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남북경협 최일선, 2017년 대북제재 후 경영난…쌍방울 둘러싼 여러 의혹 관련 시선 집중
“잘나갈 땐 4000명이 넘었던 길림트라이 직원 수가 지금은 300명 정도로 줄었다. 회사를 없애려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길림트라이) 지금 남아있는 직원들은 회사가 없어지면 주어지는 보상금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지난 12월 11일 조선족 사업가 이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에 “공장에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길림트라이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이 씨는 1990년대부터 훈춘에서 활동했으며 길림트라이 설립부터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봐온 인물이다. 이 씨의 조선족 동료는 쌍방울 소속으로 북한 나진 공장에서 외주 생산하는 제품 검품을 담당하는 중역이기도 했다. 이 씨 역시 쌍방울 관련 일감을 통해 사업을 진행했던 이력이 있다.
이 씨는 “길림트라이가 다 쪼그라들었다”면서 ‘연변 30강’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던 길림트라이의 빛나던 순간을 회고했다. 이 씨는 “광명성 때(북한 김정일 집권 시기) 길림트라이는 남북경제협력 최일선에 있는 기업이었다”면서 “북한 나진 공장에서 쌍방울이 완제품을 생산해오던 시기”라고 했다.
이 씨는 “쌍방울이 중국기업에 외주를 주면 그 중국기업은 북한 현지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온다. 그 다음 중국기업이 중국 현지에서 상표 작업을 한 뒤 쌍방울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제품이 생산돼 왔다”면서 “북한 현지에서는 해당 완제품이 쌍방울 제품인지 모르고 생산만 한 것”이라고 했다(관련기사 [단독] “직접 고용은 아냐” 쌍방울 ‘길림 트라이’ 북한 노동자 활용법 추적).
이 씨는 “2017년 대북제재 국면 이후 북한 현지 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명맥은 사실상 끊겼다”면서 “이후 쌍방울은 훈춘에 있는 중국 공장에 외주를 줬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중국 공장에 외주를 주면 그만큼 인건비가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면서 “북한 노동자 임금은 중국 노동자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길림트라이가 이렇게 생산한 제품은 중국 내수시장용으로 주로 판매된다”면서 “한국으로는 제품이 못 나간다”고 덧붙였다.
중국 소식통은 “이 씨 말처럼 길림트라이에서 만든 제품은 중국 내수시장용으로 판매하는 비율이 높다”면서 “중동 등으로 수출되는 물량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현지의 복수 소식통들은 잘나가던 시기 4000명 넘던 직원을 보유했던 길림트라이엔 최근 300여 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전했다. 직원 수가 줄어드는 사이 길림트라이의 실적 역시 오락가락하는 흐름을 보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최근 7년 쌍방울 연간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길림트라이는 2016년부터 2022년 6월까지 125억 8100만 원 규모 손실이 누적됐다. 2016년 8300만 원 흑자를 봤던 길림트라이는 2017년 88억 9400만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에도 11억 8300만 원 적자를 본 길림트라이는 2019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19년 12억 1300만 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길림트라이는 2020년 8억 2400만 원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2021년 길림트라이 실적은 다시 악화됐다. 당기순손실 32억 9800만 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길림트라이는 13억 2700만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중국 현지에선 길림트라이 2022년 실적이 적자로 마무리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2022년 6월 기준 쌍방울은 중국 현지 법인 6곳 중 3곳에 대한 영업중단을 결정했다. 영업 법인인 쌍방울북경상무유한공사, 훈춘쌍방울침직유한공사, 쌍방울심양상무유한공사가 영업을 중단했다.
재무상황과 별개로 국내에선 길림트라이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쌍방울을 둘러싼 불법 대북송금 의혹 수사 중 길림트라이 관계자들이 전면에 부상하는 까닭이다. 11월 말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담당하는 수원지검 형사6부가 중국 훈춘 쌍방울 공장에서 근무했던 직원 A 씨를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약 500만 달러(67억 5000만 원 규모)로 추정되는 쌍방울 외화 밀반출 과정을 방 아무개 쌍방울 부회장(수감 중)과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쌍방울 ‘마스크 사업’에 초점을 맞춘 수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훈춘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되는 마스크 사업 관련 자금 흐름을 모니터링 중이라고 한다.
여기에 검찰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19년 1월 남북경협 목적으로 중국 출장을 갔을 당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송명철 조선 아태위 부위원장 등과 만난 뒤 훈춘 소재 쌍방울 현지법인 사무실을 방문한 타임라인 전반에 걸친 수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쌍방울과 아태협이 북한 측에 200만 달러를 밀반출한 시기와 이 전 부지사 출장 시기가 겹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쌍방울이 중국 현지 공장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정황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중국 소식통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쌍방울 훈춘 현지 법인’이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과 관련해 “사실상 길림트라이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길림트라이는 쌍방울이 중국뿐 아니라 해외 전체에서 운영하는 계열사 중 가장 큰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법인”이라면서 “여기에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까지 갖추고 있다. 남북경협을 추진하던 쌍방울 입장에선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적합한 입지”라고 주장했다.
한편 쌍방울 측은 “길림트라이방직유한공사는 쌍방울 주요 생산 기지로 운영되고 있어, 운영 중단 여부에 대해 논의된 바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중국 인건비 반값" 길림성 북한 노동자 2만~3만 명 추정
조선족 사업가 이 아무개 씨는 현재 중국 길림성 현지에 분포된 북한 노동자 규모와 관련해 “2만~3만 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이 씨는 “중국 훈춘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 수만 1만 5000명에서 1만 6000명 사이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면서 “용정, 화룡 등 길림성에 분포한 노동자 수까지 합치면 2만~3만 정도가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이 씨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북한이 국경을 폐쇄한 뒤에 귀국하지 못한 인력이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는 북한 노동자를 활용하는 것은 중국 현지에서도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안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북한 노동자 한 명을 한 달 동안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500위안(약 47만 원)”이라면서 “중국 노동자는 아무리 싸도 한 달에 4000위안(약 75만 원)은 줘야 한다. 통상적으론 5000위안(약 94만 원) 정도를 받아간다”고 했다.
그는 “북한 노동자들은 인건비 측면에서 중국 노동자에 절반 정도 비용이면 고용이 가능하다”며 “2500위안은 숙식제공을 포함한 금액으로 북한 보위부에서 따라나온 인력이 ‘세금’ 차원으로 가져가는 금액을 제외하면 북한 노동자들이 한 달에 실제로 수령하는 금액 규모는 1500위안 이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