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 하락폭 IT 버블 이후 최대…새로운 수요처 발굴과 공급망 개편 숙제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주가 전망 평균치는 7만 6000원이지만 현재 주가는 이보다 25% 가까이 낮은 5만 8000원 수준이다. 올해에만 25% 넘게 하락했다. ‘IT버블’이 증시를 강타했던 2000년(-40.6%) 이후 연간 최대 낙폭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19%만 하락하며 40% 넘게 폭락한 코스피 대비 양호했던 삼성전자다. 14년 만에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주가가 오르려면 이익이 늘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증권사 전망 평균은 최근 8조 원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4분기 13조 9000억 원의 절반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7조 6000억 원에서 5조 8000억 원으로 무려 25.6%나 낮췄다. 직전 분기(10조 8520억 원)의 절반도 안된다. IBK투자증권도 6조 630억 원으로 예상했다.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반도체는 메모리 수요 둔화로 가격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골드만삭스는 “메모리 업종 약화와 스마트폰·TV 출하량 감소를 반영해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며 “내년에는 메모리 하락 사이클이 더 가파를 것으로 예상돼 영업이익은 더욱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대한민국 간판인 반도체 산업이 전체적으로 부진하다. 시총 3위 SK하이닉스도 올해만 주가가 40% 넘게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74.2%)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SK그룹 편입 이후로는 최악이다. 최근 5년간(2018~2022년) 주가상승률은 삼성전자 14%, SK하이닉스 2%로 같은 기간 98% 오른 대만의 TSMC에 한참 못 미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70%에 달한다. 장치 산업은 수요가 줄면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출과 이익률이 모두 급감한다. 대만 TSMC는 고객사가 수주한 칩만 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여서 경기 영향을 덜 받는다. 업계는 내년 상반기까지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TSMC의 매출이 삼성전자를 계속 앞지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도체의 부진을 만회할 만한 산업은 자동차가 유일하다. 2010년대가 모바일 혁명의 시대였다면 2020년대는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자율주행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자동차 산업에 기대가 높다. 코스피 시총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서도 관련주가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삼성SDI, 현대차, 기아 등 절반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우리 전기차 관련 기업들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려면 중국산 원재료나 부품을 사용하지 말아야한다. 현재 우리 관련 기업들의 공급망 대부분은 중국과 밀접하다. 가장 유망한 전기차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경쟁력을 가지려면 지금과 전혀 다른 공급망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올해 현대차와 기아 주가는 25%가량 하락했다. 각각 2014년, 2016년 이후 최대 낙폭이다. 전기차 관련 시총 상위 5종목 가운데 4종목이 올해 주가가 하락했다. 반도체와 전기차 관련 7대 종목의 시총만 660조 원으로 코스피 전체의 36%에 달한다. 이들 주가가 의미 있는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면 코스피가 강하게 반등하기는 어렵다.
반도체는 새로운 수요처가 필요하다. 가상현실(VR) 기기와 자율주행차가 유망하지만 아직 개발 중인 기술이다.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는 이 부문에서 경쟁우위에 있지도 못하다. 대중적 수요 확대에 편승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자동차는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당장 핵심 원자재 확보부터 난관이 적지 않다.
반도체와 자동차 부문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관련 업계뿐 아니라 우리 정부가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IRA에는 자동차 산업 비중이 높은 유럽연합(EU)도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관련 수출 금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움직임이다. 자원부국과의 관계 증진도 중요하다.
최열희 언론인