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13억 돈상자는 유령이 날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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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는 돈상자 중 일부. | ||
측근을 통해 밝힌 경 씨의 주장은 그간 구체적인 증언을 해온 팍스우드 카지노 전 매니저 댄 리 씨의 주장에 전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주목할 점은 경 씨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경 씨의 주장이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은 물론 검찰이 밝혀낸 기초 사실들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돈 상자 중간전달책 역할을 했던 댄 리 씨의 동생 제임스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남자(정연 씨 측 인사)로부터 ‘박스 돈’을 넘겨받았다. 1만 원짜리가 가득 든 박스 7개(총 13억 원)는 경 씨가 ‘삼촌’이라 부르는 외제차 딜러 은○○ 씨를 거쳐 경 씨에게 전달됐다”고 진술한 바 있고, 2월 25일 은 씨는 검찰에서 이를 시인했다. 13억 돈상자와 마 스크 남성의 존재, 1만 원권 13억 원이 환치기되어 달러로 경 씨에게 들어갔다는 댄 리 씨 형제의 핵심 주장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검찰수사는 경 씨에게 들어간 100만 달러의 출처 및 성격을 규명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즉 돈이 노 전 대통령 일가로부터 나온 것인지, 허드슨클럽 잔금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압축된 것이다. 검찰이 정연 씨 측 인사인 ‘장년의 마스크 맨’의 신원확인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 씨가 사건 자체를 부인한 것은 석연찮은 의혹을 남기고 있다.
기자는 댄 리 씨와의 만남과 수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경 씨 측이 밝힌 주요 주장에 대한 반박을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은 댄 리 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경 씨가 일체의 의혹을 부인했다.
▲일단 무조건 잡아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돈과 배경이 있는 사람이니 단단히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측근을 통해 무조건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뗄 것이 아니라 직접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한다. 아니면, 내 말이 거짓임을 입증하든지…. 13억 원을 경 씨에게 전달했다는 은 씨의 진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은 씨와 경 씨의 관계는 검찰도 이미 다 확인했다. 또 다른 것은 차치하고 사건에 개입한 사람만도 여러 명이다. 우리 형제는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도 다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아니, 경 씨 말대로라면 그 사람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되는 것 아닌가. 대질도 자신 있다.
―또 다른 증인이 있다고 들었다.
▲사건 당일 한국 지리를 잘 모르는 내 동생 제임스는 세븐럭에서 이용하는 렌트카 회사에서 차와 기사를 빌려 해당 장소로 나갔는데 그 기사가 돈 상자 나르는 것도 도왔다고 한다. 렌터카 회사에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돈 상자 전달 개입자만도 4명이 넘지 않나. 또 환치기에는 뉴욕 전 한인회 임원 최 아무개, 뉴욕 플러싱지역에 사는 권 아무개, 이 아무개 씨 등이 개입했다. 나도 개입했는데 경 씨가 2100달러가 모자란다고 난리쳐서 내 돈으로 물어주기도 했다. 등장인물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모든 것이 어떻게 거짓이란 말인가.
―환치기 개입자들의 증언도 중요할 것 같은데.
▲일반인이 현찰 13억 원을 미국으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걸린다. 또 그 돈이 깨끗한 돈이었다면 애초 13억 원을 1만 원짜리로 바꿀 필요도 없었다. 제임스가 기겁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수표로 받을 줄 알고 나갔는데 돈 상자 7개에 만 원짜리가 들어차 있었으니까. 이것만 봐도 그 돈이 검은돈이라는 증거다. 무슨 마피아도 아니고.
―경 씨는 2007년 박연차 씨로부터 45만 달러를 받은 이후 허드슨클럽 빌라와 관련해 정연 씨와 어떤 금전 거래도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돈 상자 사건’의 시발은 2009년 1월 팍스우드호텔 스위트룸 2318호에서 경 씨가 정연 씨에게 돈(검찰은 이 100만 달러가 아파트 잔금일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을 요구하는 통화를 한 것이다. 정연 씨가 돈을 바로 보낼 수 있다고 해서 일이 진행된 것이다. 두 사람 간 통화 자체가 없었다면 검찰에서 시인한 은 씨를 비롯해 돈 상자 전달과 환치기에 개입한 사람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말이 되지 않겠나. 또 당시 경 씨는 이미 1000만 달러 이상을 도박으로 잃은 상태였고 빚도 많아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으는 상황이었다. 경 씨가 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했고 노 일가의 돈이 경 씨에게 수차례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특히 경 씨가 내게 ‘입단속’을 빌미로 협박과 회유를 반복할 때 ‘정연이에게 돈을 더 빼낼 수 있으니 서류(이면계약서 등)로 협박하자. 한몫 챙겨주겠다’는 제안을 한 적 있다. 두 사람 간 금전거래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증거 아닌가. 정연 씨가 경 씨에게 약점이 잡혀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 씨가 노 일가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나.
▲“2007년 여름 방미한 권양숙 여사와 식사자리에서 일련번호가 나열된 새 돈 100만 달러를 전달받았다” “권 여사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카지노 호텔방에서 담뱃재를 털어가며 구기고 섞는 식으로 돈세탁을 했다”는 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얘기들을 해줬는데 분명한 것은 2006년부터 노 일가 비자금을 비롯한 비밀 얘기가 수차례 포함됐다는 것이다. 경 씨가 내 앞에서 ‘서민 대통령은 무슨…’이라며 비아냥거린 이유를 생각해보라. 중요한 것은 경 씨가 아니었다면 내가 대통령 일가의 깊은 얘기에 대해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경 씨는 2008년 12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연 씨와 연락된 적이 없다던데.
▲어이없다. 일례로 경 씨는 2010년 여름 정연 씨가 목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진짜 알짜배기야’라는 말도 했다. 얼마 후 경 씨는 ‘정연이가 휴대폰 번호를 바꿔버렸다. 날 피하려고 그런 것 같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얼마 후 지인을 통해 번호를 알아낸 경 씨는 내 앞에서 정연 씨와 아파트 타이틀 이전문제를 두고 불편한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미국에 있는 내가 목동아파트를 비롯해 경 씨가 허드슨클럽으로 인해 곤란해 한 정황, 그리고 그로 인해 정연 씨와의 관계가 틀어졌던 과정 등 그들만의 세세한 얘기를 어떻게 알 수 있겠나.
―통화기록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카지노 호텔방에서 이뤄진 통화기록이 나오면 끝난다. 또 돈 상자를 받을 때도 제임스가 경 씨와 수차례 통화를 했으니 기록을 찾아내면 된다.
―경 씨 측은 435호 빌라 이면계약서의 용도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는데.
▲공증인 엘리사 서의 증언은 상당히 중요하다. 둘이 435호를 매매계약 할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엘리사 서가 “경 씨가 정연 씨에게 집을 파는 계약을 맺은 게 맞고 정연 씨가 계약서에 ‘Roh’라는 자필 서명도 했다”고 하지 않았나. 밝히는 것은 검찰 몫이다.
―경 씨가 국내 언론보도로 큰 충격을 받았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는데.
▲웃음밖에 안 나온다. 2010년 <일요신문>에서 두 차례나 보도했을 때도 경 씨는 내게 ‘그런 신문에서 떠들어봤자 얼마 후면 조용해진다. 겁 안 난다’고 했다. 정당하다면, 떳떳하다면 무서워서 기자들을 못 만날 성격이 아니다.
―경 씨는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폭로’라는 입장인데.
▲이건 거꾸로 경 씨가 나를 협박·회유한 이유를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두 사람의 아파트 뒷거래가 다뤄질 때는 ‘입조심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잘린다’고 하더니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더욱 심해졌다. 비자금 문제를 포함해 자기에게 전해들은 모든 얘기들에 대해 입을 닫으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을 거론하기도 했다. 어찌나 절박했는지 경 씨는 측근을 시켜 나를 미행케 했는데 나는 그중 한 명에게 팔꿈치로 목덜미를 급습당하기도 했다. 이건 미국에서 살인미수로 들어가지만 경 씨가 집까지 찾아와 사과하기에 넘어간 적도 있다. 경 씨가 내게 노 일가와 관련된 얘기들을 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녀가 ‘비밀유지’에 사활을 걸며 나를 그토록 협박할 이유가 없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경 씨의 거짓을 입증할 수 있는 동영상까지 공개하겠다.
―경 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봐 반박을 못했다’고 했다던데.
▲정말 어이가 없다. 나는 그녀가 평소 내게 노 일가에 대한 얘기들을 전하면서 했던 얘기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양측 간에 어떤 식으로든 조율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보나.
▲내가 확인한 게 아니니 모르겠다. 하지만 둘 관계가 틀어졌다고는 하지만 워낙 민감한 얘기들이 많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의도 운운하지만 25년 이상 미국에서 지낸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사실을 얘기하는데도 한국 사람들은 정치색 운운하니 참 이상하다. 직접 입국해 조사까지 받았으니 할 만큼 했다. 진실을 가려내는 것은 검찰 몫이다. 경 씨의 도박자금 출처 및 금전거래 흐름에 대한 국세청과 검찰의 철저한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13억 원 송금 수사와 경 씨가 전해준 노 일가에 대한 민감한 얘기들, 자금흐름을 밝히는 것도 검찰 몫이다. 경 씨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어느 쪽이 진실인지 가린 후 법대로 하면 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