 대구 엑스코에서 성황리 개최됐다.
'시그래프(Siggraph)란 'Special Interest Group on Computer Graphics'의 약자로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에 최대 학회다.
이날 세계 50개국 예술·과학·디자인·미디어·공학·컴퓨터그래픽스(CG)·실시간 감상기술(Live Interaction) 분야의 학자, 연구자, 기업인, 개발자, 작가, 학생 등 5000여명이 모여 최신 그래픽스(Graphics)와 인터렉티브 기술(interactive technology)을 선보였다.
- 르노 과학기술 총책임자 Luc Julia 박사 "인공지능 같은 것은 없다"
가장 주목할 것은 테크기업 전문가들의 기조 강연이었다. 르노 과학기술 총책임자 루크줄리아(Luc Julia) 박사, 디스트릭트(d’strict) 이성호 대표, 네이버제트 김대욱 공동 대표는 각각 인공지능·몰입형 컨텐츠·메타버스 등에 대한 현장감있는 설명과 앞으로의 전망을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루크줄리아 박사에게 '급격히 고도화되는 과학기술에 비해 따라가는 못하는 인간의 정신적 한계성 그리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한 기술적인 파훼법'을 질문했다.
루크줄리아 박사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은 인류의 발전에 초점을 맞춰 일을 한다. 하지만 환경과 지구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늘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결국 '교육'이 핵심이며, 세상에 대한 거시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로 대체·해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면 실제적 유용성에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이럴 경우 교육을 받은 사회가 개입해서 규제를 해야 한다. 다만 규제는 교육 받은 결정에서 나온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지구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술인 경우를 대비해 고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의 등으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앞날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루크줄리아(Luc Julia)는 '인공지능 같은 것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I)' 주제 강연을 통해 AI에 대한 혁신과 미래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현 삼성 전자의 CTO 겸 혁신 수석 부사장을 역임, 애플에서 Siri를 지휘했던 Hewlett-Packard의 최고 기술자다.
-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 같은 '리얼리티'"
디스트릭트(d’strict) 이성호 대표(Sean Lee CEO)는 '몰입형 콘텐츠 기술이 가져온 시각 영역 시장의 변화'를 기조 강연했다.
'Whale #2'에 도입된 기술, 전문가 인력·시간·비용, 투입 비용에 따른 수입율 등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디스트릭트에서 선보이는 퍼블릭 미디어아트(public media art) 제작에는 전문가 2~4명 투입됐다. 제작 기간은 통상적으로 6개월이라고 했다. 인건비만 투자해 저비용이면서 고효율의 성과를 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직접적인 수입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라고 하며, 우선 대형 전광판과 함께 부동산을 매력적인 장소로 탄생 시킨다는 점에서 매체 사업자와 뜻이 맞았다고 한다. 이를 통한 라이선싱 사업 홍보로 간접적인 수익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단순히 영상에 공간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간감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뷰 포인트(view point)를 찾아내고, 디스플레이의 형태와 스케일까지 고려한 세심한 연출력으로 최상의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들만의 노하우와 미감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이어 "예술·기술·정치 등 사회 전반에서 서로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음에 따라 시각 예술 영역의 기술 차용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 같은 '리얼리티', 그리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몰입을 극대화 할 지에 대한 고민은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대표는 뉴욕 타임스퀘어에 '아나몰픽 일루션(Anamorphic illusion)' 기법으로 'Whale #2' 입체 영상을 선보인 장본인이다. 2D의 평면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영상으로 내부 3D 공간을 조성했다. 이는 진짜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일종의 착시 효과로 세계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기술·디지털, 이제는 환경에 가깝다"
지난 6일 오전 8시께 대구 엑스코 회의실에서 열린 '시그래프 2022' 기자간담회에선 세계 각국의 언론인들이 모여 행사 소개, 접목된 기술,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전망, 그리고 사적인 삶의 마인드까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희 서울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3가지 삶의 가치로 '가족,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학생들과의 교류'를 꼽았다. 이 교수는 "생산성은 오랫동안 많이 앉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즐겁게 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인다"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도전으로 즐기면서 일을 한다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디지털은 환경에 가깝다. 마치 어릴 적 학교에서 국어와 산수를 배우 듯 현재는 원하는 누구나 틱톡과 유튜브 등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과거와 현재의 기술 격차에 따른 환경을 짚었다.
이어 "예술의 의미 자체가 변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컨텐츠이고, 데모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급격한 변화 속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무력감은 상당히 큰 문제"라며 '시그래프 2022'를 통해 수많은 세계인들이 최신 기술과 예술의 접목을 직접 확인해보길 권했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에선 조직위원장을 맡은 정순기 경북대학교 교수를 비롯해 Dan Sarto 애니메이션월드네트워크 발행인·편집장(미국), 김민혁 KAIST 교수, 남혜연 루지아나주립대 교수(미국), Sophie Revillard 커넥팅 월드·시스테믹코치·컨설턴트(프랑스), Ricard Gras 선임프로듀서(영국), Neil Dodgson 웰링턴빅토리아대학교수(뉴질랜드), 이제희 서울대 교수, Matt Adcock Real-Time Live 위원장(호주), 김형석 건국대 교수,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김준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수(호수)가 참여했다.
- 전세계 기업·대학·연구기관, HCI 등 최신 기술 선봬
이번 '시그래프 아시아 2022'에선 아트 갤러리 25개, 컴퓨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33개, XR콘텐츠 37종, 기술문서 150건, 연구논문 400여편 등이 발표됐다. 전세계 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협업해 제작한 최신 기술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특히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공지능(AI), 디지털휴먼(Digital Human),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등 최신 트랜드를 선보인 전시로, 지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물론 예술계에도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기업 '엔비디아(NVIDIA)'는 'AI가 메타버스(Metaverse)의 진화를 가속화 하는 방법’을 발표했다.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 AI기술을 더해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극대화 한다는 것이다.
아트갤러리에선 '지속 가능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주제로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 등 컴퓨터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문화를 발표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축제에선 AI부터 딥페이크(Deepfak)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CG)과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 대구기업공동관, ABB 산업 연계한 최신 기술 선봬
대구시는 ABB(AI·Blockchain·Bigdata)를 미래 먹거리로 보고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최신 기술 공유는 물론 엔비디아(NVIDIA) 등 글로벌 기업과 네크워크를 구축한 것은 큰 성과이다.
시는 대구기업공동관을 꾸려 '스마트시티 대구'의 면모를 소개했다. AI를 도입한 수질정화장치 메타버스, 함정훈련실, 제조공정, 웹기반 무설치 전시특화형 메타버스 플랫폼, AI슬레이드덱 제작솔루션, 비즈니스 특화 메타버스 플랫폼 '유얼비타앱', 메타페인팅 등을 선보였다.
특히 대구기업 '와이디자인랩(대표 안유학)'이 선보인 '실감미디어 콘텐츠'는 큰 관심을 끌었다. 통상적으로 아나몰픽 콘텐츠는 'L자 형태'의 옥외 전광판에서 송출된다. '와이디자인랩'은 'L'을 벗어나 '큐브형' LED를 자체 제작해 또다른 실감형 콘텐츠를 선보였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선보인 'Whale #2'와 사뭇 다른 시도를 대구 기업이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대구기업 공동관에는 △세중IS △에이존테크 △와이디자인랩 △쓰리디오토메이션 △디지엔터테인먼트 △멜라카스튜디오 △YH데이타베이스 △피케이아트앤미디어 등 8곳이 동참했다.
- 시그래프 아시아 2022 "파워풀한 대구 알렸다"
성공적인 '시그래프 아시아 2022' 개최 비결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미래 5대 산업에 대한 의지를 비롯해 정순기 조직위원장(경북대 컴퓨터학부 교수),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 KAIST 김민혁 교수, 서울대학교 이재희 교수 등 최고의 권위를 가진 9개국 19명의 국내·외 전문가가 조직위원으로 꾸려졌기 때문이다.
경북대 정순기 교수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시그래프 아시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돼 기쁘다"며 "이번 전시를 발판 삼아 국내 컴퓨터 그래픽스 산업이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은 물론 전시·강연에 참여한 해외 전문가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화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시그래프 아시아 2022 행사의 성공적 마무리로 컴퓨터 그래픽스와 실감기술 분야에서 대구시의 이미지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시그래프 아시아 2022(Siggraph Asia, 2022)'는 미국 컴퓨터협회 그래픽스분과,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 한국HCI학회, 코리아그래픽스(조직위 경북대 정순기 교수)가 주최하고, 쾰른메쎄(Koelnmesse)가 주관하며 대구시·한국관광공사가 후원했다.
'시그래프(Siggraph)'는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권위있는 학회다. 매년 북미권에서만 개최되다가 2008년부터 여름에는 북미, 겨울에는 아시아로 개최지를 확대했다. 한국에선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됐으며 올해 대구에서 개최됨으로써 2번째를 맞았다. '제16회 시그래프 아시아 2023'은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