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낚으려고 ‘밑밥’ 챙겼나
▲ 레인콤의 MP3P ‘아이리버’. | ||
특히 한국 IT의 자존심이면서도 MP3P 부문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시그마텔은 한국포터블오디오기기협회(KPAC)와는 특허권 행사를 하지 않기로 합의해 레인콤, 코원시스템, 디지털웨이를 비롯한 중소규모 생산업체인 KPAC 회원사들이 대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노림수가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엠피맨닷컴이 보유하고 있던 특허권은 ‘MPEG 방식을 이용한 휴대용 음향 재생 장치 및 방법’(특허 287366호). MP3 파일을 외부기기에서 재생하는 것과 관련된 특허로 모든 MP3P에 연관된다.
레인콤은 특허를 매각하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된다. 그간 방어적으로 묵혀두고 있던 특허권을 매입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되팔게 되어 시세차익을 거뒀고 특허권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4년 레인콤은 엠피맨닷컴의 특허를 ‘울며 겨자먹기’로 인수한 바 있다. MP3P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엠피맨닷컴이 당시 MP3P 제조업체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레인콤에 ‘특허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던 것.
당시 레인콤은 엠피맨닷컴이 보유한 특허를 인정할 수 없다며 ‘특허 무효 심판소송’으로 맞받아쳤다. MP3P 관련 특허가 워낙 많은 데다 특허마다 성격이 모호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 소송 때문에 코스닥 상장이 세 번이나 무산됐던 레인콤은 결국 2004년 엠피맨닷컴을 KPAC과 공동으로 인수했다. 당시 레인콤이 30억원, KPAC이 10억원을 부담하면서 KPAC 회원사들까지 특허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레인콤이 특허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은 작은 업체에 특허료를 요구해도 별 이득이 없었던 데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그마텔은 자사의 칩셋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특허권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MP3P 출시 초기 시장을 선점했던 시그마텔은 최근 애플에 제품을 공급중인 포털플레이어나 국내업체 텔레칩스에 뒤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직접 개발한 칩셋인 ‘오케스트라’를 사용하고 있고, LG전자도 자사 개발 칩셋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시하지 않은 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허 관련 부서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삼성전자도 MP3P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크로스 라이센싱’(Cross-Licensing) 등 특허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지난 2004년 12월 삼성전자는 일본 가전업체인 소니와 LCD TV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공방이 벌어졌을 때 삼성전자가 보유한 특허와 맞교환하는 크로스 라이센싱으로 해결했었다. 또 국내 다수 MP3P 제조업체들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등 부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에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삼성전자가 시그마텔과 큰 마찰을 빚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도 “우리도 고유 특허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안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MP3P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던 LG전자는 엑스프리, 엠피프리 등의 브랜드를 통합해 올해부터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다.
그러나 엠피맨닷컴이 과거 레인콤과 특허분쟁을 벌인 바 있고 레인콤이 엠피맨닷컴을 인수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면, 이 일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아 보인다. 이미 삼성전자, LG전자, 레인콤, 코원시스템 등 국내 주요 업체들은 미국의 시스벨에 MP3 원천특허(MPEG 레이어 3표준에 관한 특허)에 관한 특허료를 지불하고 있다. 시스벨은 10만 대까지는 대당 2달러, 4백만대까지는 대당 40센트, 8백만 대까지 대당 36센트 등 생산규모에 따른 일괄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주식시장에서는 시그마텔에 특허권을 엠피맨닷컴 인수 당시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각한 데다, 레인콤이 로열티를 받게 돼 수혜가 예상된다며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레인콤이 시그마텔에 로열티를 받기로 계약을 했는지, 레인콤이 그 중 얼마를 받을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레인콤이 실제로 특허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그마텔은 칩셋 제조업체로 자사 칩셋의 납품을 빌미로 특허료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 로열티를 받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오히려 업계에서는 레인콤의 특허 매각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특허를 사간 시그마텔이 중소업체보다는 대기업을 우선 공략할 것으로 보며 당장 특허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 타깃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특허권 양도로 생길 수 있는 법정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특허팀을 통해 특허 효용성을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